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상업화’가 총파업 불렀다
[분석] 정부 ‘부채 떠넘기기’ 근본 원인… “공공성 사라진다” 우려도
김보성(jookchang) 기자
철도파업 공식선언… 정부 “불법파업 엄단”
3월 1일 새벽 1시를 기해 철도노조의 총파업이 공식 선언되자, 정부는 불법으로 규정하고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정부는 28일 밤 10시 노동부와 법무부, 건설교통부 3개부처 장관의 합동발표로 이미 “불법파업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일부 언론은 “철도파업강행… 운수, 물류 피해현실화”, “국민담보 파업강행”을 제목으로 뽑고 정부의 강경대응에 동조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경찰은 김영훈 위원장을 비롯 11명의 철도노조 간부들에게 업무방해 혐의로 출두요구서를 보낸 상태며 응하지 않을 경우 체포영장을 발부하겠다고 밝혔다.
또 중앙노동위원회의 직권중재 결정이 노조의 총파업 선언 직전 떨어졌다. 물론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의 경우 직권중재를 받아들인 선례가 있다. 그러나 철도노조는 이번에 직권중재라는 악재에도 총파업을 강행했다. 그 배경을 알아보자.
이미 예정되었던 철도파업
철도노조는 이번 3·1파업의 배경에 ▲할인축소 폐지, 적자선·적자역 폐지 등 철도상업화 철회 및 공공성 확보 ▲비정규직차별 철폐와 정규직화 ▲외주화 철회 ▲상시적 구조조정 중단 ▲부족 현장인력 충원 ▲노사합의에 의한 차량 인턴직 정규직 발령 ▲해고자 원직복직 등의 요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철도노조는 지난해 철도청이 철도공사로 바뀐 뒤에도 이같은 요구사항을 갖고 실무교섭을 포함, 수십 차례에 걸쳐 사측과 교섭을 벌여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핵심요구안에 대해 철도공사의 입장이 마련되지 않아 의견불일치로 교섭이 결렬됐다.
결국 철도노조는 지난해 11월 16일부터 18일까지 실시한 쟁위행위 찬반투표에서 재적인원 92.5%의 조합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70%가 넘는 찬성률로 쟁위행위를 가결시켰다. 철도노동자들은 철도공사가 이대로 가면 “부채누적의 악순환으로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양산을 낳고 철도공공성이 사라지는 등 상업화가 불보듯 뻔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철도공사 누적적자 심각, 부채악순환… 정부 국고지원 대폭 줄여
▲ 1일 철도노조의 전면파업으로 KTX와 일반열차 운행에 차질이 빚어졌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철도부채는 크게 고속철도 건설 과정에서 들어간 건설부채와 차량구입, 역사건립 등의 운영부채로 구성된다.
건설부채의 경우 고속철도 건설 과정에서 생긴 빚이다. 1990년 초반 정부가 경부고속철도 계획을 세우며 건설비 전액인 약 5조8000억원을 국고에서 부담하기로 했으나 사업계획 변경으로 2001년까지 사업기간이 연장되고 사업비도 2배인 약 10조7000억원으로 뛰어올랐다.
이후 1998년 고속철도 계획변경 과정에서 2단계 건설계획이 다시 수립되어 2010년까지 사업을 또 연장, 사업비는 약 18조4000억원으로 초기보다 3배나 높아졌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사업비가 증가할 것으로 판단, 정부의 재정지원을 45% 가량 축소했고 나머지 55%는 고스란히 철도공사(당시 철도청)가 조달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철도공사는 2004년 KTX가 개통되면 하루 이용객 20~25만명에 약 1조5000억에서 2조원으로 고속철도의 영업수입이 극대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 이용객은 5~6만명 선에 머물렀으며 영업수익도 약 5800억원에 그쳤다.
이로 인해 철도운영자인 철도공사가 부담해야 할 건설부채는 약 10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또한 지난해 운영부채만 해도 약 2500억원이 지출됐고 올해는 원금과 이자를 포함해 1조6000억원의 빚을 갚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지난해 국회의 철도공사 국정감사에서는 “이대로 가면 철도공사가 매년 상환해야 할 부채로 인해 흑자는커녕 2013년 파산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 노무현 대통령도 신년기자회견에서 “철도 적자문제 해결책 강구”를 언급한 바 있다.
