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약값 정책 의견조율 회의’…미 외교관 3년간 고정참석 논란

‘약값 정책 의견조율 회의’…미 외교관 3년간 고정참석 논란
참관인 자격 모두 10차례
“외교상 전례없는 일” 지적

  송창석 기자  서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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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정부, 자국 제약업계 의견통로 놓아

  

한국 정부가 약값 관련 정책을 수립하면서 국내외 제약업계의 의견수렴을 위해 2002년부터 운영해온 ‘의약품 워킹그룹(실무회의)’에 미국 정부 관리가 고정적으로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한국 정부의 약값 정책이 미국 제약업체들에 불리하게 바뀌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간섭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제약업계와 의견조율을 하는 자리에 미국 정부 관리가 고정적으로 참석한 것은 외교적으로 전례도 없고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많다.
외교통상부와 보건복지부는 9일 “2002년 5월부터 우리 정부와 다국적 제약회사, 국내 제약회사로 구성된 약품 워킹그룹이 결성됐는데, 주한 미국 대사관의 경제담당 1등 서기관이 함께 참석했다”고 밝혔다. 이 실무회의는 애초 석 달에 한번씩 열리는 정기모임이었으나 정기국회 개최 등의 이유로 일부 건너뛰면서 지난해 5월까지 모두 11차례 열렸다. 미국 대사관 관리는 두번째 회의부터 모두 열차례 참석했다. 보건부 관계자는 “미국 관리는 발언권이 없는 참관인(옵서버) 자격이었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제약업계 사이 워킹그룹은 우리 정부가 미국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뤄진 것이지만, 미국 정부 관리가 고정적으로 참석한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장관직을 그만두기 몇 달 전인 2002년 초 토머스 허바드 당시 주한 미대사, 존 헌츠먼 미국 무역대표부 부대표 등으로부터 통상마찰 사전방지 차원에서 한국 정부와 미국 제약업체들이 만나는 실무회의를 구성해 달라는 요구를 받고 합의해줬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전 장관은 “워킹그룹에 미국 외교관이 참석한 사실은 몰랐다”며 “우리 정부와 업계간 회의에 미국 관리가 참석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은 “미국의 위상을 고려할 때 미 대사관 직원이 앉아 있는 것은 정치적 압력으로 느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워킹그룹에 참석했던 국내 제약사 관계자도 “우리 정부와 제약업계 사이에 의견차를 좁히기 위해 만든 자리였는데, 미국 대사관 관리가 나와 있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워킹그룹에 참석해 온 미국 대사관 관리는 “워킹그룹에 외교관이 참관인으로 참석하는 것은 이례적인 게 아니다”라며 “한국에서 화장품 분야에도 비슷한 워킹그룹이 있고, 여기에 한국 정부와 업계말고 주한 유럽연합대표부 외교관이 옵서버로 참석하는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주한 유럽연합상공회의소 화장품위원회의 김지연 상근이사는 “약품 워킹그룹과 비슷한 것이 있다면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화장품의약외품팀·의약품안전정책팀·의약품관리팀 등 세 곳에서 몇 달에 한번 정도 업계를 부르는 미팅이 있지만, 주한 유럽연합대표부 외교관은 한번도 참석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의 외교관이 미국 정부 주도로 진행되는 워킹그룹에 참석하는 일도 없는 실정이다. 외교부 북미통상과는 “미국 정부가 주도하는 업체들과의 워킹그룹에 우리 외교관이 옵서버로 참가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송창석 서수민 기자 number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