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만 참으면, 강원래는 일어설 수 있을까?
[프레시안 2005-11-28 17:13]
[프레시안 이지윤/기자] “황우석 교수를 무작정 비판하는 것은 줄기세포로 희망을 가진 불치병 환자들에게 인생을 포기하란 말과 같습니다.”
교통사고로 반신불수가 된 가수 강원래 씨는 26일 ‘황우석 교수 지지’ 촛불 집회에 참석해 황 교수의 연구에 사용된 난자의 채취 경로를 문제 삼은 MBC ‘PD 수첩’ 보도진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대다수의 언론들도 강 씨의 입을 빌어 황 교수의 연구에 걸린 ‘불치병 환자들의 희망’을 얘기하며, MBC와 진보세력의 ‘황우석 때리기’ 중단을 요청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28일 개최한 ‘황우석 스캔들, 무엇이 문제인가’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이들 논리의 출발점, 즉 ‘황 교수의 연구가 불치병 환자를 살리는 길’이며 ‘비판이 줄기세포 연구를 막는다’는 전제 자체가 “왜곡된 것”이라는 데에 의견을 같이 했다.
”황 교수 연구가 강원래를 일으킨다?”
지난 7월 KBS 녹화장에서 만난 황 교수와 강 씨, 당시 황 교수는 “강원래를 일으켜 주고싶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연합뉴스
조이여울 <일다> 편집장은 “황 교수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정작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무엇인지’를 물으면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결국 많은 사람들이 명백한 윤리 문제를 덮고 황 교수를 지지하자는 이유는 황 교수의 연구가 불치병 환자를 살리고 나라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인식”이라고 지적했다.
황 교수의 연구가 불치병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일반적인 믿음’은 황 교수 측이 제시한 장밋빛 미래일 뿐, 과연 가능할지, 된다면 언제 될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란 설명이었다.
조이 편집장은 “자신은 물론 딸의 난자까지 기증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난자가 누군가를 살리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러한가에 대한 정보는 누구도 제공하고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황우석 스캔들’의 진원은… 섀튼? 언론?”
설사, 황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가 불치병 환자들을 위한 ‘획기적 대안’이 될 수 있다 하더라도, 치료법 개발로까지 발전하기 위해서는 연구에 사용된 난자와 관련된 생명윤리 문제를 덮고 갈 수 없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김환석 국민대 교수는 “황 교수의 연구가 환자들을 실제 치료할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제 과학계의 공인과 협력이 필수적인 만큼 난자 채취와 관련된 의혹은 ‘덮으면 그만’으로 끝날 상황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국제 규정 위반이 공공연하게 드러난 마당에 신뢰성과 독립성을 갖춘 제3기구에서 진상을 확인·검증해 내야 국제 과학계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번 스캔들의 진원은 바로 윤리지침을 어긴 황 교수 본인인데도 불구하고, 문제를 제기한 섀튼 교수와 언론에 비난이 돌아오는 상황에도 분명히 일침을 가했다.
김 교수는 “강원래 씨와 불치병 환자들이 MBC 앞에서 촛불시위를 한 것은 ‘PD 수첩’이 보도만 하지 않았어도, 섀튼 교수가 문제 제기만 하지 않았어도 아무 문제없이 순조롭게 연구가 진행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라며 “그러나 이번 문제는 황 교수가 윤리 지침을 어기고 국제 규정을 어겼기 때문에 시작된 문제이지 공동 연구자나 언론의 문제제기 때문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희망이 사라진 사회가 ‘황우석 신드롬’ 배태”
이처럼 황 교수의 연구는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데도 절대적 지지를 받고, ‘생명윤리 위반’은 결정적 과실임에도 무참히 외면당하는 ‘기현상’은 무엇때문일까?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스캔들에도 무너지지 않는 ‘황우석 신드롬’의 이유를 “장기화된 불황과 사회 양극화 심화로 희망이 사라진 한국 사회”에서 찾았다.
우 국장은 “황 교수는, 아니 ‘황 교수가 상징하는 생명공학’이 우리 경제를 살릴 것이란 희망은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유일한 희망에 가깝다”며 “‘윤리가 밥 먹여 주냐’는 극단적 반론도 결국은 희망이 없는 사회가 만들어 냈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우 국장은 “이 같은 희망은 객관적 추정과 상관없이 현 정부의 정책 홍보를 위해 과대 포장된 측면이 많다”고 주장했다. 즉, “생명공학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꼽고 있는 현 정부가 정책의 타당성을 높이기 위해 ‘황우석 신드롬’을 부추긴 결과, 황 교수에 대한 여론의 맹신이 생겨났다”는 설명이었다.
우 국장은 또 “황 교수의 연구가 지금 당장의 치료에 도움이 되리란 대중의 믿음 역시 정부의 상징화 작업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줄기세포 연구가 성공한다 해도 20년 후나 돼야 상용화가 가능할 것이란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추정인데 당장 우리 경제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식의 왜곡은 곤란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지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