결국 고속철도 건설부채와 운영부채 등이 누적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철도노조는 “철도의 공공적 성격이 강화되지 않는 한 부채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며 “SOC(국가기간산업)으로서 국고지원과 정부의 책임을 명확히 하라”고 요구했다. 철도부채의 책임이 정부의 철도정책 실패에 있다는 말이다.
수익 내려면 상업화 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철도공사는 경영악화와 부채누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수익성 극대화 정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장애인에 대한 철도요금 할인이 30%로 줄었으며 유아동반 할인도 축소됐고, 청소년 할인은 완전히 사라졌다.
상업자본이 유치된 민자역사도 서울역을 비롯 이미 9개나 운영되고 있으며 8개역은 건설 중이다. 민자역사는 전체 면적의 90% 정도가 상업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으며 공공을 위한 역무시설 공간은 10% 정도다.
게다가 철도공사 출범 이후 적자를 내고 있는 노선과 적자역이 이미 일부 폐쇄되었으며 무인역, 위탁역을 확대하기 위한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그리고 KTX의 요금도 2006년 들어 다시 인상될 예정이다.
철도노조는 이런 일련의 과정에 대해 “철도가 공공적 성격에서 ‘철도의 상업화’로 바뀌고 있다”고 비판한다. 철도노조는 “철도는 국민 모두가 이용하는 공공의 성격인데 수익과 상업성을 놓고 운영하면 서비스 중단과 질적 저하 등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력감축, 비정규직·외주위탁 증가… 불만도 높아져
철도의 수익성 극대화 정책은 증원인력을 최소화 하고 내부인력 재배치, 외주사업 증가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KTX개통과 공사전환 과정에서 증원이 필수적이었지만, 자체인력을 재배치하고 최대한 외주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직접고용 비정규직만 3113명(간접고용 비정규직 제외)에 이르며 비정규직도 점차 늘고 있는 추세이다. KTX 여승무원의 경우처럼 철도서비스에 직접 관련된 분야인 승무원까지 외주위탁해 운영하고 있다. 한국철도유통(옛 홍익회) 소속인 KTX 여승무원들은 외주위탁 방침에 반발,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이번 총파업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해 철도노조가 실시한 노조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고용불안 57.7%, 임금불만 76.2%, 능력발휘 기회불만 61.3%, 작업환경 불만 72% 등 전반적으로 고용과 노동조건에 대한 불만이 높음을 알 수 있다.
철도노조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비정규직, 외주위탁 증가를 비롯 인력충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장시간 노동과 휴일일근로가 일상화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업무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최근엔 정비부족으로 열차사고도 잦아지고 있다는 것.
파업현장에서 만난 조합원 김모씨는 “수익개선을 핑계로 작업환경이 자꾸 악화되고 있어 힘들다”며 “이런 상황에서 철마도 달리고 싶을지 정말 의문스럽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노조 “파업 중 교섭 가능”… 철도공사 “해결책 제시 어려워”
철도노조는 <파업 속보>를 통해 “파업은 열차 안전과 철도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며 “공사측이 진전된 교섭안을 들고 온다면 언제든지 교섭이 가능하다”고 여지를 남기고 있다.
그러나 이철 철도공사 사장은 “노조의 핵심요구 대부분이 정책 차원에서 해결될 사안이라 개별 공기업이 해결책을 제시하기 어렵다”며 교섭불가 입장에 무게를 두어 말했다.
현재 철도공사는 긴급업무복귀 명령을 내리고 ▲근무 중 직장을 이탈한 자 ▲파업불참자에 대한 업무방해자 ▲시설물 집기류 파괴자 ▲지정된 근무시간에 출근(출무)하지 않은 자 등에 대해서는 즉시 직위해제 등의 강경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1일 오후 현재 서울 6000여명, 영주 2500여명, 부산 3200여명 등 전국 5개 지역으로 나뉘어 파업농성을 벌이고 있는 철도노조원은 1만 5700여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2006-03-0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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