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학문의 자유와 학자의 의무

“황우석, 남의 연구는 검증하고서 이번엔 왜…?”  
  [기고] 학문의 자유와 학자의 의무

  2005-12-09 오후 12:52:14      

  황우석 교수의 2005년 연구에 대한 ‘검증’ 여론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황 교수 팀과 서울대 당국 등 이 문제에 직간접적으로 책임을 지고 있는 당사자들은 ‘거부’ 내지 ‘신중론’을 꺾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학문의 자체 정화 기능에 주목하는 글을 김진국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가 보내왔다. 특히 김 대표는 황우석 교수가 수년 전 다른 연구팀의 복제연구에 대한 검증을 담당했었다는 사실을 적시하면서 남의 연구는 검증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자신의 연구에 대해서만은 완강하게 검증을 거부하는 태도가 과연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느냐고 묻고 있다.
  
  〈프레시안〉은 최근 황 교수 연구에 대한 검증론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현안이 되고 있는 시점에서 음미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글이라고 판단해 김 대표의 글을 전문 소개한다. 〈편집자〉
  
  처음 황우석 교수팀의 의학 연구에 관한 국제 윤리규범 위반 문제로 촉발되었던 시비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여 언론사의 취재윤리에 이어 이제는 논문의 진위 여부를 둘러싼 다툼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연구자의 연구윤리 위반 문제를 고발했던 방송사 PD들은 여론의 돌팔매를 맞고 힘겹게 만들었던 취재 내용이 결방된 것은 물론 프로그램 자체가 퇴출될 지경에 이르렀는데, 정작 연구윤리를 위반해 문제를 촉발했던 당사자는 온 국민의 영웅으로 대접받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이 대한민국이라는 대명천지에서 벌어지고 있다.
  
  취재윤리를 위반한 언론인에게는 엄격하다 못해 잔인하기까지 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연구윤리를 위반한 과학자에게는 연구실까지 ‘진달래 즈려밟고’ 가시도록 배려하는 관용의 문화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 적어도 의료윤리가 의학의 발전이란 명분으로 의사들이 저지른 참혹한 인권유린의 역사에 그 뿌리가 있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왜 전문가 집단의 ‘윤리’가 특히 강조돼야 하는가
  
  전문가 집단에 대해 윤리를 강조하는 것은 전문가 집단이 가지고 있는 전문성과 폐쇄성 때문에 다른 분야, 특히 일반 국민들이나 시민사회에서 전문가 집단의 행위에 대해 가치판단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정화를 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는 전문가 집단에 소속된 개인의 도덕성과 책임의식을 시민사회가 신뢰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전문가 집단이 스스로 자체 정화 기능을 드러낸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우리 사회 전체의 보편적 규범에 반하는 전문가 집단의 일탈 행위에 대해서도 ‘관행’이라는 표현으로 용인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법부의 전관 예우, 대학 교수들의 대학원생 착취, 대학 병원의 수련의 착취와 약가 리베이트, 검찰의 밤샘조사, 정치권의 정치자금 수수…. 이 모든 것들이 누구도 함부로 문제 삼을 수 없는 전문가 집단의 관행이었고, 이런 관행들이 심각한 불법행위로 증명되었을 때도 사법부는 “지금까지 사회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하여…” 란 표현으로 관대한 처분을 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세계 최초’라는 황우석 교수의 공로가 “그 까짓 의료윤리가 무슨 대수냐”는 여론을 만들어낸 것은 분명하지만, 문제는 그런 여론이 국제 사회에서도 통용될 것이냐 하는 점일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연구윤리는 둘째치고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달린 그 논문의 진위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해명의 당사자인 황 교수는 긴 칩거에 이어 언제 끝날지 모르는 투병 생활로 접어들었다.
  
  황우석 교수, 7년 전에는 왜 남의 연구 검증했나
  
  학문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고 생명공학이 계속 발전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쉽게 동의할 수도 있다. 특히 학문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았던, 엄혹한 시절을 겪었던 터라 학문의 자유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 학문의 자유가 학문의 수단이나 도구까지 학자가 임의로 선택하고, 학문의 결과까지 검증 받지 않을 자유는 결코 아닐 것이다.
  
  정부가 생명공학을 21세기의 성장동력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은 정부의 정책적 판단인 만큼 이런 정부의 정책은 다른 가치 지향을 가진 정파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있으나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생명공학 분야를 육성하겠다고 하면서 왜 황우석 교수’만’이어야 하는가 하는 점은 이유가 분명하지 않고, 황 교수의 연구 결과물에 대해서는 왜 검증조차 허락되어선 안 되는지는 더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선택과 집중이 이 시대 최고의 가치이고,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풍토이긴 하지만, 연구 결과물에 대해 검증을 하는 것마저 “과학자의 자존심”을 짓밟는 것이란 말을 어떻게 아무런 비판 없이 수용할 수 있을까?
  
  지난 1998년 국내의 한 연구진이 인간복제 시험에 성공했고, 이것은 복제용 돌리를 만든 로슬린 연구소에 이은 세계 두 번째의 쾌거라는 발표(〈조선일보〉 1998년 12월 15일자)가 있었다. 온 세상이 흥분한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 흥분은 오래 가지 않았다. 당시 대한의학회 산하 생명복제소위원회는 신속하게 이 연구진의 인간복제 시험의 실태 조사를 벌였고 학문적 관점에서 검증한 결과 “발표 과정에 신중하지 못한 점이 있었음”을 지적했다. 그 뒤 그 연구결과는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조선일보〉 1998년 12월 25일자). 그런데 당시 실태조사를 벌렸던 생명복제소위원회 위원 중에는 지금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져 있는 서울대 황우석, 문신용 두 교수가 있었다.
  
  이 두 교수는 그 당시에 무슨 이유로, 또 무슨 권한으로 다른 “과학자의 자존심”을 짓밟아가며 실태조사를 했고, 그 결과까지 발표했는가? 그런데 지금은 무슨 이유와 무슨 특권으로 자신들의 연구결과에 대해서만큼은 자존심을 들먹이며 검증을 거부하고 있는가? 게다가 황우석 교수에게 투입된 막대한 연구비는 국민의 세금이다. 국민의 세금을 쏟아 부은 정부는 어떤 법적 근거로 황 교수의 연구결과에 대한 검증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할 사람은 황 교수 본인과 정부다.
  
  학자에게 학문은 자유의 영역일지는 모르겠으나 황우석 교수가 학자인 이상 연구 결과에 대한 검증은 학자의 당연한 의무임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김진국/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