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20일 전 약속도 안 지키는 정권이 20년 뒤를 대비하겠다? 청와대의 ‘황우석 사태’ 뒷수습.

20일 전 약속도 안 지키는 정권이 20년 뒤를 대비하겠다?  
  〈기자의 눈〉청와대의 ‘황우석 사태’ 뒷수습을 보며

  2006-01-11 오후 12:31:08      
  
  물론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이 정부 인사 중에선 황우석 서울대 교수 파문에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그는 논문에는 기여하지 않고 ‘무임승차’ 했지만 어쨌든 ‘가짜’로 판명된 2004년 〈사이언스〉 논문 공저자 15명 중 한 명으로 정부에서 ‘황우석 교수 연구팀 지원 종합대책회의’를 주도하는 등 황 교수 지원에 앞장서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청와대가 지난 10일 서울대 최종 조사결과 발표 이후 박 보좌관이 물러나는 선에서 이번 사태를 마무리하고 넘어가려는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
  
  황 교수 팀의 논문 조작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 노무현 대통령은 “이 정도에서 정리하자”며 불거진 의혹을 덮고 가자고 했었다. 그러나 젊은 과학자들과 일부 언론의 끈질긴 문제제기로 결국 제기된 의혹이 모두 사실로 판명되면서 그나마 한국에 황 교수를 뛰어넘을 자생적 능력이 있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보여줬다. 그런데 정부는 또다시 대충 넘어가려는 태도로 이들 젊은 과학도들이 이룩한 성과마저 물거품으로 만들려는 듯 하다.
  
  청와대 “박 보좌관 이외에 책임 표명한 보좌진 없어”
  
  지난 12월23일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이 조작됐다”는 서울대 중간 조사결과가 나왔을 때 청와대는 “최종 조사결과가 나와야 한다”며 입장 요구를 묵살했었다.
  
  정작 20일도 채 지나지 않은 10일 서울대 최종 조사결과가 나오자 청와대가 밝힌 공식 입장은 “안타깝고 유감스럽다”는 것이었다. 황 교수 연구에 지난 2005년 한해에만 275억 원의 예산을 지원하는 등 ‘황우석 영웅 만들기’의 주범이었던 정부가 지난 두 달간 국민들을 극심한 갈등과 혼란에 빠뜨렸던 사태에 대해 “유감”이라는 단 한 마디로 입장을 정리한 것이다. 기자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더 덧붙일 말이 없냐”고 확인 질문까지 했지만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없다”는 말로 일축했다.
  
  그간 사퇴 여론이 들끓었던 박기영 보좌관은 이날 사의를 표명했다. 아직 그의 사표가 수리되지는 않았지만 정황상 조만간 수리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 보좌관과 함께 ‘황금박쥐(황우석, 김병준, 박기영, 진대제)’ 멤버로 황 교수를 지원해 온 김병준 정책실장의 문책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고 한다. 김 실장은 지난해 11월28일 김형태 변호사를 만나 “황 교수 논문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요지의 중대한 정보를 듣고도 노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만수 대변인은 “박 보좌관 이외에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이번 사태에 책임을 표명한 보좌진이 있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없다”고 밝혔을 뿐이다.
  
  노대통령, 오명 부총리 ‘극찬’…결국 박기영 보좌관만 문책?
  
  노 대통령의 태도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노 대통령은 지난 5일 과학기술인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황우석 사태에 대해 “과학적으로 책임을 묻겠다”며 “막연한 분위기로 책임을 몰아붙이는 일이 없도록 대통령으로서 최선을 다해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오명 과기부총리에 대해 “아주 폭넓은 안목, 강한 비전과 추진력을 가지고 과학 행정을 이끌어줘 감사하다”며 “2년 정도 하시면 대개 가지고 있는 밑천 다 드러내 놓는다고 보고 그만 두시겠다는 뜻을 제가 받아들였다”고 극찬했다. 노 대통령은 또 “상당히 여러 달 전부터 조심스럽게 사의를 표현해 오셨는데 연말까지만 좀 해 주십사 하고 제가 간곡히 부탁드렸다”며 이번 연초 개각을 통한 오 부총리 교체가 ‘황우석 사태’와 무관한 것임을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오직 박기영 보좌관만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셈이 됐다. 희생양 한 사람을 내세워 ‘모르쇠’로 지나가려는 것이다. 정치는 주어진 권력만큼 소신껏 정책을 집행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것이다. 황우석 교수와 관련된 지금까지의 정책과 예산 집행이 박 보좌관 한 사람의 책임에 국한될 만큼 소략한 것이었나? 혼란스럽다.
  
  ’황우석 사태’ 수습도 중요한 미래 대비 아닌가
  
  그런 마당에 노 대통령은 서울대 최종 조사결과 발표가 있던 날 여성계 신년인사회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해 얘기했다.
  
  노 대통령은 조선 500년을 지배한 사대부 이념의 근간을 세운 삼봉 정도전 선생을 “세상을 바꾼 혁명가”라고 평가하면서 “당장의 일도 중요하지만 2030년, 2050년을 내다보고 책임 있는 자세로 대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황우석 사태’는 당장의 현안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가 황 교수의 연구를 국가성장발전동력의 하나로 보고 전폭적인 지원을 했던 것처럼 앞으로 한국의 성장 원동력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는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냐”는 변명으로 일관하다가 모든 진실이 규명된 이후에도 여전히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겸허한 반성도 없었다.
  
  이런 정부가 집권 4주년을 맞아 오는 2월25일께 2030년, 2050년을 내다보는 미래 사회의 지도이념, 가치관에 기반한 중장기 계획을 발표하겠다고 한다. 고작 20일 전에 했던 약속도 뭉개고 가려는 청와대가 20여 년 뒤의 일을 걱정해서 만들었다는 이 ‘미래구상’을 국민들은 과연 신뢰할 수 있을까? 혹은 신뢰해도 되는 것일까? 그것은 노 대통령 본인에게도 해당되는 얘기다.  

전홍기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