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천봉쇄한 제주특별법 공청회는 무효
왜냐면
최소한의 법적 절차마저도 무시한 채, 정부청사 밀실에서 법안 지지자들만 모아 하는 모임, 의견을 밝히고 싶은 국민의 참여를 공권력으로 봉쇄하는 모임은 누가 보아도 ‘공청회’가 아니다.
정부에서 지금 ‘제주도 특별자치도법안’이라는 걸 추진하고 있다. 제주도에 자치입법권과 재정권과 인사 자율성을 강화하고, 교육개방, 의료개방에 영리병원 설립도 허용하는 등 제주도를 ‘자치’하자는 건지, 기업과 자본한테 떼어서 넘겨주자(분리 독립)는 건지 알 수 없는, 법조문만 134쪽에 이르는 방대한 법안이다. 이러한 법안을 이달 4일 입법예고한 정부는 단 일주일 만에 제주, 서울 공청회를 모두 해치우고 2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하였으며 연내 법안 통과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법안에 평소 관심이 있어서 생업마저 뒤로 미루고 지난 11일 오후 2시쯤 서울 공청회 장소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로 갔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중앙청사는 두세 겹의 전경들로 철통같이 봉쇄되어 있었으며, 사전에 신청한 단체별 두 사람말고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사전 신청서는 공청회 전날 일부 단체에 팩스로 전달되었고, 반대단체에는 대부분 팩스도 들어오지 않았다.)
공청회에 들어가기 위해 청사 정문 앞에 대기 중이던 100여명의 시민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은 전경들에 의해 차도에 포위·감금됐으며, 공청회 시작 시간인 오후 3시가 되자 비로소 불법감금을 해제시켜 주었으나 역시 공청회 입장은 봉쇄되었다.
‘공청회’를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국가나 공공단체가 중요 안건을 의결함에 앞서, 일반 국민이나 이해 당사자 및 전문가 등으로부터 공개 석상에서 의견을 듣는 제도, 또는 그런 모임”이라 되어 있다.
법안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11월11일의 공청회는 공청회가 아니었다. 행정절차법상 공청회는 14일 전에 개최공고를 해야 하고, 입법예고는 20일 이상 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최소한의 법적 절차마저도 무시한 채, 정부청사 밀실에서 법안 지지자들만 모아 하는 모임, 의견을 말하고 싶은 국민의 참여를 공권력으로 봉쇄한 채 벌인 모임은 누가 보아도 ‘공청회’가 아니다.
같은날 같은시간 제주 공청회 역시 참여가 봉쇄되었으며, 공청회 진행에 문제제기를 하는 방청객을 도청 공무원이 강제로 끌어내고, 공청회에 참석하려던 임신 5개월의 임신부가 경찰한테 끌려 실신한 채 119 구급차에 실려가는 일까지 발생했다.
정부는 11월9일 예정되었던 제주 공청회가 시민단체의 반발로 무산되자 이런 공청회 원천봉쇄 방침을 결정했다고 한다. 시민단체의 반발이 두려웠다면 좀더 시간을 두고 폭넓은 토론과 이해의 시간을 가지든지, 그래도 강행하고 싶었다면 시민단체에서 물리력을 저지하려는 행동이 나타났을 때, 공권력을 행사해도 늦지는 않았을 것이며, 정부 역시 명분이 섰을 것이다.
그러나 11일의 모임은 절대 공청회가 아니었으며, 이를 정부가 합법적인 절차였다고 우기고 국회의 입법절차를 강행한다면, 과거 체육관에서 뽑은 대통령도 합법적인 절차를 거친 대통령이라고 우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민이 ‘체육관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듯, 공청회도 거치지 않은 밀실 법안 역시 법안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언론에서 별로 다루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법안은 제주도에만 국한되지 않고 우리나라 의료제도와 교육제도 등의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많은 독소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많은 시민단체는 이 법안이 제주도의 자치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며, 특히 의료분야에서 의료를 통한 기업적인 돈벌이를 합법화하는 영리병원 허용에 반대하고 이것이 우리나라의 의료제도를 기업에 팔아먹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적어도 이런 방대하고 중요한 법안을 뭐가 그리 급하다고 두 달도 안 되는 기간에 입법 절차를 서둘러 끝내려는지 정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 이처럼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정부에 정치적 이해와 검은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런 법적 근거 없는 11일의 불법 원천봉쇄 날치기 공청회는 완전히 무효이다. 정부는 제주도특별자치법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논의를 거치고 공청회 일정을 다시 잡아야 한다.
김의동/치과의사·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사업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