찡그렸던 1047명, 웃으며 돌아갔다
[양극화를 넘어 ⑧-1] 주말장애인치과진료소의 5년
박수원(pswcomm) 기자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양극화는 노동뿐만이 아니라 주거와 교육 등에도 뿌리를 내리며 공동체를 갉아먹고 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사회양극화해소국민연대와 함께 ‘양극화를 넘어’라는 기획 기사를 연재한다. 양극화해소연대는 지난해 9월 전국 136개 노동·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구성한 사회·경제 개혁 추진을 위한 연대기구다. 이 글은 기획 여덟번째는 의료 문제를 통해 들여다본 양극화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다. <편집자 주>
▲ 매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문을 여는 장애인치과진료소.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 위치한 구로건강복지센터에서 이 지역 치과의사들이 장애인 무료치과진료를 해온 것도 올해로 6년째를 맞는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토요일 4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아! 아파.”
“조금만 참아, 조금만 있으면 끝난다. 옳지, 잘 한다.”
지난 14일 오후 4시 30분쯤 구로동 가리봉1동에 위치한 사단법인 구로건강복지센터는 찾았을 때 장애인 치과 진료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구로건강복지센터는 지역주민의 건강권 확보와 복지확대를 위해 2000년 2월 창립된 비영리 민간단체. 장애인주말치과진료사업 이외에도 독거노인 도시락배달사업 및 방문 진료, 요보호 아동건강지원사업 및 가족지원상당실 운영 등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후원회원 회비와 프로젝트 사업비, 때때로 걷는 후원금으로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다.
구로건강복지센터의 대표적인 사업으로 자리 잡은 장애인주말치과진료사업이 문을 연 것은 지난 2001년. 구강 건강권에서 특히 소외받는 장애인 치과 치료가 주목적이었다.
뜻있는 의사들이었지만 1·2급 장애인을 치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입도 벌리지 않고, 몸을 가만히 두지 않는 통에 일반인 진료보다 몇 배나 힘이 들어가야 했다.
이렇게 시작한 사업이 벌써 6년째다. 소리를 지르고 도망가는 장애인들 치료가 영 어색했던 의사들과 치위생사들이 꽤 능숙한 솜씨로 장애인들을 치료하고 있다.
칫솔질 못하는 장애인… “치료 더 하자는 전화받고 얼마나 고마웠는지”
▲ 장애인치과진료소는 치과진료에 동행한 장애인 가족들과 의사, 치위생사, 자원봉사자들로 주말마다 분주한 모습이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날 딸 민영(가명·12·정신지체 1급)이 치과 진료를 위해 장애인주말치과진료소를 찾은 손민숙(가명·38)씨는 장애인 시설에서 소개를 받고 이 곳을 알게 된 후에 한결 마음에 편해졌다.
“한 번은 아이 어금니에 요구르트 플라스틱 조각이 끼었어요. 돈을 빌려서 급하게 치과로 달려갔죠. 상처 부위 이빨을 치료해 주면서 9만3000원을 받았어요. 그렇게 비싼 줄은 몰랐는데…. 의료 보험이 안 된다고 하더군요. 아이가 지능지수 25 수준이라 아직도 대소변을 못 가려요. 당연히 칫솔질도 못 하죠. 입에 칫솔을 집어넣으면 움직이지 못하게 이빨로 꽉 물어요.”
지난해 12월 민영이 잇몸에 피가 나는 것을 발견하고 와서 장애인주말치과진료소에서 3주 정도 치료를 받았다. 칫솔질을 잘 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에게 잇몸 염증은 상습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사실 치료가 끝난 줄 알고 병원에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여기(장애인주말치과진료소)에서 먼저 전화를 주셨더라고요. 치료 좀 더해야 한다고.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무엇보다 항상 웃어주셔서 좋아요. 장애인이 치과 치료 받기는 어렵거든요. 무엇보다 일반 치과에서 진료를 기피하기 때문에 찾기도 어렵고요.”
손민숙 씨는 구로동에 있는 12평 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다. 남편이 건설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벌어오는 150만원 가량의 수입으로 정신지체아인 민영이와 초등학생 아들 키우기가 빠듯하다.
“칼로 팔을 그어 피가 나는 데도 웃고 있는 민영이를 볼 때는 정말 미치죠. 우선은 민영이가 대소변을 가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지속적으로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너무 비싸요. 전문 치료에도 장애인 혜택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구강질환 다반사지만 일반 치과에서는 진료 기피
▲ 1·2등급 장애인들은 칫솔질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진료소를 방문해 스케일링을 해야 충치를 예방할 수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주미영(53·가명)씨는 이날 주말장애인치과진료소에 평소 때와 다름없이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아들 이민석(27·가명·정신지체장애 1급)씨를 안고 찾아왔다.
