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삼성서울병원장 “의료도 산업…내 철학은 치열한 경쟁”
의료시장이 격변하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 병원이 있다. 의료광고 허용을 비롯한 의료산업 영리법인 도입 논의, 병원시장 개방과 맞물려 활기를 띠기 시작한 국내 병원들의 해외 진출 가시화 등은 지금껏 질병치료기관으로만 인식돼왔던 병원의 모습을 바꿔놓고 있다. 코페르니쿠스적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셈이다.
한파에 칼바람이 불어댄 6일 오후 이종철 삼성서울병원장을 만나 격동의 본질과 지혜롭게 변혁의 파고를 넘어갈 방안을 들어봤다. 이 원장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주치의이자 대통령 자문기구인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의 의료계 대표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치열한 자율경쟁’이 그의 의료철학이다. 때문에 그는 국내 의료산업의 발전을 도모하려면 무엇보다 자유로운 경쟁을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지금까지 의료를 복지확대와 구현을 위한 수단으로만 간주했지, 산업으로는 인식하지 않았다. 정부가 지난해 의료를 차세대 국가 성장동력산업으로 선정하고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까지 출범했지만 병원 선진화에 대한 정부의 인식은 여전히 부족하다.”
새해벽두부터 의료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의료법인의 영리법인 허용 문제도 그는 경쟁력이란 키워드로 접근한다. 이 원장은 “의료보험 도입 이전 돈을 많이 벌던 의사들이 중소병원을 개설했지만 현재 중소병원들의 경쟁력은 현저히 떨어졌다”며 “실제로 중소병원이나 개원의들이 국내 전체 병상 수의 절반을 갖고 있지만 제대로 가동이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장되고 있는 중소병원을 살리기 위한 수단으로 일정지분의 산업자본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고, 늦어도 올해 안에는 영리법인 허용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이 원장의 주장이다.
하지만 영리법인에 대한 그의 기본적인 생각은 신중하다. 그는 영리의료법인의 숫자가 전체 병원의 10%에 불과한 미국의 경우를 예로 들며 “영리법인은 경쟁력 있는 병원을 양성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에 불과하다”며 “미국 MD앤더슨병원의 경우 전체 이익의 30%가 약에서 나온다. 이는 의사들의 기술과 노하우에 대한 대가는 무시된 채 약값만 받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는 딴판”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전문병원으로 이미 자리를 잡은 중소병원이나 삼성서울병원을 비롯한 대학종합병원의 경우 영리법인이 아닌 다른 형태로 외부 자본의 참여를 유도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며, 기업후원금제도의 활성화가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미국의 경우 대학병원의 30%가 기부금에 의해 운영된다. 반면 국내에서는 의료법인ㆍ공익재단 등의 일반적인 병원에 대해선 기업 기부금의 5%에 대해서만 세제혜택이 인정되고 있다. 빨리 바꿔야 할 제도다.”
해외 진출에 대해서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자본과 정보의 부족으로 대규모 해외 진출은 어려울지라도 ‘지피지기’ 차원에서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며 “직접 진출보다는 국내로 환자 유치를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이 현재 주목하고 있는 타깃은 중국의 건강검진시장. 이 원장은 “오는 5월 중국의 시지건강검진그룹과 베이징에 대규모 건강검진센터를 오픈할 계획”이라며 “건강검진센터는 중국의 환자들을 국내로 유치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올 3월부터 지방 병원들부터 우선적으로 시행되는 의사프리랜서제도에 대해서는 우려의 시각을 표명했다. 지방 소재 중소병원들의 의사 인력구인난 해결이란 기본 취지를 제대로 살린다면 몰라도 전체적으로는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원장의 생각이다.
“대학병원 의사들의 바쁜 스케줄을 감안할 때 다른 병원에서 진료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잘못하면 인력의 비효율성만 초래할 수 있다. 환자 입장에서 진료의 지속성이 충분히 확보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며, 불분명한 소속감에서 오는 진료의 책임감 부족현상이 문제가 야기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의학 전문대학원 설립은 실보다 득이 많다는 데 무게를 뒀다. 실제로 서울대가 공개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했지만 최근 의학 전문대학원으로 전환을 결정하는 의과대학의 수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이 원장은 “전문대학원은 교육기간의 연장과 인력양성비용의 증가라는 문제가 있는 반면, 다양한 배경과 자질을 가진 우수 인력을 의사로 양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다만, 정부가 대학 입시과열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전문대학원 전환을 유도해서는 안 되며, 우수한 의사 인력의 양성이란 목적에 충실한다면 적잖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최상현 기자(puquapa@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