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전영철씨, 농민대회 직후부터 뇌출혈 증상
부검참여했던 원진호 원장, “어떻게 충격 받았는지가 핵심”
기사돌려보기 김경환 기자
농민대회에 참여했다 경찰의 폭력에 숨진 고 전용철 농민. 사인을 두고 경찰은 계속해서 고인의 과실로 인한 자연사로 몰아가려 하고 있다. 그러나, 고인의 동료 농민들과 사회단체들은 경찰폭력에 의한 명백한 타살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직접 부검에 참여했던 내과 전문의의 소견은 어떤 것일까?
<민중의소리>는 24일 충남 보령 병원에서 있었던 부검에 농민측 추천으로 참여했던 ‘원진호 내과’ 원진호 원장과 25일 인터뷰를 가졌다.
”정지된 물체에 부딪혀서 타박이 생겼다는 건 잘못”
인터뷰에서 원진호 원장은 일부 언론에서 고인이 ‘정지된 물체에 부딪혔다’고 보도가 된 것과 관련해서 “정지된 물체라고 표현한 것은 공식적인 국과수의 발표는 아니다”고 밝혔다.
그런 얘기가 나온 것은 부검이 끝난 뒤 고인의 머리 뒤에 나 있는 표피박탈(피부까짐)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묻는 과정에서 와전된 것이다. ‘정지된 물체에 부딪혀서도 생길 수 있느냐’는 질문에 국과수측 부검의가 그럴수도 있다고 답한 것 뿐이라는 말이다.
원 원장은 “문제는 어떻게 충격을 받았냐는 것이고 이게 포인트인데, 국과수는 차후에 수사를 구체적으로 하면서 밝힐 문제지, 현재 부검해서 알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했다. 여기까지가 공식적인 멘트다”라고 밝혔다.
이날 부검결과 고인은 “충격을 후두부(뒤통수)에 받고 그로 인해 전두부(머리 앞쪽)에 뇌출혈이 생겼고, 치료가 안돼서 사망한 것”이라는 결론에 다달았다. 그외에도 눈 위쪽에 골절이 있고, 피멍이 든 부분이 있었다. 몸 여기저기에도 멍 자국이 있었다.
부검은 멍 자국에 대해서도 표피박탈(피부를 벗겨냄)을 일일이 하면서 확인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 결과 의미있는 피멍은 왼쪽 어깨쪽과 왼쪽 엉덩이쪽에 있었다고 원 원장은 밝혔다. 엉덩이에는 찰과상이 나 있었다. 나머지는 부검상으로는 큰 의미가 없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부검은 왜 죽었는가를 따지는 데에 목적이 있기 때문에 죽음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 않는 상처나 멍들은 별반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머리 뒤쪽에 넓은 면적의 물체에 강하게 부딪힌 충격으로 뇌출혈 일으켜”
그렇다면 머리 뒤쪽의 상처는 어떻게 난 것일까?
원 원장은 이와 관련 “머리 뒤쪽 두피에 찰과상이 있는데 예리한 각진 흉기로 맞은 게 아니라 넓은 면적의 어떤 것에 부딪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리하거나 각진 흉기로 인한 것이라면 찢어지는 등 열상이 있어야 하지만 상처는 미끄러져서 넘어져 생기는 찰과상 수준.
그러나, 부딪힐때의 충격은 매우 강한 것이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두개골 골절이 4cm 정도 있었는데, ‘주정부 봉합선’ 쪽으로 충격이 전달돼서 이게 벌어져 있었다. 다시 말해서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다는 말이다.”
15일 농민대회 당시 경찰은 방패를 휘두르며 농민들이 서 있는 대열을 밀고 들어왔다. 그 와중에 상당수의 농민들이 방패에 찍히거나 밀려 넘어지면서 다쳤다. 현재까지 취합된 증인들의 증언들을 종합해보면 당시 고인도 경찰에 폭행당한 것으로 보인다.
당일 경찰 진압후에 고인을 만났다는 호서대학생 임나영(23)씨의 증언에 따르면 고인은 뒤통수를 가리키며 “경찰에 여기를 맞아서 아프다”고 말했다. 뒤통수에 가해진 강한 충격이 이날 발생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뜻한다.
당일 집회이후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인 고인의 행동은 일반적으로 보이는 뇌출혈의 증상과 너무도 흡사했다.
원 원장은 “뇌출혈이 발생하면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뇌압이 상승하니까 구토를 하고, 어지럽고, 몸을 가누지 못한다. 일단 아프다”고 말했다. 이어 “의식이 저하되고, 그러니까 자꾸 잠만 자려고 하고 말도 안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초기 증상인 경우 어쨌든 의식도 있고 몸도 움직이니까 전문가가 아니면 알아보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구토, 어지럼증,…’ 뇌출혈 증상 농민대회 직후부터 시작됐다
원 원장이 설명한 증상들은 농민대회가 끝난 후부터 고인이 보였던 증상과 일치한다.
동료 농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고인은 농민대회가 끝나고 나서 동료들에게 발견될 당시 옷이 찢어져 있었고 눈 부위에 타박상을 입었으며 후두부에도 빨갛게 타박상을 입고 있었다.
더구나 빨리 집에 가고 싶다며 말을 평소답지 않게 횡설수설했고, 차에 올라타자마자 맨 앞 의자에 누워서 정신을 못 차렸다고 농민들은 증언했다.
중간 휴게소에서 화장실을 들렀을 때도 화장실에서 나오지 못한 채 계속 앉아 있는가 하면 볼일을 다 보고 차량까지 걸어오는 데도 제대로 걷지 못하고 한 차례 주저앉았다.
그 다음날(16일)엔 증상이 더 심각해졌다. 이날 다른 농민회원이 고인에게 밥을 시켜주었지만 조금 먹다가 구토를 했다. 그리곤 머리가 아프다고 말했다.
그 다음날인 17일엔 잘 앉지도 못하고, 몸이 자꾸 한쪽으로 기우는가 하면 누운 채로 소변을 볼 지경이었다. 농민회 회원들은 이때서야 고인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 병원에 데려갔던 것이다.
뇌출혈의 증상과 일치한다. 그렇다면 뇌출혈은 15일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원 원장은 “부검 소견만 가지고는 책임소재를 완벽하게 가릴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인이) 타박을 받았다는 것엔 이의가 없지만,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타박을 받았는 가가 중요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