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는 무엇을 하겠다고 발표했나
[프로메테우스 2006-05-17 11:40]
복지부의 ‘건강보험 약제비 적정화 방안’ 그 이후
[프로메테우스 송기향 기자]
3일 보건복지부는 모든 의약품에 보험을 적용하는 현재의 방식(네거티브 리스트 시스템, Nagative list system)에서 비용 대비 효과가 우수한 약을 선별하여 등재하는 방식(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 Positive list system)으로 전환해 약제비를 적정화하겠다는 내용의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은 의료계에 전반적인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약가 절감은 물론 기존의 의약품 유통과정, 의사가 의약품을 처방하는 관행의 개선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의 ‘건강보험 약제비 적정화 방안’,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복지부가 제출한 방안에 따르면 건강보험 총진료비 중 약제비 비중은 2001년 23.5%에서 2005년 29.2%로 증가했다. 약제비는 2001년 4조1,804억 원에서 2005년에는 7조2,289억 원으로 73.0% 증가해 2005년에는 총진료비 중 약제비 비중이 29.2%를 차지했다. 또 총 약제비는 2001년 이후 매년 14%정도 증가했다. OECD 국가와 비교했을 때 국민 일인당 약제비 수준은 OECD 국가 평균의 84%로 절대적 수치는 낮다. 하지만 국민 일인당 의료비의 28.8%를 차지해 그 비율은 높은 편이다. 1998년부터 2003년 5년간 그 증가율이 OECD 국가 평균의 2.1배이다.
그 원인은 비싼 약가와 유통구조, 처방관행에서 찾을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약가는 ‘혁신적 신약’의 경우 외국 7개국(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태리, 스위스, 일본)의 평균가로 매겨진다. 그러나 신약의 가격을 참조하는 7개국은 우리나라에 비해 소득수준이 높은 국가들이다. 따라서 오리지널약의 가격 자체가 비싸게 책정된다.
복제약은 이 오리지널약의 가격을 기준으로 책정한다. 복제약은 5번째까지는 최고가의 80% 이하, 6번째 이상은 최저가의 90% 이하로 정한다. 오리지널약의 가격 자체가 비싸기 때문에 복제약의 가격 역시 과도하게 책정된다. 약가에서 거품이 생기는 원인이다.
여기에 의약품 유통구조의 문제점과 불합리한 처방 관행이 더해진다. 현재 국내 의약품 제조업은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비율이 5% 이내에 불과할 정도로 복제품 생산에 치중하고 있다. 또 연구개발보다 영업에 치중하는 관행과 불투명한 유통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의사들이 불필요한 약을 과다 처방하거나 동등한 약효와 성분을 가진 복제약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고가의 오리지널약을 선호하는 경향도 약제비를 증가시킨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비자가 과다 처방이나 오리지널약을 요구하는 것도 문제다.
포지티브 시스템 도입으로 약제비 절감
복지부가 발표한 이번 방안은 위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이 도입되면 보험급여의 적용이 기존의 의무신청에서 제약업체의 자율신청으로 변경된다. 동일성분의 동일약효라면 경제성 있는 의약품이 선별등재 되게 된다. 따라서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으로 의약품을 공급받을 수 있고 약제비가 절감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포지티브 리스트의 단점은 신약이나 독점적 위치의 약이 포지티브 리스트에 등재를 거부했을 경우다. 이 경우 약이 꼭 필요한 환자들이 약을 구입할 수 없게 되거나 비싼 값에 구입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수의약품에 대해서는 약제급여조정위원회의 심의ㆍ결정 및 업체의 의견을 들어 등재하도록 했다.
기존의 특허가 만료되더라도 오리지널약의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그에 따라 복제약의 가격을 산정하는 방식도 개선된다. 복지부의 이번 방안은 최초로 복제약이 등재되는 시점에 특허만료의약품의 가격을 조정하고 복제약에 반영하도록 했다. 오리지널약의 가격이 낮아진다면 약가가 전체적으로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
수량-가격 연동제도 도입된다. 약제비는 약가에 수량을 곱한 값으로, 개별 약가 못지않게 수량도 중요하다. 또 과다 처방이나 고가약 선호 행태 개선을 위해 경쟁입찰이나 전자상거래 등 실거래가가 파악되는 방식으로 의약품을 저가 구매한 요양기관에 인센티브를 부여할 계획이다. 올해 6월부터는 약제비 절감을 위한 협의체가 구성, 운영될 예정이다. 이 협의체를 통해 고가약 처방, 품목 과다 처방 등을 개선하게 된다.
