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WTO 농업협상 교착…홍콩 각료회의 좌초위기

WTO 농업협상 교착…홍콩 각료회의 좌초위기  
  아펙 회의, ‘반세계화운동의 전초전’으로 부상

  2005-10-25 오후 2:53:15      

  

  
  DDA(도하 개발아젠다) 농업협상이 교착국면에 빠져든 채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주 중반까지만 해도 EU(유럽연합)가 미국의 관세상한제 도입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조만간 DDA 농업협상이 타결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을 낳았지만, 관세 감축폭을 두고 EU 진영과 미국이 서로 첨예한 의견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반세계화 운동 진영은 이번 DDA 농업협상 결과를 바탕으로 12월 중순에 홍콩에서 열릴 예정인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 맞춰 대규모 시위, 이른바 홍콩대첩을 벌일 준비를 하고 있다. 국내의 반세계화 운동 세력도 포함된 세계 각지의 반세계화 운동가들은 홍콩 각료회의의 부당성을 적극 알려나간다는 방침이어서 이들의 활동이 주목된다.
  
  DDA 농업협상, 급진전에서 교착국면으로 전환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DDA 농업협상은 처음엔 순항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 등 농산물 수출국이 요구한 관세상한제 도입을 EU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국내 언론은 “한국에 불리한 방향으로 DDA 농업협상이 급진전되고 있다”는 등으로 앞다투어 보도했다.
  
  수입 농산물에 일정 수준 이상의 관세를 매기지 못하도록 하는 관세상한제가 이번 DDA 농업협상에서 합의될 경우 고율의 관세 아래에서 보호 받아 오던 국내 농가들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경우에는 DDA 농업협상 결과를 지켜본 뒤에 쌀 협상안을 국회에서 비준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해 온 민주노동당과 농민단체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같은 기류는 지난주 후반에 역전된 것으로 보인다. 급진전되던 협상이 교착 국면으로 전환된 것이다.
  
  25일 외신보도에 따르면, 이번 DDA 농업협상에서 미국과 EU는 관세감축 범위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다. 특히 지난 20일 자국내 농업 보호를 위해 상당한 농업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프랑스가 미국이 요구하는 수준의 관세감축안을 내놓기를 거부하면서 협상장 분위기는 매우 냉랭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요구하는 평균 관세감축폭은 75%, 유력 수출개도국 그룹인 G20의 평균 관세감축폭은 54%로 EU가 희망하는 평균 25%를 크게 웃돌고 있다. 여기에 EU가 기존안에서 물러나 더 높은 관세감축폭을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프랑스 등은 더 이상의 양보는 불가능하다고 버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폴 월포위츠 세계은행 총재는 이와 관련 “모든 협상 참여국이 진지한 양보안을 내놓지 않는 한 DDA 협상은 실패할 것”이라고 말해 위기감을 조성했고, 홍콩의 존 창 상공부 장관은 “(DDA의 실패로)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또다시 좌초하게 된다면 세계무역기구 자체의 신뢰성이 파괴될 것”이라며 교착 국면에 처한 협상 분위기를 공식화하기에 이르렀다.
  
  저개발국-농산물 수입국그룹 반발도 만만찮아
  
  여기에 DDA 협상에서 한 축을 맡고 있는 ‘저개발국가’들과 ‘농산물 수입국그룹’들이 ‘컨센서스(합의)’를 강조하고 나선 대목도 DDA 협상 타결을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79개 저개발국들로 이뤄진 ACP(아시아·카브리해·태평양) 그룹은 지난 21일 “우선적 관심사가 반영되지 않는다면 컨센서스에 동참할 수 없다”며 EU-미국 중심으로 진행되는 DDA 협상방식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또한 한국과 일본, 스위스 등이 참여하는 농산물 수입국그룹(G10)도 같은 날 자국 시장 보호를 위해서는 최악의 경우에 WTO 홍콩 각료회의를 결렬시키는 길을 택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G10의 대표격인 스위스의 루치우스 바세차 대사는 “원치는 않지만 만일 현실에서 크게 벗어나는 상황이 생긴다면, 우리는 ‘노(NO)’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G10 내부에는 다른 그룹들이 합리적이지 않다면 매우 어려운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절대적인 컨센서스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강경한 입장을 보인 것은 관세감축이 40% 이하가 돼야만 자국 농업이 생존할 수 있다는 절박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즉 미국 등 농산물수출국이 75% 관세 감축안을 요구하는 것은 터무니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DDA 협상장 분위기를 종합해 볼 때 이달 내에 협상국 간의 대타협이 이뤄져 다음달 중반까지는 WTO 홍콩 각료회의에 제출할 협상 모델리티(세부원칙)의 1차 초안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당초 미국 등의 ‘낙관론’은 퇴조한 것으로 보인다.
  
  APEC, WTO 홍콩 각료회의 앞서 DDA 전장이 될 듯
  
  한편 반세계화 운동 진영은 이렇게 DDA 협상이 교착 국면에 접어들자, 12월 홍콩 WTO 각료회의에 앞서 열리는 부산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회의를 주목하고 있다. APEC과 WTO는 그 회원국 구성이 다르지만, WTO 각료회의에 대비한 DDA 농업협상이 교착상태에서 계속 벗어나지 못할 경우에는 APEC 회의 기간 중에 참여 국가들이 그에 관한 물밑협상을 벌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6월 초 제주에서 열린 APEC 통상장관회의에서는 그동안 DDA 협상의 난제 중 하나인 공산품(비농산물) 부문의 관세를 대폭 낮추기로 하는 합의안을 마련해 DDA 협상에 힘을 실어준 사례가 있다.
  
  따라서 DDA 농업협상이 좌초될 경우 미국 등 농산물 수출국들이 이번에 한국에서 열리는 APEC 회의에서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회의 참가국들에게 설득할 가능성이 높다.
  
  ’APEC 반대·부시 반대 국민행동’의 김어진 홍보위원장은 “DDA 협상의 주요한 축인 EU가 APEC 회의에 참여하지 않지만, 미국 등은 자신들의 입장 관철을 위해 APEC 회의를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본다”며 “이는 세계 각지의 반세계화 운동가들이 APEC 회의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특히 DDA 협상이 총괄적으로 다뤄지는 WTO 각료회의가 이번 APEC 회의의 꼭 한 달 뒤에 열린다는 점에서 APEC 회의는 WTO 각료회의의 전초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표적 반세계화 운동단체인 ‘비아 까페시나’, 국제공공노련(PSI) 등은 홍콩 WTO 각료회의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세계화 시위를 홍콩에서 벌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위에는 우리나라의 전국농민회총연맹이 1500여 명을 파견하는 등 국내 반세계화 운동단체들도 다수 참여할 예정이다.  
    
  
  김경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