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1 2012년 4월, K씨의 개 같은 하루

2012년 4월, K씨의 개 같은 하루

한-미 FTA를 반대하는 학자가 그린 ‘체결 5년 뒤 대한민국의 가상 시나리오’… 미 보험사에 의료보험료 내려 뛰어가다 게릴라로 전락한 아버지의 얼굴을 보다

▣ 심광현 한미FTA저지국민운동본부 정책기획연구단장

04시30분, 보험은행사의 벨소리 공습에 잠이 깨다

전화기 소리가 깊은 잠을 깨운다. 금속 소리는 점점 커진다. 밤새 번역 일을 하고 겨우 잠들었는데 단잠을 깨우는 이 소리가 정말 싫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기 전에 가졌던 휴대폰 소리의 부드러운 컬러링이 그립다. 지금 전화를 받지 않으면 AIG보험은행사에서 준 문자수신기로 연락처가 남겨질 것이고, 응답 전화를 하려면 초당 수백원 하는 전화비를 내야 한다. 그렇다고 연락하지 않으면 내 책임으로 돌릴 것이다. 억지로 받는다.

아니나 다를까. AIG보험은행사 여직원이 오늘까지 보험료를 내지 않으면 4등급으로 낮출 수밖에 없다고 상냥하게 말한다. 잠이 번쩍 깬다. 하루만 참아달라고 애원했지만 소용이 없다. 오늘 일과 시간 내로 반드시 계열사 은행으로 이달치 보험료를 내야 딸아이 아토피 연고 보조금을 지급하겠단다. 어쩔 수 없다. 임대주택 청약적금이라도 깨야겠다.

△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미국 쌀이 홍수처럼 들이닥치자 논은 다 넘어가고 아버지는 농약을 드셨고 어머니는 화병에 쓰러지셨다. 그땐 국립학교라 학비도 쌌는데 지금은 오히려 국립대학 출신이라고 학원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 싼 티가 나 학원 이미지 버린다나. 그나마 아파트 수위 자리로 연명하는 내 신세를 생각하면 울화가 치민다.

울화가 치미니 좀 정신이 든다. 마루로 나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려다 그만둔다. 물이 거의 없다. 1ℓ 한 병에 3만원인데 딸애가 아토피라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고 해서 나나 아내는 물도 마시기 어렵다. 병원도 못 데려가는데 물이라도 마시게 해야 마음이 편하다. 아내를 불렀는데 답이 없다. 황급히 집을 나서자 싸늘하고 매캐한 공기가 폐부를 쑤신다. 버려진 애완견들이 떼지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05시10분, 살인적 추억에 시달리며 집을 나서다

새벽이 다가오는데도 하늘은 캄캄하기만 하다. 2007년 체결된 한-미 FTA 이후 미국의 폐기물 산업체들이 도처에 자리잡자 맑은 날씨와 깨끗한 공기는 구경하기 힘들다. 4월이면 황사가 겹쳐 하루 종일 캄캄한 채 살아야 한다. ‘유해폐기물협약’을 미국 기업이 어겼으니 고발해야 한다며 서명을 받으러 왔던 시민단체 회원이 생각났다.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오히려 기업 활동을 방해한다며 미국 폐기물 회사는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ICSID)에 시민단체와 환경부를 제소해 수백억원의 벌금을 타갔을 뿐이다. 이뿐이랴. 노조 결성했다고 제소, 영화 제작 보조금 지급했다고 제소, 천연기념물 항목을 줄이지 않았다고 제소, 심지어 우리나라에 진출한 미국 기업이 망하자 한국의 제도가 미비해서 그런 것이니 책임지라며 제소한다. 이 모든 재판에서 한국 정부는 판판이 깨졌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서민들 지갑에서 빠져나간다. 앗!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첫 버스를 놓치겠다.

아직 잠이 덜 깼나 보다. 부질없는 생각을 하는 것을 보니. 어차피 하루살이 인생인 것을. 하지만 생각할수록 답답하고 열이 받는다. 마지막 해에 4천만원이나 들여 대학을 졸업했는데, 그것도 이전에는 잘나가던 교대를 나왔는데도 교사는커녕 학원 강사도 못해먹고 있는 내 처지를 생각하면 울화가 치민다. 그때 공부를 못해 미국으로 도피 유학 갔던 친구놈은 한국으로 돌아와 국내 미국 대학 분교 대비반 학원을 강남에 차리더니 1년에 수십억원을 번다. 그나마 나는 하사관 3년 해서 모은 돈으로 졸업이나 할 수 있었던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꼭두새벽인데도 30분 간격으로 다녀 콩나물시루짝 같은 만원버스를 간신히 잡아타고 서초동 아파트에 도착했다.

