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칼날, 공공서비스를 겨눈다”
[토론회]한미FTA 협상이 요구하는 바와 그 결과들
임은경 기자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15일 저녁 대학로 서울대병원 본관 강당에서 ‘공공재 사유화 추진의 엔진’이라는 제목으로 한미FTA 협상이 공공부문에 미칠 영향을 짚어보기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공공부문 중에서도 특히 보건·의료 분야에 초점을 맞춰 진행된 토론회에서는 공공부문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프랑스 노동운동 사례와 함께 한미FTA 협상을 보건의료제도 개편에 이용하려는 정부의 전략 등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오건호 대안연대회의 운영위원은 “프랑스 공공부문은 상대적으로 조직이 잘 되어있고, 고용 조건도 양호해서 정부의 ‘공공부문 개혁정책’의 주요 타깃이 되곤 한다”며 프랑스 정부가 특히 안정적인 연금제도를 중심으로 여러차례 구조 개혁을 시도해왔다고 소개했다.
”프랑스 공공노조 성공사례에서 교훈 찾자”
미테랑 정부는 1983년 ‘청년실업대책’을 명목으로 연금 지급 연령을 65세에서 60세로 확대해 연금 재정을 악화시켰다.
95년과 2003년에도 각각 공공부문 연금개혁 시도가 있었고, 노조는 95년 연금개혁 반대투쟁에서는 승리했으나, 2003년에는 이를 막지 못했다.
그러나 프랑스 노동자들은 공공부문 노조인 SUD를 중심으로 상당히 조직적으로 대응해왔다. 프랑스 노조들 중에서 신자유주의 저항 성향이 가장 강한 SUD는 보수적으로 자신의 권리만을 찾는 기존의 운동방식에서 벗어나 공공성을 외쳤고, 이를 바탕으로 운동 조직이 오히려 커지고 운동의 성과도 얻고 있다고 오 위원은 설명했다.
프랑스 노조들은 올해 초 학생운동과 연대해 26세 미만 젊은이에 한해 2년이내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한 CPE 법안 저지 투쟁에 승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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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서울대병원 본관 지하B강당에서 열린 한미FTA 토론회 ‘공공재 사유화 추진의 엔진’.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FTA는 나쁜 것이고,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더더욱 나쁜 것”이라고 잘라 말하고, 그 이유로 함께 사는 세상의 공공성을 위해 최소한 지켜져야 하는 부분(공공부문)까지 예외없이 모든 것을 상품으로 보고 이윤 추구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 실장은 “IMF가 구조조정을 하는 기구라면, WTO는 구조조정한 것들을 전 세계적 협정의 지위로 묶어놓는 것”이라며 국제기구의 이름을 빌어 세계를 자기네 방식의 자본주의로 획일화하려는 미국을 비판하고, 한미FTA를 체결하려는 의도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FTA, 모든 것을 이윤추구 대상으로만 본다”
한미FTA가 요구하는 것은 1980년에 출발한 ‘워싱턴 컨센서스’. 이것이 지향하는 것은 긴축 재정을 포함한 ‘작은정부’, 비정규직 강화, 민영화 등이다.
”IMF 때 반을 팔아먹었는데 FTA에서 나머지 반을 팔겠다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정부가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공공서비스는 FTA 협상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정부는 모순되게도, 지난 1일 재정경제부 이름으로 내놓은 자료에서 마지못해 인정하듯 “공공서비스가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라고 쓰고 있다.
때맞춰 미국 무역장벽 보고서는 ‘Trade-related(무역관련)’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무역장벽’의 범위를 대폭 확장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정부 독점’을 무역장벽으로 지적하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는 한국가스공사나 한국전력처럼 정부가 사업권을 쥐고 공급하는 ‘공공부문’이 되는 것이다.
한미FTA가 체결되면 GS칼텍스가 새로운 도시가스 공급자로 나설지도 모른다. 우량 다국적 기업이 가스를 공급하게 되면 서비스가 나아질까?
우 실장은 수도의 사유화로 수도요금이 약 14만원까지 올라간 볼리비아 코차밤바의 사례를 들며 이것이 얼마나 헛된 기대인가를 지적했다. 코차밤바의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실수로 수도꼭지를 틀까봐 수도에 잠금장치를 했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러운 물을 먹다가 전염병에 걸리기도 했다. 호숫가에 물을 뜨러 간 아이들이 악어에 잡아먹히기도 했다.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당시 캐나다에서는 주 정부가 5대호를 사기업에 팔아넘긴 일도 있었다.
”한미FTA는 그동안 추진해온 공공부문 사유화 완성작업”
또 정부는 FTA와 무관하게 의료법인의 영리병원화 등 기존에 추진해오던 의료개방을 ‘흔들림없이’ 추진해가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한미FTA는 그동안 추진해왔던 공공부문 사유화를 완성시키는 작업일 뿐이다.
그나마 ‘공공부문’이라는 이름으로 보호되었던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오건호 대안연대회의 운영위원이 최근 우연한 기회에 확인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한 생명보험 회사는 1년간 2조원의 상품을 판매해 2천억원을 가입자에게 돌려주었고, 6천억원을 직원들 월급으로, 5천억원을 광고비용으로 쓴 것으로 되어있었다고 한다.
걷은 돈의 평균 두배 정도를 돌려주는 정부의 건강보험에 비하면 입이 벌어질만한 수치다. 공공부문이 사유화되면, 당장 그때부터 일반 서민들이 감당해야하는 것들이다.
우 실장은 “FTA는 공공성에 대한 자본의 공격”이라고 한마디로 정의내리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