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영리법인화는 의료의 ‘부익부 빈익빈’ 강화”
보건의료단체 반발, “4천5백만 의료 혜택 못받는 미국 좇는 길”
2005-05-14 오전 9:16:27
병원 영리법인을 허용하는 등 각종 의료 관련 규제를 풀어 민간 자본을 의료 서비스로 유치하겠다는 정부 정책 방향에 대해서 보건ㆍ의료 관련 시민ㆍ사회단체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주식회사 병원 만드는 것, 의료 망국의 길”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 5개 단체로 구성된 보건의료단체연합과 민중의료연합은 14일 성명을 발표하고 “병원을 주식회사로 만드는 것은 의료 망국의 길”이라며 정부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현재 모든 의료기관을 비영리법인으로 제한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민간 의료기관은 돈 벌이에 열중하고 있다는 것이 모든 국민의 생각”이라며 “이제 정부가 나서서 아예 병원들이 돈 벌이에 나서도록 해주겠다는 것이 이번 발표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렇게 병원의 기업화가 되면 병원의 목적이 환자에 대한 치료가 아니라 주주들의 최대 이윤이 될 것이고, 결국 불필요한 과잉진료를 양산하고 국가 전체의 의료비 폭등을 초래할 것”이라며 “이것은 곧 우리나라 의료 공공성의 심각한 붕괴로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 의료 서비스 문제는 공공성 부족, 공공병원 OECD 평균의 10분의 1 수준”
이들 단체는 정부가 현재 의료 서비스의 문제를 잘못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엉뚱한 해법을 내놓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들은 “우리나라 의료 서비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의료의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데 있다”며 “단적으로 우리나라의 공공병원은 전체 의료기관 대비 8%에 불과해 OECD 평균 75%는 물론이고 그 비율이 가장 낮은 미국이나 일본의 35%~40%에도 턱 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의료기관이 공공병원인 이들 나라에서 소수의 영리법인 병원을 추진하는 것은 일부 부유층이 선택할 수 있는 고급 진료의 길을 열어주는 방안이겠지만, 대부분이 민간 병원인 우리나라에서 영리법인 병원을 추진하는 것은 대다수 국민들에게 높은 의료비를 강요하게 만들어 결국 의료의 ‘부익부 빈익빈’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민간 자본 유치해도 고용 창출 효과 등 미미해, 미국의 참담한 의료 현실 보라”
이들 단체는 정부가 의도하고 있는 의료 서비스로 민간 자본을 유치해 고용 창출 효과를 도모하겠다는 발상도 현실 근거가 빈약하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정부는 의료 서비스 영역에서 고용 창출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나고 있는 나라가 스웨덴, 영국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며 “국가가 의료 서비스 영역에 막대한 투자를 해 대부분의 병원이 공공병원인 이들 나라에서 고용 창출과 의료 서비스 영역의 내수 경기 활성화가 이뤄지고 있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들은 “정부가 좇고 있는 미국의 경우에는 병원조차 적은 인원으로 최대이윤을 올리기 위해 비정규직 고용을 확대하고 있는 현실을 보라”며 “미국 내에서 영리 병원과 비영리 병원을 비교하면 영리 병원이 의료비는 더 높지만 의료 서비스 질은 오히려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국내 총생산(GDP)의 14%가 의료 서비스에 투입되고 있는데도, 국민의 과반수가 적절한 의료 보장을 받지 못하고 4천5백만명 정도는 아예 아무런 의료 보장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결론적으로 “정부의 영리병원 허용 등의 정책은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는 사람을 더 많이 양산하는 의료 망국의 길”이라며 “정부가 병원 영리법인화 허용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참여정부와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한국 의료를 망친 정부와 장관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양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