프레시안 “김근태, 정부내 ‘왼손’ 돼 무상의료 일보 내딛기를”

  
  ”김근태, 정부내 ‘왼손’ 돼 무상의료 일보 내딛기를”  
  [기고] “건강보험 1조5천억 흑자, 제대로 쓰자”

  2005-05-04 오전 10:18:42      

  

  
  ”건강보험 1조5천억원 흑자, 제대로 쓰자”
  
  최근 2004년 건강보험 재정 흑자액인 1조5천억 원의 사용처를 둘러싸고 시민사회단체와 보건복지부 간에 첨예한 의견 대립이 형성되고 있다. 진료비의 50%밖에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는 건강보험의 취약한 보장성을 오래 전부터 비판해온 민주노동당,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 연합, 민주노총, 건강세상네트워크 등 제반 사회단체는 당장 고액진료비의 부담이 크고 국민들의 수용성이 큰 암부터 무상의료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반면, 보건복지부는 암을 포함한 중대상병에 대하여 비급여(건강보험 적용이 안되는 의료비용) 일부를 건강보험에서 보장해주는 수준에서 8천억원을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특히 보건복지부가 3대 핵심 비급여라 할 수 있는 병실료 차액, 선택 진료비(특진비), 식대 등을 고급 서비스로 지칭하고 고급 서비스에 대하여 건강보험에서 급여를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발표하면서 시민사회단체 뿐 아니라 암 환자들의 분노를 촉발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발표는 병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혀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주장이다. 대학 병원의 1, 2인실 등 상급 병실이 고급 서비스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질을 갖추고 있는가도 다시 평가해보아야 하겠지만, 건강보험의 대상이 되는 병실이 턱없이 부족하여 당장 입원이 필요한 암 환자가 상급병실 밖에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고급 서비스를 선택하였기 때문에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대부분의 대학병원 의사가 선택 진료비를 부담해야 하는 의사인 상황에서 본인이 선택하였기 때문에 본인에게 부담하겠다는 발상은 한참 잘못된 생각이라 하겠다. 식대도 마찬가지다. 영양 공급이 치료 과정과 떨어질 수 없는 요소일 뿐 아니라 별도로 대체할 만한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식대를 비급여로 남겨두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 하겠다.
  
  정부는 이러한 비판에 대하여 논리가 궁색해지자 암만 무상의료를 하겠다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과 함께 다른 중대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암 환자에 대한 무상의료 혜택이 다른 환자의 혜택을 가로챌 수 있는 것처럼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를 왜곡시키고 초점을 흐리는 비판이라 하겠다.
  
  사실 암 환자만 무상의료를 해야 한다는 것은 성립할 수도 없는 이야기이고 어느 누구도 그러한 주장을 한 바가 없다. 다만 미용이나 성형 또는 사회적 기준에서 용인하기 어려운 고급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아닌 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본인이 직접 지불하는 진료비 부담 없이 양질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견지하면서 이렇게 되려면 상당한 재원이 필요하고 한 번에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재원 확충과 함께 급여를 확대하자는 주장만 존재할 뿐이다.
  

지난 1일 1백15주년 노동절 집회에서도 ‘암 무상의료’ 등 건강보험 확대는 눈에 띄는 요구 중 하나였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암부터 무상의료’의 핵심은 돈 없어서 치료 못 받는 사람 없게 하자는 것”
  
  만약 보건복지부의 주장이 1조5천억 원의 사용처에 대하여 암부터 무상의료를 실시하고 다른 부분으로 넘어가는 방식이 타당한지, 아니면 암을 포함한 다양한 중증질환에 대하여 먼저 본인부담 일부를 경감하고 점차 확대해 나가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것이었다면 논쟁은 매우 생산적인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보건복지부의 발표 내용은 건강보험이 갖고 있는 근본적 한계인 보장성의 취약성, 즉 3대 핵심 비급여를 포함한 현재 건강보험 제도의 문제점과 저소득 계층의 의료이용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본인부담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어떠한 전망도 제시하지 않은 채 다만 1조5천억 중의 일부의 사용처로써 일부 본인 부담 경감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불충분한 계획이라고 하겠다.
  
