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공공의료 강화가 ‘민간중심’보다 효율적

공공의료 강화가 ‘민간중심’보다 효율적
고령화시대 건강보험 (상) 미국보다 건강한 영국·독일

김양중 기자  

  

▲ 독일 브레멘주립병원에서 노인 환자들이 의상의 처방에 따른 운동을 하고 있다. 노인 인구 비율이 높은 독일은 튼튼한 공공보험 기반 아래 고령화 대비 여러 정책이 마련되고 있다.

  

고령화 진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 가운데 가장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 우리나라 국민이 내야 할 의료비가 매우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국민건강보험을 대체하는 민간의료보험 도입과 국민건강보험의 확충이 논의되고 있다. 외국의 경험에 비춰 고령화 사회에 제대로 대비하는 길이 무엇인지 두 차례로 나눠 싣는다.

영국, 국가의료체계…독일, 공공보험 위주
고령화 심하지만 의료비 지출 되레 적어
‘시장원리 바탕’ 미국보다 평균수명 높아

“방바닥에 떼굴떼굴 구를 정도로 오른쪽 아랫배가 아파 응급실을 찾았어요. 방사선 촬영, 혈액 검사 등 몇 가지 검사를 하더니 ‘요로 결석’이라는 진단이 내려졌고, 곧바로 처치를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온 유학생인데도 치료비 한 푼 받지 않더라고요. 영국의 응급의료 체계에 대해 새삼 놀랐습니다.”

영국의 런던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 황아무개(37)씨는 유학 생활 중 아랫배 통증으로 응급실을 찾았던 3년 전 경험을 떠올렸다. “영국 의료 하면 무조건 대기(waiting)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뜻밖이었다”는 것이다.

런던 남부 셔튼 지역에서 8500여명의 주민 건강을 담당하는 주치의 허드슨 토마스는 “영국의 의료체계는 돈이 없더라도 누구나 의학적 필요에 따라 치료를 받을 수 있어 환자들이나 의사들에게 매우 합리적인 제도”라며 “웨이팅 리스트로 영국 의료를 깎아 내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긴 대기 시간과 관련해 영국 정부는 응급 상황이 아닌 질환에 대해 종종 6달을 넘기는 대기 시간을 3달로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의사의 근무시간 조정, 대기 시간에 대한 평가로 병원 기금 배정 차별화, 전문간호사 제도 등을 추진하고 있다.

대기 시간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영국의 의료체계는 낮은 비용으로 국민들의 건강 수준을 높게 유지하는 고효율을 달성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민간보험과 민간병원 등 자유로운 시장 원리를 바탕으로 한 미국의 지표와 비교해 볼 때는 이런 특징이 더욱 두드러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의 건강 수준을 비교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건강 지표(OECD Health Data) 2004’를 살펴보면 이런 사실은 잘 드러난다. 대표적인 예로 2001년 영국의 영아사망률은 천명당 5.5명이지만, 미국은 6.8명이나 된다. 영아사망률은 한 해 전체 신생아와 그 해 만 한살 미만 아이들의 사망자 수를 비교한 비율로, 각 나라의 건강 수준을 비교할 때 주로 쓰이는 보건의료지표다.

  

  

흔히 평균수명으로 불리는 기대여명도 영국은 2001년 기준 여성은 80.4살, 남성은 75.7살이지만, 미국은 여성이 79.8, 남성이 74.4로 영국이 더 낫다. 더욱 관심있게 살펴봐야 할 점은 65살 이상 인구 비율이 2002년 기준 영국은 15.9%, 미국은 12.3%로, 영국이 더 고령화 정도가 심하지만 의료비 지출 규모는 반대라는 것이다. 2002년 기준 영국은 국내총생산 대비 의료비 비율이 7.7%이지만 미국은 거의 두 배에 이르는 14.6%나 된다.

공공보험에 90% 정도의 국민들이 가입돼 있는 독일도 65살 이상 인구가 17.3%로 미국에 비해 고령화가 더 진행됐지만, 국내총생산 대비 의료비 비율은 2002년 10.9%로 의료비 지출은 오히려 낮다. 게다가 영아사망률은 4.3명으로 미국에 비해 훨씬 나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영국의 민간보험 연구의 대가로 알려진 런던대학의 사라 톰슨 교수는 “국가 의료체계를 운영하고 있는 영국이나 공공보험이 기반이 된 독일이 민간의료체계가 중심이 된 미국보다 의료비 지출도 효율적이며 국민들의 건강 수준도 더 좋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톰슨 교수는 “한국도 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급증할 수 있는 의료비 문제에 대해 여러 고민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공공 보험 및 공공의료 체계를 효율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낮은 비용으로도 효과적으로 고령화 사회에 준비하는 방법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의 65살 인구 비율은 2002년 기준 7.9%이지만 올라가는 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 가운데 최고다. 이에 따라 2000년 기준 국내총생산 대비 의료비 지출 5.9%도 매우 빠른 속도로 올라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런던 브레멘/글·사진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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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민간보험 66%가 비영리

독일은 공공보험과 적극 협력

독일과 영국에도 민간의료보험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민간보험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들이 있다.

먼저 독일은 민간보험을 가입하기 위한 소득 기준이 있다. 옌스 로젠브룩 브레멘 지역의료보험조합 주지사는 “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2005년 기준으로 한달 3525유로(약 420만원) 이상의 소득이 아니면 공공보험에 가입하게 된다”며 “그 이상 소득자도 원하면 공공보험에 가입해도 된다”고 설명했다.

독일 2002년 보험 통계자료를 보면 독일 국민 가운데 21% 가량이 공공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는 소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 민간보험에 가입하는 비율은 7%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로젠브룩 주지사는 “공공보험의 혜택에 대한 만족도가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에도 질병 보장형 민간보험이 있지만, 우리나라와 달리 공공보험과 적극적으로 협력한다. 독일의료보험주식회사 공적의료보험 협력운영부 페트라 빌헬름스는 “최근 노인 인구 증가로 공공보험이 재정 부담을 느끼고 있어 정부는 치과질환, 안경 등을 보장해 주는 민영보험 구실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민간보험의 특징은 회사가 고용조건으로 보험에 가입시켜 주는 비율이 높으며, 비영리로 운영되는 보험이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영국 런던대학의 민간보험 연구 전문가인 톰 파울비스터 교수는 “영국에서 민간보험 가입은 질병이 생겼을 때 좀 더 일찍 현장에 복귀할 수 있도록 회사가 노동자들에게 주는 혜택 가운데 하나”라며 “최근에는 민간보험 가입의 약 70%가 단체 가입”이라고 설명했다.

또 민간의료보험 회사의 구성도 비영리 형태로 운영되는 비율이 높다. 파울비스터 교수는 “최근 조사 결과를 보면 비영리 형태인 민간의료보험은 전체의 66%쯤 된다”고 말했다. 민간보험이라도 아픈 사람들에게 수익을 남기는 구조가 아니라는 뜻이다.

김양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