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간판’, 이건희 회장 받침대로 끌려갔다”
이상호 MBC 기자, 이인용 전 앵커 삼성행 공개비판
신미희(sinmihee) 기자
▲ 지난 25일 중앙일보 인터넷 기사.
ⓒ2005 중앙일보 홈페이지
최근 삼성이 대언론홍보 강화를 위해 잇따라 기자 스카웃을 하고 있는 가운데 MBC 후배 기자가 이인용 전 부국장의 삼성행을 공개 비판하고 나섰다.
올해초 MBC 보도국 간부 등의 ‘명품 핸드백 수수’ 사건을 폭로해 파문을 일으켰던 이상호 기자는 25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MBC ‘간판’을 떼어내 삼성 이건희 회장의 연단 받침대로 끌어간 것”이라고 비난했다.
방송사 중견기자의 대기업 홍보임원행으로 주목과 함께 논란을 일으켰던 이 전 부국장 전직에 대해 내부 비판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이달초 MBC를 그만둔 이 전 부국장은 7월부터 삼성전자 홍보담당 전무로 일하게 된다.
이상호 기자는 ‘삼성이 사회와 소통하는데 앞장서겠다’던 이인용 전 부국장 발언에 대해 “”일등기자도 감시하기 힘들 만큼 자본권력이 비대해졌다면서 도대체 무슨 소통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자본독재’ 환생과 <중앙일보>의 ‘삼성’ 승전보
이 기자는 또 전두환 전 대통령 동생 전경환씨 사기 사건, 「삼성이 대한민국 최고의 파워조직」이라는 중앙일보 보도를 삼성의 ‘기자사냥’과 떨어질 수 없는 문제로 풀이했다.
지난해 ‘전두환 비자금’과 ‘전경환 위조채권 국제사기극’을 반년 넘게 심층 추적했던 그는 일련의 세 가지 사건에는 ‘자본독재’라는 배경이 도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과거 신군부 독재에 복속돼 물적기반을 확충했던 재벌이 ‘독재자 전두환’의 자리를 이어받았을 뿐 재벌과 재벌체제를 유지하는 사회 시스템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
이어 중앙일보 25일자 「대한민국 ‘파워조직’ 1위는 삼성」기사에 대해 “세 차례의 대선 비자금 수사를 뚫고온 삼성이 축적된 자본으로 ‘삼성은 일류이자 신뢰를 상징하는 슈퍼브랜드’라는 이미지를 대학과 미디어, 문화영역까지 투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이상호 기자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쓴 글이다. 이 기자의 양해를 얻어 주요 내용을 옮겨 싣는다.
2005년 한국 ‘독재’의 부활
산자는 기억하라! 오늘의 이름을
5월 25일 두 편의 기사가 실렸다. 2005년 한국의 현주소다. 독재자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가 ‘외자유치를 미끼로 건설업자로부터 7억원을 가로챘다’는 <문화일보> 기사와 ‘삼성이 대한민국 최고의 파워조직’이라는 <중앙일보> 기사다. 두 기사가 의미하는 2005년 오늘, 대한민국의 기상도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독재의 환생’이다. ‘자본독재’의 개시다.
전경환씨가 시퍼렇게 설칠 수 있는 배경에는 범법자인 그를 사실상 방치해온 대한민국 검찰이 있다. 지난해 4월과 5월, 우리(MBC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 취재팀은 전경환씨 국내외 위조채권 유통조직을 필리핀 현지검찰의 협조를 받아서 천신만고 끝에 자세히 고발한 바 있다.
하지만 끝내 검찰은 움직이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두환씨를 배경으로 온갖 사기극을 벌이고 있는 전경환씨를 고소, 고발했지만 한 건도 제대로 수사된 적이 없다. 취재하며 초로의 장년들이 펑펑 우는 모습을 많이 봤다. 어른도 너무 아프면 운다. 들썩이는 그들의 어깨 너머로 아직도 5공의 시간을 벗어나지 못한 검찰의 시계를 보았다.
‘독재자 전두환’의 비자금을 추적하기 위해 반년 가까운 시간을 칼날 위에서 지냈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둘째 아들의 회사를 뒤졌고 현직 경찰관으로부터 ‘황제경호’를 받으며 아직도 각하로 군림하고 있는 그의 위세 뒤엔 막강한 금권이 있음을 고발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한국의 사법부는 그의 연희동 철옹성 안으로 한발자국도 들어가지 못했다. 독재로 벌어들인 부정재산을 환수하겠다던 민주노동당은 국회로 걸어들어간 뒤 아무 말이 없다.
재벌과 그의 친구들, ‘독재자 전두환’ 자리 이어받다
‘전두환 독재’ 잔존세력의 유지 또는 확대 재생산을 촉진하는 이 땅의 음습한 기후는 과연 무엇일까? 참여정부의 엉성한 행정장악과 이빨 빠진 개혁칼날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자본독재의 도래가 그것이다. 돈이 말하고 돈이 통치하는 돈의 지배(governance)가 본격화된 탓이라는 말이다.