06시30분, 아파트 수위실에서 상념에 잠기다

교대를 하고 나자 다시 피로가 엄습한다. 피붙이가 무섭긴 무섭다. 요즘은 환경호르몬 때문에 애 낳기도 힘들다. 겨우 얻은 딸애도 아토피 때문에 고생이 너무 심하다. 이전에도 아토피가 심했지만 치료약 구하기 힘든 것은 아니었는데 지금은 1개에 수십만원이다. 그나마 난 보험이 3등급이어서 3분의 2 가격에 살 수 있는 게 다행이다. 한-미 FTA 이후 재정 형편에 따라서 보험 등급이 나뉘었다. 보험 3등급 미만이면 감기약도 수십만원을 줘야 구할 수 있다. 그나마 나와 처가 함께 돈을 버니 3등급은 유지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다행히 오늘은 아내에게 일이 있었나 보다. 이전에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내는 미국 법인이 학교를 인수한 뒤 실직하고 고교 동창 집에 파출부로 나가고 있다. 엊그제 나도 몇 달 만에 동창과 소주 한잔 했는데 요즘은 사창가에 아이 데리고 나오는 젊은 주부가 많다고 한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뒤 멕시코가 그랬다고 할 땐 설마 했는데 이젠 남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누가 그 젊은 주부를 비난하랴! 다만 내 아내가 그렇지 않다는 것에 감사드릴 뿐이다.

△ 품질은 비슷하지만 15~20% 싼 미국쌀이 4월부터 식탁에 오른다. 평택시 농수산물 비축창고에서 인부들이 부산으로 수입된 미국산 쌀포대를 쌓고 있다.(사진/한겨레 김태형 기자)

매일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보험 3등급을 유지하는 데 아내의 도움은 절대적이다. 한 달에 수백만원 하는 유아원에 아이를 보낼 수 없는데 아내가 아이를 볼 수 있는 것만도 다행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보낼 생각을 하면 갑갑하기만 하다. 질 낮은 공립학교에 보낸다 해도, 한 달에 수십만원인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할까. 월 100만원이 넘는 중·고등학교는 또 어찌 보낼까? 억대에 이르는 대학 학비는 상상하기도 싫다. 그래도 아내는 함께 열심히 벌면 되지 않냐며 희망을 가져보자고 한다.

07시30분, 나비부인을 들으며 다시 절망에 빠지다

<나비부인>의 <어떤 갠 날>의 날카로운 소프라노 소리가 아침 공기를 가로지르며 귓전을 때렸다. 아내가 교사로 일할 땐 우리 부부도 심심치 않게 오페라 공연을 보러 다녔다. 수위실에 첫 출근 하던 날 바로 앞집에서 흘러나오던 이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먼 옛날의 일일 뿐이다. 3만원에 이르는 거액의 관람료가 아니라도 할리우드 영화 외에는 선택지가 없어 이젠 영화도 보기 싫다. 반토막난 스크린쿼터를 그나마 유지하겠다더니 한-미 FTA 체결 뒤에는 아예 없애버려 1년에 간신히 몇 편 개봉되는 한국 영화는 꼭 보러가려 했지만, 아이가 생긴 뒤에는 한 번도 못 갔다.

지금 아이들한테 한국 영화가 한때 아시아에서 제일 잘나갔다고 말하면 아무도 믿지 않는다. 영화는 미국에서만 만들어지는 줄 아는 아이들이 더 많다. 하긴, 나도 ‘한류’란 말이 있었는지 벌써 가물가물하다. 그나마 텔레비전에서 가끔씩 2000년대 초반 영화를 보는 재미에 산다. 그런데 5분 상영하고 5분 광고하는 채널밖에 없어서 한 편을 2~3일에 나누어 봐야 한다. 그러면 어떠리. 영화광인 아내는 지금도 강동원만 보면 마음이 설렌다고 한다. 그래서 비교적 중간 광고가 별로 없는 영화 채널 하나만이라도 신청하자고 하지만 한 채널당 월 요금이 10만원이 넘고 1천만원이 넘는 일체형 텔레비전을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 그 텔레비전을 사면 회사가 보유한 채널들을 절반 가격에 볼 수 있기 때문에 없는 형편이라도 구미가 당기긴 한다. 물론 공짜 채널이 없는 건 아니다. 미국 ABC 채널은 어떤 텔레비전에서라도 볼 수 있다. 난 이 채널이라도 보자고 하지만, 아내는 결사코 반대한다. 공용어가 된 영어 공부를 위해서라도 난 봤음 하지만, 아내는 우리가 이런 나락으로 떨어진 게 다 미국놈들 때문이라면서 ‘미국’ 하면 화부터 낸다. 하지만 미국과 관련 없는 게 지금 어디 있을까? 하나에서 열까지, 머리에서 발끝까지, 대통령이나 장관도 미국 유학생이 아니면 될 수 없는 세상인데.

