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소리 비정규법, ‘개혁’인가 없느니만 못한 ‘개악’인가

비정규법, ‘개혁’인가 없느니만 못한 ‘개악’인가
비정규직 ‘보호’ 법안? 실효성없는 비정규직 합법화일 뿐

김태환 기자  

1년 이상을 끌어온 비정규직 관련 법안이 지난달 27일 ‘질서유지권’까지 발동된 상황에서 국회 환노위를 통과했다. 열린우리당은 벼랑 끝으로 몰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민주노동당과 노동계는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악법’이라고 상반된 주장을 펼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곧바로 법사위를 점거하고 결사항전 태세에 들어갔지만 열린우리당은 5월 지방선거를 염두에 둘 때 2일까지 처리되지 않으면 참여정부 안에서 처리가 불가능하다며 핏대를 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상황을 잘못 알고 있거나 아니면 전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공교롭게도 여야를 막론하고 환노위는 노동계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다.
  
  2년마다 고용안정, 그다음은 정규직?
  
  환노위를 통과한 기간제법이 현재 비정규 노동자들의 처우를 어느 정도 개선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정부 여당의 주장에는 노동계와 민주노동당도 부분적으로 동의를 하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기간제에 대한 규정 자체가 없는만큼 기간제법을 만듦으로써 기간제 노동자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설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이에 따라 민주노동당은 지난달 7일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차별 금지에 대한 정부의 원안을 수용한 바 있다. 단병호 의원은 “정부의 원안은 민주노동당이 주장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는 미치지 못하고 그 실효성이 의심되지만 그나마 차별에 대해 아무런 규정도 없는 현재보다는 다소 진전된 면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노동계와 민주노동당이 기간제법을 ‘비정규직을 양산하게 될 악법’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사용자가 기간제 노동자를 무한정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노위를 통과한 법안은 ’2년의 기간 제한’을 두고 이를 초과할 경우 ‘기한에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 즉 정규직으로 채용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그동안 사용자들은 사용기간을 제한할 경우 이미 근무하고 있는 비정규직도 해고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해 왔다. 경총 자체 조사에 따르면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겠다는 응답은 11.6%에 불과했다.
  
  또 2년을 주기로 해고와 재채용을 반복하는 모습도 드러날 수 있다. 이같은 경우가 기간제법 위반인지의 여부는 아직 확실치 않다. 파견제를 섟어넣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동일한 노동자를 1년6개월간 기간제로 일하게 한 후, 하청업체 등에 취업시켜 파견을 받는 식으로 피해가는 방법이다.
  
  이 같은 이유로 민주노동당은 기간제 노동자에 대한 ‘사유 제한’을 주장해 왔다. 법이나 시행령에 정해진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토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이같은 주장은 정부 여당에 의해 거절당했다.
  
  고용의제 거절, 파견대상 업무도 확대
  
  현행 근로자파견법은 파견 업종에 대해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를 제외하고 전문지식, 기술 또는 경험 등을 필요로 하는 업무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업무’로 규정하고 있다. 파견이 가능한 업종은 현재 26개로 제한되어 있어 그나마 안전판 구실을 해 왔다.
  
  하지만 개정안은 ‘전문지식, 기술 경험 또는 업무의 성질 등을 고려하여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업무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업무’라고 주관적 판단 요소를 크게 늘렸다. 대통령령의 개정을 통해 파견업종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임 이상수 노동부장관도 노동부 업무보고를 통해 수정안 제출 이유를 “파견제의 범위를 유연화하고 대폭 확대하기 위해서’라고 시인한 바 있다.
  
  당초 노동부는 이보다 더 폭이 넓은 ‘네거티브 방식’(파견불가 업종만을 명시하는 리스트)을 주장했지만 노동계의 반발에 부딪혀 좌절되자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업무’로 바꾸어 놓았다.
  
  또 다른 문제는 불법 파견에 대한 처분이다. 불법 파견을 방지하는 것이 법 개정의 취지임에도 불구하고 ‘고용의제(직접 고용된 것으로 간주함)’는 거부되었다. 환노위를 통과한 법안은 불법 파견이 적발되면 사용주에게 고용의무를 지우는 데, 한마디로 말하면 벌금으로 ‘때울’ 수 있게 해 준 셈이다.
  
  사용자에게 돌아갈 불이익도 불법파견노동자의 숫자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1건당 최고 3천만원의 과태료에 불과하다. 10명이든 100명이든 모두 1건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먼 훗날로
  
  근본적으로 비정규직 남용을 막는 유일한 수단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실현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인 동일한 임금을 받는 이상, 사용자로서는 굳이 비정규직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별시정에 관한 법안의 요지는 ‘비정규 노동자를 정규직과 동일하게 처우하겠다’가 아니라 ‘불합리한 차별을 금지하겠다’로 되어있다. ‘합리적 차별은 용인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더욱이 차별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비정규노동자가 직접 노동위를 찾아 시정을 신청해야 한다. 불안한 고용 상황을 감안할 때, 어렵게 구한 직장을 상대로 차별시정을 신청할 비정규 노동자가 얼마나 될 지도 의문이다. 또 부당노동행위 인정률이 10%에도 못 미치는 노동행정 현실도 비정규직 차별을 합리화하는 기능을 하게 될 것이 뻔하다.
  
  여기에 노동위원회에서 차별이 확정된다 하더라도 사용주는 아무런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 1억원의 과태료는 확정된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 한해 부과된다.

2006년03월02일 ⓒ민중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