‘전두환의 금력’이 그의 존재기반(수구적 기득세력)을 강화해주고 그의 존재기반이 다시 그의 존재 자체를 보장해주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의 존재기반은 자본독재를 떠받드는 기득세력과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상당부분 겹치거나 일치한다. 친일 부역세력이 미군정기 혼란을 거쳐 친미 기회주의 세력으로 얼굴을 바꾼 것에 비견할 만하다.
20년 전 신군부 독재에 스스로 복속돼 물적 기반을 확충했던 재벌과 그 재벌을 떠받쳐온 각종 시스템. 재벌과 그의 친구들이 지금 ‘독재자 전두환’의 자리를 이어받은 것이다. 그들에게는 실로 눈물 나는(?) 20년만의 역전 드라마일 것이다. 재벌과 재벌체제를 유지하는 사회시스템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부패한 언론과 알아서 기는 검찰.
오늘 아침 유럽의 한 언론인은 ‘미국의 부패한 언론이 이라크의 살육전을 조장했다’고 땅을 쳤다. 그를 보며 하지만 나는 어린시절 부잣집 아들 보듯 부럽기만 했다. 단 한 명의 종군기자도 ‘살육의 땅’ 이라크 현지에 보내지 못한 ‘죽은 기자의 사회’에 사는 우리가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침통, 비통할 따름이다.
삼성의 분신인 <중앙일보>. 자본독재의 ‘육군사관학교’이자 ‘국정홍보처’인 중앙일보는 자신들의 정체를 스스로 밝히는 중요한 ‘자료’를 공개했다. 마치 쿠데타군이 내놓은 성명 1호를 연상시키는 「대한민국 ‘파워조직’ 1위는 삼성」 기사. 우리사회 전반이 자신들 아래 복속되었음을 선포하는 대국민 담화에 다름 아니었다.
국가 검찰권을 금권으로 장악해 세 차례의 대선 비자금 수사를 유유히 뚫고온 삼성. 그들은 축적된 자본의 네이팜탄으로 대학과 미디어, 심지어 문화영역까지 이미지 폭탄을 투하하며 강제적 일방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삼성은 일류이고 최고이며 신뢰를 상징하는 무소불위 ‘슈퍼 브랜드’라는 것이다. <중앙일보> 기사는 그 승전보를 전한 것이다.
죽도록 일하고 한마디의 조직적 불평도 허용되지 않는 그들의 노사관리처럼 삼성에 대한 불경스런 의심은 원천봉쇄 당하고 있다. 핸드폰 위치를 추적하든 초법적 족벌체제를 구축하든 모든 의심은 평화와 자유의 적이다. 이른바 자본보안법! 믿어라. 자본의 내일만을…
삼성의 ‘기자사냥’… 공영방송 앵커의 전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 숙인 너와 나. 하지만 삼성은 꺼진 불도 다시 보잔다. 오늘은 말을 못하지만 내일은 다시 꿈틀거리며 살아나 반란의 음모를 꾸밀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자본이 아니라 인간을, 경쟁이 아니라 공존을,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달라고 요구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사회각계와 더 많은 소통이 필요하다는 삼성 수뇌부 지시가 곧바로 떨어진다. 지시가 내려지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그들을 보라! 언론사마다 기자 사냥을 벌인다. 엊그제까지 공영방송의 앵커였던 보도국 간부를 하루아침에 삼성의 대변인으로 옮겨다 놓았다. MBC ‘간판’을 떼어내 삼성 이건희 회장의 연단 받침대로 끌어간 것이다.
한때 국민의 입을 자임했던 전직 MBC 일등기자는 감시자로서 기자직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며 삼성이 사회와 소통하는데 앞장서겠다는 말을 남겼다. 일등기자도 감시하기 힘들 만큼 자본권력이 비대해졌다면서 도대체 무슨 소통이 얼마나 더 필요하다는 것일까? 필요이상의 일방소통을 강제하는 체제를 우리는 독재라 부르지 않았던가.
영하 20도의 독재치하에서도 사회로 열려있던 대학의 스피커는 봄볕에 회로가 녹아버렸는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자본의 노래로 캠퍼스가 시끄러울 뿐이다. 대학은 이제 기업이다. 취업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퇴출되고 만다. 학생들 하나하나도 기업이다. 모든 시민이 기업이다. 일제히 한 방향으로 돈을 쫓고 이윤을 추구하는 2005년, 대한민국 서울의 거리.
20년 전 독재의 붕괴를 염원하며 밤새 시대를 목발질하던 그대, 지금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자본독재의 바벨탑을 쌓으려 넥타이 휘날리며 뺑뺑이 돌고 있는 중년, 바로 그대가 아니던가. 혹시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 택시 운전하는 아저씨를 봐도 가슴이 메어지고, 행상하는 아줌마를 보면 눈시울이 아파온다. 혹시 그들은 알고 있을까? 개천에서 용나거나 혹은 쨍하고 해뜰 날 같은 일, 이젠 없다는 것을.
그리하여 뼛속 가득 스며오는 생존을 위한 노동이 내일의 꿈으로 영그는 그런 쌍팔년도 유행가 가사 같은 꿈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 완성된(?)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이름하여 자본독재의 개시는 아무도 모르게 이렇게 시작되었다. 산자는 기억하라 오늘의 이름을!
2005/05/27 오전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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