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병원 다시 태어날 수 있나”
[기획] 서울대병원 어떻게 할까 (1) 서울대에 이어 병원도 논란의 核 부상
2005-07-11 오전 9:21:41
서울대학교에 이어 이번엔 서울대학교병원이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이 논란의 귀추에 따라 서울대병원을 포함한 국립대학교병원들의 위상과 성격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 우리사회 공공의료의 진로도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최근 노무현 정부는 ‘병원 영리법인 허용’과 같은 보건의료 산업화 정책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보건의료 공공성 확충’을 중요한 정책 과제로 제시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 방안은 4조 원이 넘는 예산 확보부터 구체적인 계획안까지 허점투성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최근엔 보건의료 공공성 강화의 일환으로 서울대병원의 변화를 놓고 정부, 서울대병원 등이 대립하며 갈팡질팡하는 상황이다. 서울대병원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프레시안>은 이미 ‘태풍의 눈’에 들어가 있으면서도 사회적으로 내실있는 토론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서울대병원 논란을 지켜보면서 건강하고도 합리적인 보건의료 공공성 강화 정책을 도출하기 위해 각계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를 마련한다. <편집자>
서울대학교에 이어 서울대학교병원이 논란의 핵이 된 계기는 정부가 마련했다. 정부가 보건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명분으로 서울대병원의 개혁을 구상하고 있는 데다 ‘서울대학교병원설치법 폐지안’이 최근 제출됐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에 이어 서울대학교병원도 논란 핵심에
이와 관련해 서울대병원은 11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서울대병원의 위상과 역할’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 예정이다. 서울대병원 측은 “변화하는 보건의료 현실에서 병원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라고 취지를 밝혔다. 하지만 ‘공공의료 수행자로서 서울대병원의 역할’, ‘한국 의료 경쟁력 선도자로서 서울대병원의 역할’과 같은 발표에서 알 수 있듯이 최근 서울대병원을 둘러싼 논란에 항변하는 자리의 성격이 짙다.
앞서 5일에는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들이 긴급 간담회를 갖고 열린우리당 구논회 의원이 6월 28일 발의한 서울대병원설치법 폐지안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교수들은 “서울대병원은 그 동안 사실상 국가 중앙병원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며 이번 폐지안 제기와 같은 최근의 움직임에 강한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자리에서는 서울대병원설치법 폐지안을 발의한 28명 의원의 출신 대학 자료까지 배포된 것으로 확인됐다. 공교롭게도 28명 의원 중에서 서울대학교 출신은 단 4명뿐이었다.
서울대병원설치법 폐지안에 우려 섞인 눈길을 보내는 것은 서울대병원 노동조합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대병원 노조는 이 폐지안이 발의되자마자 “서울대병원에 대한 보호막을 걷는 것은 오히려 서울대병원의 공공성을 훼손할 수 있다”며 공개적으로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정부의 보건의료 공공성 강화 정책의 일환으로 서울대학교병원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를 놓고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대학교병원 전경. ⓒ연합뉴스
서울대학교병원 교육부에서 복지부로 이관도 논란
사실 서울대병원을 둘러싼 논란은 지난 5월 보건복지부가 보건의료 공공성 확충 대책을 내놓을 때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복지부는 향후 5년간 총 4조30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보건의료 공공성을 확충할 계획을 밝혔다. 이 계획의 핵심에는 각 지역의 국립대 병원을 권역별 공공보건 중심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 구상이 포함돼 있다. 지금까지 교육인적자원부가 관할하던 국립대 병원을 복지부로 이관하는 내용도 이 구상의 연장선상에서 검토되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서울대병원 역시 이관 대상이다.
이번에 발의된 서울대병원설치법 폐지안은 표면적으로는 이런 움직임과는 별개다. 구논회 의원은 폐지안 발의의 이유를 “1977년에 제정된 서울대병원설치법은 1991년에 제정된 국립대병원설치법과 동일한 설치 목적과 사업 내용 등을 규정하고 있어 굳이 별도의 설치법으로 존속될 필요성이 희박하다”며 “오히려 학벌주의나 특권 의식을 조장하고 지방 국립대병원의 균형 발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구논회 의원실 관계자도 “이 폐지안은 서울대병원의 복지부 이관이나 보건의료 공공성 확충 대책과는 전혀 별개로 마련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대학교병원설치법 폐지는 서울대학교병원 흔들기 ‘신호탄’?
