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비상사태에 왜 미적거리나
인류에게 대재앙을 가져올 것으로 우려되는 조류 인플루엔자(AI)의 인체감염 사태에 대비한 정부의 대응이 어딘지 어설픈 느낌이 든다.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 왠지 불안하다. 조류 인플루엔자와 관련된 일련의 조치들이 확고한 목표나 짜임새 있는 플랜에 의해 일사분란하고 조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듯 보인다.
유일한 예방 및 치료약인 타미플루(Tamiflu)의 안정적인 생산 및 공급과 관련해서 정부는 주저할 것 없이 확고한 입장을 취하고 관련정책을 조속히 그리고 분명히 내놔야 한다. 조류 인플루엔자 대유행시 수백만명이 사경을 헤매고 수십만명이 죽어나갈 위험이 있는 판국에 도대체 뭘 망설이는가. 검토하고 타진하고 알아보는 등 돌다리를 두드리는중에 조류 인플루엔자는 이미 코앞에 닥쳐왔다.
지금은 특허권을 감안할 그런 시기가 아니다.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이 전 세계 곳곳에서 보고되고 있고 우리나라에도 조만간 상륙할 가능성이 대단히 농후하다. 주변국인 동남아에서는 수십명이 벌써 인체감염으로 사망했다는 보고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미칠 파상적인 위험상황을 감안하면 인접 국가들의 상황을 보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미 준 국가비상사태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허법에 따르면 국가비상사태시 정부는 특허권자와 사전에 협의할 필요 없이 임의로 필요한 양의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미 적색등이 켜진 상황에서 생산 준비를 완비하고 만약의 사태에 스탬바이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강제실시권(compulsory license) 을 내릴지 말지, 공동생산을 할지, 자체생산을 할지, 언제부터 생산에 들어갈지 등을 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외신보도를 보면 인도를 비롯한 태국, 필리핀, 아르헨티나, 대만, 중국, 타이완 등이 강제실시를 통한 자국 내 생산을 사실상 결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국가 중에는 특허권과는 무관하게 자체생산을 선언한 곳도 있다. 스위스 로슈사가 우리에게도 공동생산을 제의해 온 상황이지만 지금 그런 절차 따지고 상황 판단하고 할 느긋한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허권자와 관련한 부분이 국민 수십만명의 생명 보다 소중하지 않다. 강제실시권을 확대 해석하면 특허권자와 관련된 부분은 훗날 보상금을 지급하면 된다. 아울러 로슈사도 조류 인플루엔자 유행 시 닥칠 인류의 대재앙을 생각한다면 지금은 특허나 비즈니스를 논할 때인가를 묻고 싶다. 로슈는 전 세계적인 글로벌 제약회사다. 이번 기회에 일정 기간 동안 자체적으로 특허권 잠정중단을 내리는 지혜를 내는 용기가 있기를 바란다.
정부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이지 못한 정책에 대해 한심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은 치료약을 생산할 수 있는 업체에 앞뒤 안가리고 도움을 줄 때다. 그런데 그나마 대량 생산시설을 완비한 것으로 알려진 한미약품의 발표에 공시를 위반했느니 뭐니를 따지고 있으니 도대체 정부는 어느 나라 정부인가. 그것도 정부 발표의 후속조치로 단순한 답변형식의 발표인데도 공시를 위반했다고 야단치는 정부이니 도무지 할 말이 없다.
보험기준을 확대 적용하는 것도 그렇다. 그것을 나무라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그런 어줍잖은 조치들이 사실상 ‘뒷짐’지는 모습이라는 것을 모르는가. 보험적용 확대가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촌각을 다투는 우선순위에 있는 일은 제처두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보험적용 범위와는 무관하게 전 국민에게 치료약을 전면 무상으로 나눠줘도 시워찮을 판국이고 그것을 어떻게 적기에 공급할 방법을 찾는 것이 먼저라는 얘기다.
정부는 법이 좀 부족하면 당장 보완하고 새로 만들어서라도 강제실시권을 즉각 발동해야 한다. 그리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업체들 리스트와 그 업체들의 생산시기는 각각 언제이고 얼마나 생산이 가능한지 등을 관련인력을 풀가동 해서라도 실사에 나서 그 결과를 국민에게 확실하게 공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일들이 잘 안되고 미적거리고 있는 이유가 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데일리팜 (dreamdrug@dreamdrug.com)
기사 입력 시간 : 2005-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