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스웨덴, 모든 주민 필요한 만큼 진료

스웨덴, 모든 주민 필요한 만큼 진료
고령화시대 건강보험 (하) 공공보험이 건강불평등 줄인다

김양중 기자  

  

▲ 요한 스메드마크 사회보험 스톡홀름 본부장이 의료보험제도 등 스웨덴의 사회보장체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관련기사]

•고령화시대 건강보험 (상) 미국보다 건강한 영국·독일

  

미국, 매년 200만명 의료비로 파산

“독일에서도 특실을 이용하거나, 담당 과장한테 특진을 받기를 원한다면 민간의료보험이 더 낫습니다. 이 때문에 의료 이용의 서비스 차이가 난다는 고민들이 있지요.”

브레멘 주립종합병원의 볼프강 파울 진료부장은 소득이 높아 민간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이 특실 이용 등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물론 독일에서는 공공보험 환자라도 꼭 필요한 진료를 받아야 할 때 담당과장을 만나지 못하는 일은 없지만, 최근 고령화가 진행되고 의료비가 크게 올라가면서 이 원칙이 무너질까 염려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공공의료체계 영·독, 작은 건강불평등도 치유 노력
‘민간중심’ 미, 국민 15% 보험 가입못해 ‘의료소외’

옌스 로젠브룩 브레멘 지역의료보험조합장은 “자동차에 비교하자면 엔진 등의 중요 부품을 포함해 자동차 전체는 공보험이 담당해 모두 같은 서비스를 받지만, 오디오나 선루프 등의 액서서리는 민간보험이 맡아 차이가 나는 격”이라며 “그러나 이런 차이에 대해서도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도 이런 고민은 마찬가지다. 영국 정부는 “건강 불평등은 매우 기본적인 불공평함이고 해결 가능하다”는 전제 아래 지난 2003년 7월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내놓기도 했다. 2010년까지 현재 계층이나 지역 간에 드러나는 영아사망율이나 기대수명(평균수명)의 차이를 적어도 10% 이상 줄여나가겠다는 것이다.

런던대학 사라 톰슨 교수는 “영국 안의 건강 불평등의 문제는 의료 제도의 문제라고 보기보다는 건강을 결정하는 소득수준, 주거형태, 건강행태 등이 다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라며 “영국의 다른 경제적 영역 등과는 달리 필요한 경우 국가 의료체계 덕분에 오히려 건강 불평등은 줄이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의 천국이라 불리는 스웨덴은 상대적으로 이런 고민이 덜한 편이다. 영국과 달리 스웨덴의 공공의료체계는 어린이 등을 제외한 환자들이 병원을 찾을 때 일정 정도의 부담금을 낸다. 외래 진료를 받을 때 100~150 크로나(약 1만1000원~1만6500원), 입원비는 하루에 80크로나 정도를 부담한다. 환자 부담은 일년에 900크로나(약 10만원)라는 상한선이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 돈마저 낼 여유가 없는 사람은 병원에 가지 못할 것으로 여기기 쉽지만 스웨덴은 그렇지 않다. 실업자, 노인 등 소득이 없는 사람도 실업급여, 국민연금 등으로 충분히 지불할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

요한 스메드마크 사회보험 스톡홀름 본부장은 “지방정부 중심의 의료체계는 모든 주민들에게 필요한 만큼의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동시에 국민연금, 실업연금 등 다른 사회복지제도도 잘 돼있어 의료 이용의 불평등 문제는 다른 나라에 비해 덜하다”고 설명했다.

영국, 독일, 스웨덴 등 유럽 여러 나라가 의료 이용의 불평등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만, 미국의 의료 이용 불평등에 비할 바는 아니다. 미국은 일할 수 있는 젊은 층이 소득이 없거나 낮다면 아예 보험도 가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국민의 15%에 이르는 4500만 명이 아무런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의료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최근 한국에서 열린 ‘아시아보건포럼2005’강연에서 미국 하버드의대 데이비드 힘멜스타인 일반내과 교수는 “너무 높은 의료비 부담으로 매년 200만명이 의료비 때문에 파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미국 전체의 의료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 가운데 최고 수준인 국내총생산 대비 비율이 14.6%나 된다.

힘멜스타인 교수는 “이처럼 미국이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고도 더 낮고 불공평한 건강 수준을 가진 까닭은 민간의료체계의 비효율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2003년 미국의 전체 의료비 지출 가운데 최소 24.1%가 행정관리 비용으로 사용될 정도로 직접적인 의료 서비스보다는 행정관리에 많은 비용을 들이고 있다.

우리나라 사회도 가족이 중병이면 전세 돈을 빼거나 퇴직금을 미리 당겨쓰는 등 저소득층이 있는가 하면 해외 최고급 시설에서 치료를 받고 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양극화가 심하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창엽 교수는 최근 미국 의료보장체계의 현황과 문제점을 조사한 보고서에서 “미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역시 이미 민간이 중심이 된 의료체계이므로,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나 영리병원 허용 등은 건강 불평등을 더 심화시킬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고 지적했다.

브레멘 런던 스톡홀름/글·사진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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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민 89% “의료체계 완전히 바꿔야”

전국민 의료보장 지지 높지만 의사·제약사등 반대로 좌절

미국은 선진국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전 국민 의료보장체계가 없다. 전 국민 보장체계 시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최근에는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전국민의료보장을 공약으로 당선됐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법안이 의회에 제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격렬한 논란만 벌인 채 의회에서 부결됐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최근 미국 의료보장체계의 현황과 문제점을 조사한 보고서에서 “1994년 부결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과 주장이 있지만 중요한 반대 진영은 의사, 보험회사, 제약회사, 자영업자 등 이었다”고 분석했다.

전체 인구의 15%가 아무런 보험에 가입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사람들의 전국민 의료보장제도에 대한 찬성율은 계속 높아져 가고 있다. 로버트 블렌돈 등이 2001년 낸 <헬스 어페어>에 낸 보고서를 보면 이는 잘 드러난다. 이 보고서에는 1980년 46~50% 수준을 보이던 찬성 비율은 2000년 55%까지 높아졌다고 한다. 또 의료체계를 근본적으로 또는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대답한 국민의 비율이 89%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에서 공공보험 등을 실현하기 위한 의사 등 보건의료인의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데이비드 힘멜스타인 하버드의대 교수는 “전국민 의료보장제도는 대중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제약회사, 의사협회 등의 영향력 때문에 실현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김양중 기자 himtra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