하지만 서울대병원이나 노조의 입장은 다르다. 복지부 이관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이 법은 사실상 서울대병원 흔들기의 ‘신호탄’이라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성명훈 기획조정실장은 “서울대병원설치법은 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교육부 차관이 당연직 이사로 참여하는 등 명실상부한 국가 중앙병원의 위상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서울대병원의 근간”이라며 “이 법을 폐지하는 것은 사실상 지방 국립대 병원과 서울대병원을 동급으로 간주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방 국립대 병원은 그 지방의 핵심 공공 의료기관에 머무르지만 서울대병원은 서울과 수도권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핵심 공공 의료기관이라는 점에서 차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 실장은 “서울대병원 역시 보건의료 공공성 강화의 큰 대의에는 적극 동참하겠지만 지금과 같은 움직임은 보건의료 공공성 강화라는 원래 목적과는 달리 서울대병원을 포함한 국립대병원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하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대병원 노조 역시 강조점은 다르지만 반발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대병원 노조 관계자는 “서울대병원이 그간 돈벌이 위주의 경영을 해 왔고 공공의료 기관으로 제 역할을 못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서울대병원이 다른 병원이 하지 못하는 난치병 연구ㆍ진료 등에 있어 교육ㆍ연구기관의 몫을 맡아 왔고 앞으로도 공공의료 기관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이 보장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노조의 이중적인 입장에서는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도 엿보인다. 한 보건의료 관련 노조 관계자는 “서울대병원설치법이 폐지되고 복지부의 서울대병원 개혁 움직임이 본격화되면 서울대병원도 구조조정 될 가능성이 크다”며 서울대병원 노조의 속사정을 전했다.
복지부, “확정된 것 아무 것도 없어, 복지부-서울대병원 대립 없다”
현재 서울대병원설치법 폐지안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런 움직임에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복지부다.
복지부 관계자는 “서울대병원을 복지부로 이관할지, 서울대병원을 보건의료 공공성 확충의 구상 속에 어떻게 배치할지 결정된 게 아무 것도 없다”며 “보건의료 공공성 확충과 전혀 상관없는 서울대병원설치법 폐지안 때문에 이 문제가 불거져 곤욕스럽다”고 지적했다.
복지부의 다른 관계자는 서울대병원설치법 폐지안에 대해서도 “폐지안이 통과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보건의료 공공성 확충과 관련된 구체적인 안이 나오기도 전에 복지부와 서울대병원 간 대립으로 비춰지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을 아꼈다.
시민ㆍ사회단체, “정부-서울대병원 모두 답답” “형식보다 내용에 대해 토론해야
이런 일련의 흐름 속에서 사실 가장 답답한 측은 그 동안 서울대병원의 공공성 강화를 일관되게 주장해 왔던 시민ㆍ사회단체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복지부의 서울대병원 개혁 방안이나 서울대병원 측의 주장 모두 공공의 이익과는 거리가 멀다는 인식 때문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은 “현재 진행 중인 보건의료 공공성 확충이라는 맥락과 무관하게 서울대병원설치법 폐지안을 내놓은 의원들이나 여기저기 눈치만 보며 서울대병원 개혁을 주저하고 있는 교육부ㆍ복지부 모두 문제가 있다”며 “서울대병원 개혁 논의는 현재 국가 공공 보건의료에서 서울대병원이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을 냉정하게 따져보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단적으로 서울대병원과 지방 국립대 병원 간의 양적ㆍ질적 차이가 큰 현실에서 무작정 서울대병원과 지방 국립대 병원을 동일화하자는 접근으로는 오히려 공공 보건의료 확충이라는 큰 맥락에서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우 실장은 “사실 서울대병원은 지금까지 공공의료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거의 포기해 왔다”며 “지금 논의의 초점은 소관 행정부처의 변경, 관련법의 개폐 등과 같은 형식적인 요건이 아니라 서울대병원이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는 실제적인 내용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강주성 대표도 동감을 표시했다. 강 대표는 “작년에 국립대병원의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병실(현재 6인실 이상) 현황을 조사해본 결과 서울대병원이 유일하게 법정 기준 미달 상태였다”며 “이처럼 사립대 병원과 차이 없이 돈벌이에 치중하는 지금의 서울대병원을 환자나 시민 입장에서는 지지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서울대병원이 우선 공공성 강화를 위해 변화하는 모습을 보일 때 환자, 시민 역시 서울대병원이나 노조의 자기갱생 움직임을 지지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양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