5ㆍ3방안을 둘러싼 반응들
1. 미국
3일 오후 복지부는 ‘약제비 적정관리방안 설명회’를 주최했다. 미국. 네덜란드, 유럽연합 대사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비공개설명회였다. 이 자리에서 주한 미 대사관의 커트 통 참사관은 이 방안의 철회를 요구했다. “이번 조치는 연구개발에 투자를 많이 한 회사에 불리할 수 있고, 한국에 혁신적 신약이 도입되는 것을 제약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미국은 많은 다국적 제약회사들을 가진 나라다. 당연히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 포지티브 리스트가 도입되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고가약들도 대부분 미국의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의약품이다.
2. 제약업계
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는 5일 복지부의 새 방안에 반대하는 입장의 성명을 냈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건강보험공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의약품의 경우 강제로 보험에 등재할 수 있도록 한 조항에 반발하고 있다. 혁신적 신약이라도 약가를 높게 책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 제약사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이들은 포지티브 리스트의 도입으로 업계에 몰아닥칠 구조조정을 걱정하고 있다. 경제성 있고 우수한 품질의 약만이 포지티브 리스트에 등재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성이 떨어지고 복제약 판매를 위주로 하는 국내 제약사들은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제약회사간 품질위주 경쟁을 하도록 유도해 국내 제약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3. 한국 정부
한국 정부는 이번 방안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미국과 다국적 제약업체들의 불만 때문에 한 국가의 정책을 원점 재검토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다. 유시민 장관도 “국내외 기업에 똑같이 적용하겠다”며 외국 기업만을 겨냥한 것이 아님을 밝혔다.
4. 시민사회단체
건강세상네트워크, 보건의료단체연합, 참여연대는 11일 이번 방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한국의 약가제도 문제점과 개혁방안’이란 긴급토론회를 주최했다.
그동안 약제비절감의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왔던 시민단체들은 이번 방안에 대해 일단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이번 방안이 미비점이 많아 실질적인 약제비 절감 효과가 미미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후 한미 FTA 협상에 미국 쪽에 유리하게 작용할 소지가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방안의 구체적인 내용과 실행 시기가 명확하지 않은 점도 지적됐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건강권
이번 방안의 실행 과정에는 여러 국가들과 제약회사들의 이익이 대립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건강권’이다. 건강권이 제1의 가치이고, 약제비 절감은 그 다음 목표가 되어야 한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포지티브 리스트의 도입이 신약에 의존하는 환자들을 건강보험 시스템으로부터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 어떤 약이라도 필요한 약은 반드시 건강보험이 제공해야 한다. 복지부는 포지티브 리스트가 건강보험의 보장성 약화로 귀결되지 않는 방안을 제출해야 한다. 시민사회단체가 포지티브 리스트 비적용약제에 대한 조정기능을 강제규정으로 정하도록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민의 건강권 보장을 전제한다면 포지티브 리스트의 도입은 약제비 절감을 위해 매우 유용한 수단이다. 그러나 이번 복지부의 방안은 기존의 약제를 모두 포지티브 리스트에 등재한 것으로 인정하고 순차적으로 등재목록을 정비하겠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약가 제도에서는 오리지널약의 특허기간이 만료되었고 동일한 성분과 효과의 복제약이 이미 나와 있더라도 오리지널약은 최초의 높은 가격을 그대로 유지한다. 이 때문에 지출되는 비용이 약제비 지출액 중 72.3%에 달한다. 복지부의 방안대로라면 이 부분의 절감은 포기하는 셈이 된다.
이번 방안이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약제비를 절감할 수 있다면 비로소 의료산업의 경쟁력 문제를 거론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 제약회사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혹은 다국적 제약회사의 시장 논리에 밀려 건강권을 도외시한다면 건강은 하나의 상품처럼 취급될지도 모른다. 복지부는 이번 방안이 앞으로 어떤 식의 협상을 거치더라도 건강보험이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는 방패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송기향 기자(ssong@promethe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