15시30분, 은행 전용 버스를 타다

라면 한 그릇으로 아점을 때운 뒤, A씨와 교대를 하고 황급히 달려나섰다. 한낮인데도 하늘은 여전히 캄캄하다. 한때 법률사무소들이 득실거리던 법원 앞거리는 썰렁해지고 군데군데 미국 법률회사의 대형 간판이 걸린 고층건물들이 서 있을 따름이다. 이전에는 그리도 많던 은행들도 모두 통폐합되어 동에 하나씩 있어 은행에 가려면 걸어서 갈 수 없다.

15시45분, 영어 방송에 오리무중

한시라도 빨리 가려고 AIG은행 소속 버스 전용차선이 있어 거의 막히는 일이 없는 미국 회사 버스를 탔는데 낭패다. 전용차선이라 평시면 10분이면 갈 거리인데, 도통 움직이지 않는다. 10분마다 두 배로 요금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다급해진다. 돈도 돈이지만, 은행 마감 시간이 지나면 보험료를 못 내는 게 더 큰 문제다. 3등급과 4등급은 하늘과 땅 차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10분 구간에 1만원이긴 해도 지하철을 타는 건데, 잘못했다. 서비스 질을 높인다며 정부가 외국 회사에 지하철을 넘겼을 때 노조가 파업하는 걸 보고 이기주의자들이라 탓했던 내가 지금도 부끄럽다.

그건 그렇고 왜 버스가 이리도 가지 못할까? 기사에게 물으니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라디오를 틀어보라고 하자 어차피 소용없을 거란다. 그래도 틀어보라고 승객들이 아우성이라 기사는 구시렁거리면서 라디오를 켠다. 이리저리 돌리지만 온통 영어 방송이다. 그나마 한국 방송은 광고 전용 방송뿐이다.

16시05분, 보도 없는 차도를 전력질주하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 내려달라고 했다. 오래전에 보도는 없어져 차도만 남은 도로는 온통 꽉 막혀 있다. 전력질주를 하는데 빌딩 2~3층마다 러닝머신을 타는 피트니스 클럽의 외국인들과 성형미인들을 힐끔 보면서 달리니 더 멀미가 날 것 같다.

시간은 왜 이리 빨리 갈까. 드디어 언덕 너머로 AIG은행 빌딩이 눈에 들어온다. 언덕을 넘어서니 차가 왜 막히는지 알겠다. 한-미 FTA 이후 게릴라가 되어 산으로, 지하로 들어갔던 농민들이 도심 시위를 나온 것이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어디에 그리들 숨어 있다 쏟아져나왔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 신기함도 잠시, 수천 명의 경찰들과 수백 명의 AIG은행 사설 경찰들이 농민들을 에워쌓다.

난 건물 안에 용무가 있는 평범한 시민일 뿐이라고 애원하듯 소리치며 경찰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때 갑자기 경찰들이 대치하고 있던 농민들에게 달려들어 무자비하게 곤봉으로 내리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 가족이 우선 살고 봐야지.

16시28분, 개 같은 내 인생

막 은행 빌딩으로 들어서는데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이 농민 무리에서 보인다. 아버지? 아버지가 아닌가! 분명히 군대에 있을 때 농약을 마시고 돌아가셨다고 했는데. 고개를 흔들어봐도 분명 아버지다. 시위대로 다가가려 했으나 전면의 대형 시계가 보인다. 이제 1분 뒤면 은행 문은 닫힌다. 아니야. 보험 등급은 다시 돈을 내면 되지만 아버지가 맞다면 지금밖에 기회가 없지 않은가! 그 순간 아버지는 개처럼 끌려가고 만다. 아! 어떻게라도 해야 하는데, 아버지는 멀어진다. 그때 ‘띵동’ 문자가 왔다. “보험 4등급 처리되었습니다.” 눈물도 나지 않는다. 개 같은 내 인생. 개 같은 한-미 F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