50kg 남짓 하는 왜소한 체구인 그녀는 아들을 안고 다니는 것에 이력이 붙은 것처럼 보였다.
“일반치과에 한동안 다녔는데, 쉽지 않았어요. 하루는 이 곳에서 안내문이 왔습니다. 장애인 치과 진료를 받으러 오라고요. 그래서 다니게 됐어요. 사실 처음에 걱정도 많이 됐는데 몇 차례 다니다 보니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치료도 너무 잘 해주시고.”
민석이 같은 재가(在家) 장애인을 위해 주말장애인 치과 진료소는 방문 진료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방문 치료는 한계가 많다. 장애인 이동 차량도 한정돼 있어 사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
2003년 스마일 재단이 조사한 ‘장애인구강보건의 실태 및 수요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72.1%가 심각한 구강질환을 갖고 있는 데 비해 치과 진료를 받고 있는 장애인은 37.5%에 불과했다.
장애인의 경우 충치·잇몸 치료를 겨우 받게 돼도 보철이나 틀니 등 비급여 부분 부담 때문에 치료가 용이하지 않다.
물론 이런 현실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생기도 있다. 지난해 저소득 장애인에 비급여 부분 50%, 일반 장애인에게 20%를 할인해 주는 서울장애인전용 치과병원이 개원했고, 정기적으로 장애인 치료를 시작한 보건소도 생겼다.
그러나 아직 치료의 손길을 기다리는 장애인들이 많다.
5년 동안 구로건강복지센터의 주말장애인치과진료소를 거쳐간 사람들은 모두 1047명이다. 주말장애인치과진료소는 구로 지역 내 기초생활보호 대상자이면서 치료진료가 용이하지 않은 장애 1·2등급에 혜택을 주기 위해 특히 신경을 쓰고 있다.
또한 구로구치과의사회, 한화무역 사회공헌팀, 치위생사, 대하덴탈 등의 도움을 받아 보철과 틀니 지원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구로건강복지센터 서윤미 사무국장은 “주말장애인치과진료소는 의사, 치위생사, 기업 지원을 통해 장애인의 치과 진료, 사례 관리, 최종 보철 지원 등 체계적인 사업을 위해 노력해왔다”면서 “지역 보건소나 사회복지과와 적극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장애인 치과진료 대상층을 확대,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외 계층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 돈과 몸을 바쳐 활동하고 있는 구로건강복지센터는 여전히 ‘의료의 공공성 확보’라는 화두를 붙잡고 있다.
“일주일 한 번은 생색내기 같아… 건물이 생겼으면”
[인터뷰] 주말장애인치과진료소 운영위원 김정우 원장
▲ 주말장애인치과진료소 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김정우 원장이 장애아들을 달래가며 치과 진료를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김정우(37·주말장애인치과진료소 운영위원) 원장은 구로 지역에서 개업을 하기 전 강남 논현동에 있는 치과에서 월급을 받고 근무했다.
“사실 그 때는 어려운 사람들이 잘 안 보이니까, 누구를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못 했죠. 그런데 구로에 오니까 달랐어요. 2003년에 지역에 있는 한 시설을 찾았는데 벌레가 나오고, 장판은 갈라지고…. 너무 지저분해서 1시간도 못 앉아있겠더라구요. 솔직히 부끄러웠어요. 그래서 일할 것을 찾다가 주말장애인치과진료소에서 일하게 됐죠.”
김 원장은 능숙하게 장애인 진료를 진행한다. 틀이 잡혔다고나 할까. 일반 치과들로부터 거부당해온 장애인들에게 그는 의사 선생님이라기보다는 친근한 동네 아저씨 같다.
주말장애인치과진료소 치료를 위해 구로구 치과 의사회 소속 회원들과 치위생사들이 당번을 정해 매주 진료를 진행한다.
그는 “정부가 현재의 의료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으면 없는 사람들의 건강권 확보는 요원하다”고 말한다.
“의료에 돈이 끼면 공공성은 떨어질 수 밖에 없어요. 의사들을 돈 버는 직업으로 만들어놓고, 공공성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김정우 원장은 ‘주말장애인치과진료소’에서 ‘주말’을 떼어내는 꿈을 꾼다.
“일주일에 한 번, 너무 생색내기 같잖아요. 건물이 하나 생겨서 장애인 평일 진료를 하는 게 소원입니다. 언젠가 가능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