  사회단체 등이 주장하는 “암부터 무상의료”의 핵심은 암만 보장하고 끝내자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액 진료비에 대한 부담을 정부가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본인의 선택이라고 현실의 문제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실제 환자에게 행해지고 있는 모든 의료행위를 건강보험의 틀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하게 올 상반기에 결정되어야 하는 1조5천억 원의 사용은 암 환자의 진료비에 사용되지만, 내년도는 모든 환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3대 비급여를 포함한 모든 비급여가 건강보험에 포함될 수 있도록 예산이 확대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즉 성형, 미용이 아닌 한 모든 의료비가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왜 암 환자가 먼저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은 있을 수 있지만, 한정된 재원과 정부가 이번 발표에서도 보여준 것처럼 도대체 얼마나 환자가 의료비를 부담하고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기술적인 준비 부족 상태, 그리고 사회적인 문제의 크기 등을 고려할 때 짧게는 6개월, 길게 1~2년 먼저 암 환자에 대하여 보장성을 높이자는 것에 대하여 우리 사회의 합리적 구성원이라면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줄여서 말하자면 암부터 무상의료 캠페인은 현재 정부의 준비부족상태에서 올해는 암’부터’ 무상의료를 하고 지금부터 준비하여 내년부터는 모든 의료비에 건강보험적용을 하자는 주장이다.
  
  이와 같이 모든 의료비가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게 되면, 현재 건강보험에서 실시하고 있는 본인부담상한제도가 실질적인 역할을 하게 되어 고액진료비 환자에 대한 부담을 대폭 낮추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현재 6개월에 3백만원이 초과하면 초과한 부분에 대해서 건강보험에서 보장해주겠다는 본인부담상한제도는 제도의 취지와 달리 3대 비급여를 포함하여 수많은 비급여를 제외하고 있기 때문에 껍데기뿐인 제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만약 모든 의료비가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게 되면 본인부담상한제도가 작동하게 되어 고액중증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의 본인부담이 대폭 완화되는 효과가 발휘될 것이다.
  
  이처럼 모든 의료비의 건강보험 적용이 되면 고액 환자에 대한 부담이 완화되고 보장성 수준이 높아지게 되는데, 그 다음은 당연하게 그러한 상황에서도 의료비 부담으로 인하여 경제적 제약이 존재하고 의료비의 보장이 필요한 계층이나 집단에 우선적으로 진료비의 본인부담 경감 또는 폐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한 집단과 계층은 당연하게 저소득계층, 영유아나 임산부, 노인이라 하겠다.
  
  ”김근태 장관, ‘정부의 왼손’이 돼 무상의료 첫발 내딛는 결단을”
  
  최근 들어 정부 일각에서 건강보험의 당연지정제도 폐지, 대체형 민간의료보험의 도입, 의료기관의 영리법인 허용 등의 주장이 공공연하게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정부가 지향하는 보건의료의 개편 방향이 의료의 시장화와 산업화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현재도 우리나라는 선진외국과 달리 보건의료서비스에 대하여 별다른 사회적 조절 장치가 없이 시장의 논리에 의하여 지배당하면서 공급 과잉과 자원 배분의 지역 및 계층 간 불평성이 공존하고, 불필요한 과잉서비스 제공과 미충족 의료가 공존하는 등 심각한 시장실패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를 더욱 시장화, 산업화하겠다는 것은 국민의 건강권에 대해 하등의 관심도 이를 실현할 의지도 없음을 선언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하겠다.
  
  이렇듯 국민의 건강권에 하등의 관심도 이해도 없는 일부 정부 관료에 의하여 정부 정책의 혼선이 빚어지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려는 상황에서 국민의 건강문제를 책임지는 보건복지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보건복지부가 이번과 같이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에 대하여 임시방편적인 대책으로 일관하는 등 국민의 건강권을 지켜내려는 의지가 없다면 그 심각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이러한 위기 국면에서 보건복지부는 정부 내에 단일한 목소리를 내는 것에 자신의 역할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권을 지켜내고 강화하려는 근본적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요구된다. 당연하게 그 출발은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려는 진지한 노력에서 출발해야 한다. 무상의료의 뜻은 좋지만, 재원이 있느냐고 반문할 것이 아니라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때이다.
  
  이미 해답은 무수한 연구나 외국의 사례에서 제시되고 있다. 선진외국이나 대만의 사례를 보더라도 공급체계의 효율적 개편이나 현행 행위별수가제도 등을 총액계약제 방식으로 전환할 경우 지출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재원을 추가로 마련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사업주와 노동자, 또는 정부와 지역가입자의 분담비율을 현행과 같이 50대 50으로 할 것이 아니라 대만과 같이 60대 40 정도로 바꾸더라도 국민 개개인에게 보험료를 추가로 부담시키지 않더라도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문제는 의지다. 어찌 보면 현 김근태 장관이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적임자인지 모른다. 그가 과거의 유산만이 아니라 여전히 서민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갖고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의 비정상적인 흐름에 대하여 바로잡을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이 있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을 저버린다면 그 또한 정치만 있지 국민은 없는 그저 평범한 정치 명망가들과 다름이 없음을 스스로 확인하는 것이라 하겠다. 노동절에서도 확인된 노동자, 민중의 목소리, 그리고 암부터 무상의료 캠페인을 통해 확인되고 있는 국민의 열망과 의지를 부디 져버리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임준/가천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