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부, 자국 제약업계 의견통로 놓아
참조가격제 등 불거지자 “투명성 문제있다” 대사관쪽 동석
송창석 기자
의문에 싸인 약값회의
한국 정부가 제약업계의 의견수렴을 위해 운영해온 ‘의약품 워킹그룹’에 미국 대사관 관리가 고정적으로 참석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워킹그룹이 실제 정부의 약값 정책에 끼친 영향 등 그 실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의약품 워킹그룹은 처음부터 미국의 요구로 만들어진 모임이었다. 토머스 허바드 주한 미대사가 지난 2002년 3월11일 당시 이태복 보건복지부 장관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약값 정책 수립 과정에 미국 등 관련 기업들이 적극 참여하는 실무회의를 원한다”고 요청했던 게 발단이 됐다. 한국의 약값 정책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미국 정부가 다국적 제약업계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공식채널 확보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워킹그룹에 어떤 이유로 미국의 외교관이 참석하게 됐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워킹그룹을 사실상 주도해온 보건복지부는 정확한 설명을 못하고 있다. 당시 워킹그룹을 주재했던 복지부 관계자는 “2002년 5월에 열린 첫 모임은 그야말로 실무자회의였다”며 “제약협회와 회원사의 실무자들이 참석했고, 미 대사관 직원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두번째 모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 ‘참조가격제’ 문제가 불거지면서 “왜 제약업계에 사전에 언질을 안 줬느냐”, “투명성에 문제가 있다”는 등이 불만이 외교 통로를 통해 쇄도했다고 한다. 참조가격제는 동일한 효능을 갖고 있는 약들에 대해서는 평균가격만 보험급여 대상이 되도록 하는 제도여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신약 부문에서 우위에 있던 미국 등 다국적 제약회사들에 불리한 것이었다. 결국 분기별 모임인 워킹그룹은 첫 모임 열흘 만인 2002년 5월17일 재차 ‘참조가격제’를 주제로 소집됐다. 이때부터 미 대사관 직원이 동석하기 시작했고, 참조가격제는 결국 도입이 무산됐다. 당시 복지부는 “제약업체들은 물론 시민·사회단체들도 모두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시민·사회단체들은 “다국적 제약회사처럼 적극적으로 반대한 것은 아니다”라며 “정부가 시민단체를 핑계로 다국적 제약회사의 얘기를 들어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국적의약산업협회는 “한국 정부가 워킹그룹을 통해 형식적으로는 성의를 보인 것 같지만, 실제로 해결된 것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푸념은 엄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워킹그룹에서 약값 산정과 관련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는 좀더 투명한 절차를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고 한국 정부의 약값 재평가 개선안 작업에 대해서도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지난달 공개된 미 의회조사국(CRS)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미국 업계가 요구하는 별도의 이의신청기구 설립과 새로운 약값 정책의 보류를 동의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워킹그룹에 참석해 온 국내 제약사 관계자는 “보통 2시간 정도 모이는데 통역하느라 시간이 다 갈 정도로 다국적 제약사의 발언이 많았다”며 “원래 복지부와 다국적 제약사 간의 모임이고 국내 제약사는 덤으로 합류시킨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