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에 대한 망각, 반가워할 이들은 미국”

“김선일에 대한 망각, 반가워할 이들은 미국”  
  [현장] 고 김선일 사망 1주기 추모 및 자이툰 철수 문화제

  2005-06-27 오전 10:23:36      

  

  
  26일 오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이라크에서 희생된 고 김선일씨 사망 1주기를 기념해 파병반대국민행동이 주최한 추모식에 시민단체, 민주노동당, 학생 등 5백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시작된 이날 행사는 여름 장마를 예고하는 빗줄기 속에 마무리됐다.
  
  26일 오후, ‘고김선일 1주기 추모식 및 자이툰 부대 철군 문화제’ 열려
  
  마로니에 공원 입구에 추모식 무대가 설치됐고, 무대 앞과 공원 주변에 대열이 형성됐다. 각자 ‘김선일을 기억하라’, ‘자이툰부대 철수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이나 최근 이라크 상황을 전하는 소식지 등을 들고 있었다.
  
  국악그룹 ‘팔음’의 김선일 추모곡 <꽃무덤>이 공연되고, 민족문학작가회의의 김해자 시인의 추모시 낭독이 이어졌다. 마로니에 공원 곳곳에서는 반전과 평화를 알리는 전시물이 게시됐고, 반전 셔츠, 평화 음반 등이 판매됐다.
  
  반전평화단체 ‘다함께’ 회원들은 주말 나들이 나온 연인이나 가족들에게 자신들의 소식지를 판매하며 이라크 전쟁의 부당함과 자이툰 부대 철수 등을 설명하며 동참을 호소했다. 오후 한 낮 한가로움을 즐기던 할아버지·할머니도 나무그늘 아래 앉아 이들이 나눠준 소식지를 읽는 모습도 자주 목격됐다.
  

26일 오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고 김선일 사망 1주기 추모식 및 자이툰부대 철수 촉구 문화제’가 열렸다. ⓒ프레시안

  오후 3시40분경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의 연설로 2부 본행사가 시작됐다. 김 대표는 파병 연장 움직임을 보이는 정부를 비판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윤광웅 국방부장관은 지난13일 ‘파병연장’과 ‘자이툰부대 임무변경’을 주장한 바 있다.
  
  김 대표는 “많은 나라들이 철군을 하고, 미국 내에서도 전쟁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아가는데 왜 우리나라만 유독 파병을 연장하려는 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혜경 대표, “파병연장 저지에 당력 모으겠다”
  
  김 대표는 이어 “노무현 대통령이 정말 평화를 사랑하는지 궁금하며, 조지W.부시 미 대통령의 앞잡이라는 오명을 스스로 뒤짚어 쓰려는지 의문”이라며 “노무현 정부는 자이툰 부대가 이라크 민중들의 테러의 대상으로 전락한 사실을 알고 있는가”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또 “지난해 원내 입성과 함께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파병반대운동을 했던 민주노동당은 올해 말 정부의 파병연장 움직임을 막고, 자이툰 부대를 철수하는데 전 당력을 모으겠다”고 약속했다.
  
  평화를만드는여성회 김정수 공동대표는 “그동안 잊고 지냈던 김선일씨 부모님의 얼굴도 1주기를 기억하는 집회 포스터를 통해 다시 봤다”며 지난해에 비해 반전과 평화의 목소리가 시들해진 스스로부터 질책했다.
  
  김 대표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슬픈 모습은 여전하다. 김선일씨 아버지 모습은 대부분 우리가 잊고 있던 수많은 이라크인들의 모습”이라며 “하지만 지구 저편에서 매일 들려오는 죽음의 소식에 우리는 벌써 무감각해지고 무기력해지고 체념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마로니에 공원 곳곳에는 반전평화 메시지가 담긴 T-셔츠와 음반이 판매됐고, 자이툰 부대 철수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펼쳐졌다. 오른쪽은 한 노인이 시민단체활동가들이 나눠준 소식지를 읽고 있는 모습. ⓒ프레시안

  ”연민과 분노의 감성 무감각해져…정부와 미국이 기뻐할 것”
  
  그는 이어 “이라크에 대한 연민과 분노의 감성이 무감각해지는 바로 이런 모습을 이라크 파병을 한 정부 당국이나 미국 정부가 가장 기뻐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한다”며 “실제로 우리가 아무런 저항의 목소리를 내지 않은 틈을 타 정부는 파병연장동의안이나 자이툰 부대의 역할 변경을 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국내에서 열린 세계여성학대회에 참석한 페미니스트 국제정치학자 ‘신시아 인로’ 교수(미국 클라크대)의 말을 인용, “권력있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라며 “감수성이 살아 있어야 냉소가 아닌 연대로, 구체적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다함께’ 김광일 운영위원은 “올해 하반기를 파병연장 반대와 자이툰 부대 철수 운동으로 가득채우자”고 촉구했고, 참여연대 이태호 정책실장은 “파병의 댓가로 양심과 진실, 민주주의를 내놓아야 했다”고 주장했다.
  
  또 이소형 사회진보연대 회원은 “미군 수용소 아부그라이브에서 성폭행을 당했던 한 이라크 여성은 풀려난 뒤 가족들에게 ‘명예살인’의 희생자가 됐다”며 “전쟁의 결과를 두고 단순히 ‘참혹했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전쟁을 가능하게 한 일상속의 무수한 폭력성과, 이 폭력에 대한 보복 폭력의 악순환에 대해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갑자기 내린 비로 행사장이 조금 어수선하다. 우산을 펼쳐들고 비옷을 입었지만, 자리를 쉽게 뜨지는 않았다. 오른쪽은 행진장면. ⓒ프레시안

  닉버그 아버지 ‘마이클 버그’ 연대메시지 전달
  
  또한 이라크 저항세력의 최초의 민간인 살해 사건의 희생자인 미국인 ‘닉 버그’(Nicholas Berg)의 아버지 ‘마이클 버그의 연대 메시지도 전달됐다.
  
  지난해 방한해 국내 반전운동에 동참하기도 했던 마이클 버그는 “한국 사람들에게 결코 포기하지 말 것을 당부하기 위해 펜을 들었다”며 “미국 제국주의가 존재하는 한, 우리가 거기에 맞서 끊임없이 싸워야 하고, 이 싸움은 깨어있는 한국인과 미국인들을 연결시켜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불필요한 죽음들로부터 우리가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것도 이 죽음을 정당화시킬 순 없을 것”이라며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우리가 실천하는 일들이 악의 무리에 맞선 선량한 사람들이 존재했음을 우리 자손에게 보여준다는 희망을 가지고 당장 정의를 실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행사는 광화문까지 행진을 끝으로 오후 6시경 마무리됐다. 이날 행사 참가자들은 행진 내내 반전-평화를 외쳤고, 자이툰 부대 철군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김경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