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發’ 보험약값 개혁 성공 가능하나
[머니투데이 2006-05-03 11:34]
[머니투데이 여한구 기자] 복지부가 ‘해묵은 과제’인 보험적용 의약품 등재 방식을 기존 네거티브 방식에서 포지티브 방식으로 전격적으로 전환키로 함에 따라 큰 파장이 예상된다.
제약업계의 반발과 한·미 FTA 협상이란 변수가 남아 있지만 유시민 장관이 취임 초기부터 “약값만은 바로 잡을 것”이라고 공언해온 만큼 약제비 절감 정책이 크게 후퇴할 여지는 많지 않아 보인다.
‘선별 등재’ 방안이 시행되면 보험적용을 받는 의약품 수가 현저하게 떨어지게 되면서 제약업계는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의 회오리에 휩싸일 전망이다. 또 약제비 부담을 감수하느라 휘청거렸던 건강보험의 재정도 한층 안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제약업계 및 다가올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측의 반발을 어떻게 극복할 지가 최대 관건이 될 전망이다.
◇보험약값 개혁추진 배경=제약사가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허가를 받고 나서 보험등재 신청을 하면 특별한 하자가 없을 경우 보험약으로 인정하는 ‘네가티브 리스트’ 방식에 대한 문제점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보험적용을 받는 의약품 수가 필요 이상으로 넘쳐나면서 건강보험 중 약제비 비중이 급증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해 온게 사실이다. 실제 2005년 기준 보험적용 의약품은 2만1700개에 이르고 있으며 건강보험 재정지출 중 약제비가 차지하는 액수는 7조229억원으로 총 지출의 29.2%나 됐다. 이는 의약분업 직전인 2000년 약제비 액수 1조1905억원, 비중 9.2%와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다.
복지부는 2002년부터 매년 약가재평가를 통해 ‘약값 거품’의 일부를 빼고는 있지만 ‘미봉책’이 아닌 보험지정 약품을 별도로 선정하는 ‘포지티브’ 방식으로의 변경을 통한 ‘수술’을 감행하고 있다.
포지티브제 도입으로 보험등재약은 5000~6000개 수준으로, 건강보험 재정지출 비중은 24%까지 낮출 수 있다는게 복지부의 설명이다. 약제비는 최고 1조3000억원까지 절감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수년째 논의만 무성했던 의약품 등재방식의 전면적인 수술 추진은 유 장관의 확고한 의지가 뒷받침하고 있다.
유 장관이 취임 초기 “약값 결정 과정이 터무니 없다”고 밝힐 때만해도 이처럼 급진전 되리라고는 예상되지 않았다. 그러나 유 장관은 3월말 취임 한달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 문제를 언급하더니 다시 한달 보름여만에 ‘작품’을 내놓았다.
유 장관은 제도변경 추진 과정을 매일 보고받는 등 직접 챙기면서 실무자들을 독려해 왔다는 후문이다.
2002년 당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약가제도 변경을 추진하던 중 퇴진했던 이태복 복지부 장관이 퇴임사에서 “다국적 제약사의 로비로 물러나게 됐다”고 밝힌 점을 돌이켜 보면 유 장관이 ‘쾌도난마’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는 셈이다.
◇군소 제약업체 ‘직격탄’=포지티브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는 약품은 보험적용을 못받기 때문에 그만큼 약값이 높아져 시장에서 퇴출될게 확실시 된다.
이 경우 시장에서 인정받는 오리지널 약품이나 다국적 제약사의 카피약을 보유하지 못한 군소업체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제약업계에서 정부가 중소업체를 ‘줄도산’으로 몰아가려고 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반응이다.
이같은 업계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제약협회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치를 제시해가며 ‘역공’에 나서고 있다.
2003년 기준 1인당 약값은 20만원으로 회원국 평균 35만원보다 낮고 국민총생산 대비 약제비로 1.6%로 OECD 평균 1.5%와 비슷함에도 정부가 무리한 약제비 절감정책을 펴고 있다게 주요 주장이다.
제약협회 관계자는 “정부의 시장개입으로 제약시장 자체가 왜곡되면서 국민 의료서비스의 질적 저하도 불러올 것”이라고 반대논리를 폈다.
◇FTA 기선제압용=복지부가 약제비 절감방안을 다소 급하게 내놓은데는 임박한 한·미 FTA 협상이 주요 변수로 작용했다.
의료분야 협상에서 우리 정부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방편으로 날짜를 잡았다는 것이다.
제도개혁에 깊숙이 참여한 인사는 “미국에서 최초 협상안이 나오기 전에 미리 선수를 치자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외교통상부 관료들이 보험약가 제도변경 과정에 참여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국적 제약사를 대변하는 미국측이 협상 직전에 개혁안을 내놓은데 대해 강하게 항의할 것이 분명해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게다가 약가 재조정 과정에서 자사가 생산한 의약품 가격이 현재보다 낮아질 것을 우려한 다국적 제약사의 로비도 치열해질 전망이어서 보험약품 제도 변경을 둘러싼 국내외적 논란은 당분간 커질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유시민 장관도 “이 제도가 실패할 지, 성공할지는 아직은 모른다. 제약업계와 의료계, 국민들의 협조가 있어야만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여한구기자 han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