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열하는 홍덕표 열사의 유가족들 ⓒ민중의소리 맹철영 기자
<2신 오전 11시 30분>
합동영결식…”남은 일일랑 살아남은 동지들에게 맡기고…편히 잠드소서”
△31일 고 전용철, 홍덕표 농민의 영결식이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열렸다. ⓒ민중의소리 맹철영 기자
31일 오전11시 15분 고 전용철, 홍덕표 농민의 영결식이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시작됐다.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영안실에서 전용철 농민의 시신을 발인한 뒤 차량으로 이동해 한국일보 앞에 하차한 뒤 열린시민공원으로 운구를 옮겼다. 행사장에는 700여석의 좌석이 마련됐으며 1천 500여명의 인파가 몰려 열사의 합동영결식을 지켜보고 있다.
영결식에는 민주노동당 의원단과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 백기완 선생, 범민련 이종린 의장 등 각계 원로 및 사회 인사들이 참여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지켜보고 있다.
전농 문경식 의장은 “농업회생 식량주권을 위해 한 점 불꽃으로 산화해간 고 전용철 홍덕표 농민의 안타까운 죽음에 통절의 눈물로 애도를 표한다”면서 “아울러 두분의 죽음을 농업회생의 거대한 물결로 부활시켜낸 이 자리에 모이신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전했다.
또한, 문 의장은 “두분의 의로운 죽음이 우리 농민들의 가슴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는 희망의 등불이 되도록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민중연대 정광훈 상임대표는 “이제 여의도에 아스팔트 농사를 짓기 위해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고생할 필요가 없네. 이제 가면 정용품 오추옥 동지가 덧없는 하늘 나라에 잘 오셨다고 반겨 맞을 걸세. 남은 일이랑 살아남은 동지들에게 맡겨두고 편히 가시라”고 추도했다.
전국연합 오종렬 상임의장은 “열사의 죽음은 이나라 농업의 죽음과 일치한다”며 “부디 하늘나라에 평안하게 오르시어 민중속으로 부활하소서”라고 전했으며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는 “결국 대통령도 사과하고 경찰청장도 사퇴했지만 당신들의 빈자리는 너무 크기만하다”며 “당신들이 외쳤던 소박한 꿈과 희망을 여기 남아있는 동지들이 이루겠으니 편히 잠드소서”라고 추모했다.
<3신 오후 12시 30분>
”우리의 목소리를 짐승의 소리가 아닌 사람의 소리로 좀 들어달라”
범대위 대표단의 조사와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중기 시인의 조시, ‘아름다운 청년’의 ‘벗이여 해방이 온다’라는 조가가 이어졌다.
이강실 범대위 전북대책위 공동대표는 “WTO 협상할 때 밀실협상하지 말고 농업의 주체인 농민들에게 공개하라고 얼마나 이야기했는가. 유예 기간 한달만 달라고 대화 좀 하자고 농민들이 얼마나 이야기했는가. 열사의 시신을 땅에 묻지말고, 품에 묻읍시다”고 말했다.
조용한 침묵이 흐르는 영결식장에서는 대표단의 조사가 이어질 때마다 가끔씩 “옳소! 투쟁!”이라는 큰 목소리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전용철 열사의 친형인 전용식 씨는 “이제는 이런 일이 더이상 없어야한다. 쌀을 죽이고 사람을 죽였다. 사람은 살리지 못하지만 쌀은 여러분이 있는 한 살릴 수 있다”며 “(정부는) 우리의 목소리를 짐승의 소리가 아닌 사람의 소리로 좀 들어달라”고 말했다.
홍덕표 열사의 큰 아들 홍성귀 씨는 “아버지 정말 죄송합니다. 누워계실 때 주물러드리지 않으면 잠조차 못 주무셨는데. 한평생을…” 홍 씨는 발언 중간중간마다 깊은 한숨을 쉬며 계속해서 “아버지에게 죄송하다”고 되뇌었다.
합동영결식은 열사 부활춤과 헌화로 이어졌고, 오후 1시반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리는 노제로 이동할 예정이다.
전용철 열사의 노제는 여의도에서 진행되며, 전남북 농민들은 홍덕표 농민의 영결식과 하관을 하기 위해 김제로 곧바로 이동할 예정. 김제에는 전남북 농민 이외에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이 참여하며, 민중연대 정광훈 상임의장, 전국연합 오종렬 상임의장, 전농 서정길 부의장이 참석한다.
<4신 오후 2시>
운구행렬 2천여명으로 불어나…여의도 공원 노제
△고인의 영정을 앞세운 운구행렬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을 떠난 운구행렬이 오후 1시 10분경 여의도에 도착했다. 일찌감치 모여있던 노제참석자들은 행진이 시작되는 지점인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 인근에 모여 농민가를 부르며 운구행렬을 맞았다.
죽창을 든 전용철 열사, 홍덕표 열사가 머리숙인 벼를 한 아름 감싸쥐고 있는 배경그림을 앞세워 시신을 국회방향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운구행렬은 국회방향으로 행진한 뒤 11.15경찰폭력사건 발생지점인 여의도 문화마당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경찰버스로 막고 있는 국회를 등지고 국민은행 앞에서 유턴해 여의도 문화마당으로 향하는 노제 참석자들은 계속 불어나 2,000여명에 이르고 있다.
김신애 학생은 “고인의 영혼이 국회로 향하며 울부짖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여의도 문화마당으로 들어가는데 가슴이 아프다. 전용철 열사가 돌아가신 지점에서 노제를 지낸다니 당시 상황이 떠올라 눈물이 흐를 것 같다”고 전했다.
<6신 오후 6시>
두 열사 하관…장례절차 마무리
4시 15분께 열사의 시신을 실은 영구차가 마석 모란공원에 도착했다.
전용철 열사는 노동운동가 김종배 열사의 무덤 아랫 쪽에 안장됐다.
생전 기독교인 이었던 열사의 하관식은 4시 반 경 종교의식으로 시작됐다. 기독교식 하관 예배 뒤 전농 전성도 대협 실장의 사회로 약식 집회가 진행됐다. 열사의 삶이었던 자주 민주 통일의 기치를 이어갈 것을 다지는 자리였다.
150여명의 참석자들은 열사를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한 뒤 헌화를 했으며 하관식을 모두 마친 뒤 술과 음식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전농 문경식 의장이 참석자들 앞에 섰다.
“열사를 가슴에 묻자. 민족 농업이 사수되고 우리 민족끼리 통일되는 나라, 농민, 노동자가 마음 놓고 일하는 세상을 만들 때 까지 굳게 단결하자. 그것이 열사를 편히 보내는 길이다.”
참석자들은 전용철 열사를 뒤로 하고 마석 모란공원을 나와 서로를 격려하며 2005년을 보냈다.
김제에서도 홍덕표 열사의 하관식이 진행됐다. 전농 서정길 부의장과 사회단체 대표자들이 함께한 가운데 하관식이 진행됐고 5시 30분경 하관식은 마무리 됐다.
이로써 48일간의 끈질긴 싸움은 근본적 농업회생 대책을 위한 다음 싸움을 예고하며 마무리 됐다.
2005년12월31일 ⓒ민중의 소리
추주형 김경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