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칼럼]복지재정 더욱 확대해야
정부·여당은 오는 2009년까지 복지예산을 연평균 9.3%씩 늘려 나가고 사회간접자본 투자 증가율은 1.6% 수준에 머물게 하는 결정을 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성장기반을 약화시키고 선심성 복지예산을 확대한” 결정이란 비판이 일부에서 일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 정도의 복지예산 확대 전망도 부족한 터에, 현재 우리 사회 내에서 일고 있는 비판은 다름아닌 양적 경제성장 중심의 사고, 복지와 경제의 선순환에 대한 몰이해, 현재의 사회적 위기상에 대한 나약한 이해 등에 기초한 발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사고의 틀이 요구된다. 짧은 압축성장 전략을 통해 산업사회를 통과해 온 우리지만, 이제 세계는 지구자본주의 시대로 전일화되었으며, 탈산업사회를 지나 기술과 인적자본이 중시되는 지식기반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이제 생산의 중심은 더 이상 물적 자본이 아니며 ‘사람’ 그 자체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바로 사람을 경시하는, 사람의 문제들을 소홀히 여기는 발상에 익숙해져 왔다. 그로인해 실업자로 전락하여 노동 능력이 쇠잔해 가는 사람들, 폭력과 빈곤에 시달려 가출이나 이혼을 선택하는 사람들, 죄없이 어린 시절을 빈곤과 학대 속에 살며 삶의 희망을 일찍부터 꺾은 사람들, 똑같은 천부적 인권을 지녔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우리 사회에 통합되어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 젊음을 바쳐 근대화의 일꾼이 되었지만 이제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비참한 여생을 보내는 사람들… 이들에게 경제가 성장하면 해결된다는 집단 최면을 요구해왔고, 부족한 국가재원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우리 스스로 합리화하며 온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제 이러한 ‘사람의 위기’는 이제 ‘사회의 위기’로 직결되고 있다. 그 위기의 진면목은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 인구 자체의 감소와 사회보장의 부실로 인한 양질의 노동력 유지 실패로 압축된다.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정부는 여전히 대책없는 ‘시멘트 재정’을 통해 엄청난 건물, 도로, 다리, 항만을 짓는 데에 열중하면서 ‘사람’의 문제를 등한히 해 온 것이 사실이다. ‘토목국가’라고 불릴 만큼 국가재정의 기조는 물적자본의 건설과 투자에 집착해 온 것이다. 이는 사회보장 지출비의 GDP 비중이 OECD 국가들 중 꼴찌라는 사실로도 명백히 증거되고 있다.
현재의 우리 사회는 복지의 확대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복지의 절대 부족이 경제성장의 잠재력과 동력을 훼손하는 상황을 걱정해야 할 것임에도 여전히 뒤바뀐 사고 속에서 복지의 확대를 선심성, 소비성, 경직성이란 수사로 훼절시키는 관성적 사고를 보이고 있다.
사실 정부에게 경제사업 예산을 확대하라고 하는 것은 시장주의적 사고에도 맞지 않는다. 경제는 민간에 맡기고 정부는 경기의 규칙을 정해 민간경제의 활성화를 도모해 주기만 하면 된다는 발상이 신자유주의적 사고의 핵심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내에는 이런 정통 신자유주의자가 없는지, 아직도 정부에게 시장 실패의 치유를 주문하기보다는 경제사업 자체를 주문하는 이가 많은 것은 또 하나의 사회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경제학계의 수많은 논문에서 복지와 경제가 상충한다는 것을 학문적 진리로 말하고 있지 않는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이것이 하나의 도그마로 가고 있다. 그러나 경제와 복지가 선순환하는 해법을 찾아 사람이 살고 사회가 회생하는 미래를 만들어 가는 사고의 대전환이 요구된다. 이런 측면에서 복지에 대한 정부의 투자는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이태수/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