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소리 “의료가 협상대상 아니다? 한마디로 거짓말”

“의료가 협상대상 아니다? 한마디로 거짓말”
[한미FTA 인터뷰]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임은경 기자

  ”의료시장 개방은 없을 것이며, 초·중등 교육은 개방을 유보하고, 고등·성인교육 분야만 한정된 범위에서 개방할 것이다.”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5월 2일)
  
  ”국민생활에 기본적인 의료, 교육서비스의 공공성은 훼손하지 않도록 하겠다. 개방에 대한 부작용은 미미할 것으로 생각한다.” (김종훈 한미FTA 협상 수석대표, 4월 27일)
  
  6월 초 1차 본협상을 눈앞에 둔 한미FTA.
  
  각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자 정부는 의료·교육 등 공공성이 강한 분야는 개방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 말은 일면 사실이지만, 뒤집어보면 진실의 껍데기를 쓴 거짓이라는 것이 ‘알만한’ 사람들의 반론이다.
  
  현직 의사이자 오랫동안 의료개혁 운동을 해온 우석균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한미 FTA가 아니더라도 영리병원 허용과 민간보험 허용 등 의료서비스 시장화 정책은 이미 추진중이었다”며 “한미FTA는 정부가 추진했던 공공서비스 시장화 정책,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빌려온 것일 뿐이며, 국내 기업과 자본이 FTA라는 외부 충격을 활용해 자신들의 이해사안을 관철시키는 장”이라고 지적했다.
  
  ”한미FTA는 정부와 자본이 기존의 목적달성을 위해 빌려온 것일 뿐”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민중의소리  
  

“미국이 민간 건강보험 허용이나 영리병원 허용에 관련된 요구를 무역장벽으로 직접 지적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 외교부 주장의 근거입니다. 미국 병원이 한국에 진출하려 해도 실익이 별로 없어서 영리병원 허용 요구를 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말도 있고요. 그런데 재경부 주도로 나온 정부부처 합동 한미FTA Q&A에는 영리병원 허용과 같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일 경우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추진해나갈 것’이라는 말이 들어 있었습니다.”
  
  외교부는 없다고 했더라도, 실질적 주체인 재경부가 들어가면서 말이 달라진 것이다.
  
  우 실장은 이것이 바로 “한미 FTA가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의 국익을 둘러싼 한판 싸움이라기 보다는 국내 기업과 자본이 FTA라는 외부 충격을 활용해 자신들의 이해사안을 관철시키는 장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병원이나 보험회사들이 끊임없이 요구해왔던 것이 영리병원 허용과 민간보험 허용이었다. 한미FTA는 이것을 관철시키는 절호의 찬스로 다가온 것이다.
  
  ”영리병원 허용 문제는 그동안 우리나라 의료제도 개악의 핵심이었고, 자본이 끊임없이 요구해왔던 거예요. 저는 이 문제에 대해 설사 미국정부의 요구가 없더라도 재경부가 나서서 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재경부가 이적행위를 하는 꼴이랄까요.”
  
  의료가 대상이 아니라고 하면서 영리병원 허용이 대상이라고 하는 정부의 말은 ‘네모난 세모’ 혹은 ‘좌파 신자유주의’하고 똑같은 말이라고 우 실장은 덧붙였다.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좌파가 돼요. 거기서 좌파는 강남 좌파일 것이라고 하니까 강남, 서초구의 민주노동당 동지들이 화내더군요. 강남 좌파를 뭘로보는 거냐고… (웃음)”
  
  의료는 비대상, 영리병원 허용은 대상(?)
  
  우리나라 의료제도가 취약한 편이지만 그나마 공공성을 지키는 것이 ‘모든 병원은 건강보험 환자를 받아야만 한다’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전 국민의 의료보험 강제가입제, △모든 법인 형태의 의료기관은 비영리 법인만 허용된다는 규정 등 세가지이다.
  
  우리나라 의료가 취약하지만 그나마 공공성을 가지는 것은 이것이라고 우 실장은 설명을 덧붙였다.
  
  유럽이나 싱가포르에서 전체의 80%이상이 공립병원인데 반해, 겨우 10%만이 공립병원인 우리나라에서는 이 셋 중에 하나만 건드려도 의료체계가 금방 무너질 것이라는 것이다. 의료비 폭등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나 재경부는 국내 병원들과 손잡고 이미 몇년째 영리병원 허용 작업을 추진중이다. 의료산업화론, 동북아허브론, BT연계론, 고용창출론, 성장동력론, 우수인력론 등이 재경부가 주장하는 논리.
  
  ”제일 황당한 주장은 이거예요. 7,80년대에 똑똑한 사람들이 주로 공대를 많이 갔잖아요. 그래서 우리나라가 공업화 되어서 잘먹고 산다. 90년대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다 의대를 가니까 이제 의료로 먹고 살아야한다는 거죠.”
  
  우리나라 의료를 발전시켜서 중국이나 일본 환자들을 끌어들이거나, 우리나라 고급 의료 수요자들의 수요를 만족시켜 고급 의료산업을 만들어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삼자는 것이다.
  
  아픈 사람이 치료받는 것은 개인이 사회에 요구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 인권의 문제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을 산업 논리로 보고 덤벼들고 있는 정부의 태도에 우 실장은 한숨만 나올 뿐이다.
  
  정부, ‘의료산업을 발전시켜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자(?)’
  
  ”한미 FTA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정부가 추진했던 공공서비스 시장화 정책,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빌려온 것일 뿐이예요. 한미FTA를 계기로 이들을 한꺼번에 추진하려는 한국 정부 및 한국 기업의 의도가 만들어낸 것이죠.”
  
