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소리 “평택 대추리의 노을을 보셨나요?”, 동요 ‘노을’의 배경은 대추리

“평택 대추리의 노을을 보셨나요?”
동요 <노을>의 작가, 이동진씨와의 대추리 여행

문형구 기자
  

ⓒ민중의소리 김철수

  바람이 머물다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 연기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 언덕에
  빨갛게 노을이 타고 있어요
  허수아비 팔 벌려 웃음짓고
  초가지붕 둥근 박 꿈꿀 때
  노개숙인 논밭의 열매
  노랗게 익어만 가는..[동요 '노을' 중 일부]
  노을 듣기
  
  어른이 돼서 다시 떠올리게 되는 동요 <노을>. 가사가 아름다운 이 <노을>은 화가 이동진 씨가 평택 팽성읍의 노을을 노래에 담아 만들어졌다.
  
  이씨의 제자 최현규씨(소설가)가 제2회 MBC창작동요제(대상,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창작동요’ 1위, 2004년 MBC조사)에 나가면서 작사를 부탁했을 때, 이동진씨는 문득 이 노을이 생각났다고 한다.
  
  ”평택 바다가 가까워 노을이 아주 아릅답습니다. 대추리 쪽에 들어가 보시면, 정말 다른데 어디를 가봐도 거기만큼 노을이 아름다운 데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때 그 노을은 다른 어느 고장보다도 들이 넓은 평택과 잘 어울렸습니다. 또 들이 넓다보니 노을을 오래 볼 수가 있죠”
  
  ”그 노을을 도회지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었죠”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노을은 평택시 평택읍에서 팽성읍으로 넘어가는 안성천 ‘군문리 다리’ 위에서 바라 본 ‘대추리 들판의 노을’이다.
  
    
   △군문교 일대 ⓒ사진출처 네이버
  

평택시내에서 안중방면으로 빠진 뒤, 고가도로를 넘으면서 둔포방향으로 좌회전, 1km만 가면 군문리 다리다. 군문리 다리에서 보는 대추리의 피빛 노을은 실로 유명하다. 날씨가 좋으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다고.
  
  동요가 만들어진 건 이동진씨가 평택에서 교사생활을 하던 1984년. 세월이 지나 초가집은 없어졌지만 평택의 들판과 노을 또 허수아비도 여적 그대로다.
  
  ”노을이 아름다우면 그 다음날이 맑을 거라고 얘기합니다. 그게 마치 하늘의 약속과 같은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마무리를 잘하면 우리 다음 세대는 우리보다 좋은 세상 맞이할 수 있지 않겠냐. 그런 의미로서도 노을이 참 좋은거 같아서 노래를 만들었죠.”
  
  평택에서 20년을 살았다는 이동진씨는, 평택의 들판과 노을을 도회지의 아이들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아름다움과 누대로 살아오던 생활이 다 우리가 지켜 올 만한 거니까 지키며 살아온 게 아닙니까. 노을이라는 것과 노을과 잘 어울리는 들과 곡식이라든지 허수아비 이런 건 다 하나의 결실이고 다 미래를 위한 것이다. 이런 걸 도회지에 사는 아이들이 좀 기억하고 알았으면 좋겠다는 거였죠.”
  
  천혜의 자연 평택, 천혜(?)의 군사요충지로
  
  그 자신도 외지인이었던 이동진씨에게, 평택은 ‘누구라도 들어와 편하게 살 수 있는 곳’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우리가 흔히 ‘개성사람보다 지독한 게 화성(수원) 사람이고 화성사람보다 더 지독한 게 안성사람이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40리 정도 떨어진 평택은 누구라도 와서 같이 어우러질 수 있는 고장입니다. 충청남도하고 경계선상에 있는 평택은 좀 독특한 고장이죠. 예전에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과거를 보러 오던 사람들이 군문리 다리 근처에서 자고 새벽에 서울에 갔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항상 배타적이기 보다 포용적이었습니다.”
  
  바다와 가깝고 산지없이 평평한 팽성읍 일대의 넓은 들판은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만들어낸다. 이 평택의 자연처럼 포용적인 마음을 가진 주민들은, 그러나 역사적으로도 타 지역보다 소작농이 많았고 일제 치하에서, 미군 주둔후에는 미군에게 땅을 뺏기고 죽임을 당해야 했다. 평택이 가진 천혜의 자연이 그들에게는 천혜(?)의 군사 요충지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이동진 화백의 ‘노을’ ⓒ민중의소리

  ”평택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항상 정부에 피해를 입고 살았죠. 미군이 주둔하면서 평택 안정리에 병참기지와 헬기기지를 두고, 둔포 쪽에도 미군 CPX훈련장을 뒀는데, 그것도 다 공출한 땅이거든요. 그런 피해를 전에도 입고 살았는데. 이제는 그런 정도가 아니라 조상땅을 다 뺏기게 생겼으니깐, 그렇게 미군기지화 되는 것에 반대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부정적이기보다 긍정적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 겸손해서인지 모자라선지 우리는 우리 것을 너무 하찮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많이 배웠건 아니건 말입니다. 민중은 알건 모르건 상관없이 우리 것을 지키는 사람들이죠. 민중은 끝까지 싸우는 거고 그 자체로 의의가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동진씨가 전하는 평택민들의 모습은 그 자체 민중들의 모습이었다. 그의 말처럼 아마 승리하지 못할지라도, ‘싸워야 하기에 싸우는 사람들’, 더 치열한 싸움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곧 시작될 군병력투입과 ‘행정대집행’을 앞두고, 대추리를 지키고 있는 주민들은 여전히 논갈이를 하고 직파된 볍씨의 싹을 틔우려 땀을 흘린다. 논에 양수기로 물을 대는 유춘모씨는, 동요 노을의 가사에 “딱 대추리구먼” 허허 맞장구를 친다. “십년, 백년 대대로 뜨는 해 지는 해 모심고 가을 추수해야지요”

2006년04월28일 ⓒ민중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