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조류독감 키우는 의약품 특허

조류독감 키우는 의약품 특허
세계의창

  

▲ 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센터 공동소장

  

공중보건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사람끼리도 전염되는 바이러스로 변이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 50%에 이르는 치사율을 감안할 때 이런 돌연변이는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 그런데 의약품은 공급 부족 상태다. 특허로 보호받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수천만 명이 의약품 특허 탓에 머잖아 죽음에 직면할 수도 있다. 어떻게 인류는 이런 상태에 빠진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 의약업계가 미국의 관련 정책에 엄청난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고,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압도적 지배세력이기 때문이다. 1994년 세계무역기구 우루과이 라운드 협정에서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 협정’(트립스·TRIPs) 조항들이 첨부됐다. 이는 세계무역체제 안에 들기를 바라는 나라라면 미국식 특허법을 존중하는 데 합의해야 함을 뜻한다. 트립스는 미국의 엔터테인먼트업계, 소프트웨어업계 및 다른 강력한 산업계에도 비슷한 혜택을 제공했다.

세계무역기구는 무역 장벽 철폐에 주력한다. 하지만 트립스는 그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트립스는 의약업체들이 경쟁 시장가격의 5배, 10배, 심지어 100배로 의약품을 팔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정부인가 독점을 창출했다. 특허 및 다른 형태의 지적재산권은 보호주의적 장벽을 만들었고, 여기서 비롯된 경제적 비효율성은 제조업 상품과 농산품에 남아 있는 무역 장벽들을 없애는 데서 나오는 이득을 훨씬 넘어선다.

의약업계는 특허를 독점해 이익을 보장받아야 신약 연구에 뛰어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냐 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의약업계 못지 않게 생의학 연구에 돈을 쓰고 있다. 그 대부분이 (신약 개발이 아니라) 기초 연구를 지원하는 것이다. 의약업계도 이 연구의 높은 수준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연구에 지출하는 재원을 두 배로 늘리고 신약 개발에 확실히 지원을 한다고 해보자. 모든 신약은, 상표 등록이 필요없는 약들처럼, 경쟁시장에서 팔릴 것이다. 미국은 이를 통해 의약업계가 대는 연구비 규모의 약 5배에 이르는 비용을 아낄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납세자들은 비용이 줄어든 만큼 싸게 의약품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모든 신약이 경쟁가격에 팔린다면 가난한 사람들도 신약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특허 독점 철폐의 효과는 이것만이 아니다. 의약업체들은 이미 나와 있는 의약품을 베끼다시피 하는 의약품을 개발하고 있는데, 의약업계의 자료를 보면 연구비의 3분의 2 가까이가 이런 ‘모방’ 의약품 개발에 낭비되고 있다. 특허 독점이 없다면, 모방 의약품 개발에 자원이 낭비될 이유가 없다. 또, 품질과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값싼 모방 의약품이 유통되는 문제도 사라질 것이다.

게다가, 특허가 지원하는 연구는 폐쇄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결과가 공유되는 연구보다 진행이 더디고, 연구 결과의 신뢰도도 떨어질 수 있다. 의약업체가 자사의 약을 나쁘게 평가한 연구 결과물을 숨기고 있다는 보도가 매주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십억달러가 걸린 상황에서는 놀랄 일이 아니다.

미국은 지난 50년 동안 세계를 위해 많은 기여를 해왔다. 그러나 의약품 특허를 강요하는 것은 예외다. 특허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어야 할 중세 유럽 길드 시스템의 낡은 유산이다.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때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한다고 믿는다. 의약품 특허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특허 보호 때문에 죽음에 직면해서는 안 된다.

딘 베이커/미국 경제정책센터 공동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