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링’ 오르기도 전에 의약품 주권 ‘백기’
[한겨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현안 중 하나인 의약품 가격 문제는 건강보험 체계와 의료서비스 시장의 뼈대를 뒤흔들 수 있는 대단히 민감한 사안이다. 정부의 약값 재평가 작업 포기는, 건강보험 가입자인 전 국민이 부담하는 약값을 정부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사실상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 제약회사가 정하는 대로 따르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3일 “약값 재평가 작업의 포기는 미국 제약업체들이 국내 시장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약값을 정해 팔 수 있도록 해버리는 것과 같다”며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이 국민 이익보다 미국 업체들의 이익을 더 중시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서 똑같은 압력을 받았지만 입찰제라는 강력한 약값 억제정책을 고수했다”며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미국의 의약품 통상압력은 2002년 한국이 도입하려던 ‘참조 가격제’를 무산시키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당시 미국 무역대표부는 “참조가격제 도입은 무역장벽”이라고 주장했다. 참조가격제는 신약이라고 해도 기존 약들과 효능이 비슷한 경우 기존 약들을 기준으로 해서 약값을 정하는 것이다. 신약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다국적 제약업체들에게 불리한 제도이다.
미국은 그동안 신약의 요건 완화, 신약의 지적재산권 보호 강화 등을 내용으로 한 자국의 의약품 보호를 줄곧 주장해왔다. 그러다가 지난해 10월 한미 통산현안 분기별회의에서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서두르는 한국 정부로부터 중요한 양보를 얻어냈다. 미국 의회조사국(CSR)이 지난 2월9일 낸 ‘한미 경제관계:에프티에이를 위한 협력, 마찰, 전망’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한국 정부는 미국에 가까운 장래에 약값 재조정 제도를 도입하지 않기로 약속한 것은 물론 앞으로 약값 재조정 결정에 대해 미국이 따질 수 있도록 독립적인 기구를 만들기로 했다. 또 한국식약청이 신약 승인 과정에서 제약업체들에게 독점적 소유권 관련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때는 그 이유를 명확히한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은 “미국은 무역협정 체결 때 의약품 분야에서는 체결 상대국이 미국과 같거나 근접한 수준의 약값을 정부가 보장하도록 요구하는 게 철칙으로 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 의약품시장은 연간 8조원 규모인데 2001년 이후 다국적 제약회사의 점유율이 해마다 10%씩 늘고 있다, 현재 다국적회사의 시장점유율은 30%를 넘고 로열티 지급방식의 간접적인 점유까지 포함하면 절반은 된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자유무역협정 협상 과정에서 다국적 제약회사의 시장점유율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은 단순히 의약품을 넘어 한국시장에 △미국 소유 영리병원 △대체형 민간의료보험 허용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현재도 건강보험 재정에서 의약품 비용으로 나가는 돈이 30% 정도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치보다 두배 가량 높아, 의약품 비용을 되레 줄여야 할 판이다.
미국압력에 약값인하 중단
http://www.hani.co.kr/arti/politics/diplomacy/106389.html
FTA링오르기도 전에 의약품주권 백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diplomacy/106391.html
다국적제약사 혁신적신약 값내리기 검토 보고서 서랍속으로
http://www.hani.co.kr/arti/politics/diplomacy/10639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