  정부가 개방하지 않겠다는 ‘의료’는 아주 적은 범위에서의 의료만을 말하는 것일 뿐이다.
  
  김종훈 한미FTA 협상 수석대표는 “교육·의료제도는 대상이 아니고, 미국의 주된 관심사는 지적재산권, 농업, 금융”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적재산권, 농업, 금융에 모두 의료가 포함되어 있다고 우 실장은 지적했다.
  
  ”지적재산권의 핵심은 의약품 특허예요. 미국이 다른 나라와 맺은 모든 FTA에 의약품 특허가 포함되었죠. 의약품 부문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현재 두가지인데, 하나는 지금의 약값을 선진국 7개 수준으로 정하자는 것이고, 또 하나는 외국 약품의 특허 기간을 연장해달라는 것이죠.”
  
  외국 약값을 ‘선진국 7개 수준’으로 바꾸면 적어도 현재 국내 약값의 두배(유럽 기준) 혹은 세배(미국 기준)까지 올라가게 된다.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이론상의 수치’일 뿐이다.
  
  외국 약품의 특허 기간을 연장하자는 것은 국내에서 복제의약품을 원천적으로 생산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으로, 다국적 제약 기업이 마음만 먹으면 가격은 얼마든지 더 올라갈 수 있다.
  
  ”한국에서 복제의약품을 생산하려면, 원래의 자료 이상을 내놓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복제의약품 생산을 허용하겠다는 것이죠. 최초 생산 기업의 자료독점권을 인정해 줌으로써 사실상 복제의약품 생산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는 장치입니다.
  
  에버그리닝이라는 제도도 있는데, 신약에 한가지 성분만 첨가해도 또 신약이라는 것이죠.
  
  예컨대 ‘코자’라는 약에 성분을 첨가해 ‘코자 플러스’를 만들어 특허를 또 몇년 연장하는 식이에요. 영원히 특허를 늘릴 수 있는거죠.”
  
  복제의약품 생산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 미국의 의도. 이렇게 되면 국내 제약시장은 완전히 망한다고 봐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오리지날’ 약도 몇 종류는 있지만 시장 경쟁력이 있는 것은 그중 두 개 정도뿐이기 때문이다.
  
  ”교육·의료가 대상 아니라고? 지적재산권·농업·금융에 모두 의료가 포함돼”
  
  김 대사가 말하는 ‘금융’에는 민간보험이 포함돼있다. 우리나라의 민간의료보험은 현재 약 8조원으로 정부의 ‘국민 건강보험’이 24조인데 비해 상당히 큰 시장이다.
  
  ”민간보험이 너무 커지면 공적 건강보험을 위협합니다. 누구나 암보험을 다 들면 건강보험에서 암 보장을 위한 돈을 더 걷을 수가 없죠.”
  
  걷은 돈의 2.04배 정도를 돌려주는 건강보험에 비해 0.6배를 돌려주는 민간의료보험이 대세를 차지하면 의료의 공익성은 없어지고 만다.
  
  USTR의 ‘무역장벽보고서’ 핵심 의제중 하나가 방카슈랑스의 조기실시 및 민간보험의 완전자유화라는 점은 이와 관련해 예의 주시할 부분이다.
  
  농업 개방에서 국민 건강권을 치명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것은 WTO의 국제위생검역 협정인 SPS 협정이다.
  
  ”미국에서 검역이 끝난 농축식품은 한국에서 다시 검역할 수 없습니다. 미국에서 안전하다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안전하다고 해야 하죠.”
  
  예컨대 ‘TBT 기술무역협정’에 따르면 유전자조작 식품은 식품이 아니라 BT에 의한 상품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유전자조작식품’이라는 라벨링 딱지를 붙일 수 없다. 붙이면 무역장벽이 되기 때문이다.
  
  의료개혁과 국민 건강권을 위해 싸워왔던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FTA 하나로 모두 물거품이 될수도 있는 상황이다. FTA가 되면 의료개혁이 물건너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의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한미FTA를 저지해야 한다”
  
  한미FTA를 반대하거나 우려하는 사람들이 예외없이 지적하는 ‘치명적 문제점’ 한가지. 우 실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기업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할 수 있다는 부분, 이것이 문제예요. NAFTA의 사례만 봐도 기업의 정당한 이윤추구 행위를 방해하는 모든 것을 기업몰수 행위로 규정, 정부를 대상으로 소송을 걸 수 있도록 했어요.”
  
  캐나다 온타리오 주는 공적 자동차보험을 도입하려고 했다가 기존 민간 보험회사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한다고 나오는 바람에 이를 철회해야만 했다.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서라면 정부 정책까지도 바꿔버릴 수 있는 것이다.
  
  ”FTA는 크게 보면 기업의 투자 이익을 방해하는 모든 공공제도를 철폐하자는 것과 같은 거예요. 의약품이건 민간보험이건 기업에 대한 정부 제소건, 심지어 영리병원까지 포함해서 모든 공공제도가 FTA에 의해 축소·파괴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죠. FTA를 맺는 모든 정부들은 하나같이 교육이나 환경이나 의료 등등은 모두 예외라고 주장했어요. 그러나 거꾸로 역시 예외없이 캐나다, 멕시코 모두가 공공제도를 쳐냈습니다.”
  
  의료가 협상대상이 아니라는 말은 너무나 명확한 거짓말이다. 저들의 말을 믿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에 그나마의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FTA를 저지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흔들림없는 생각이었다.

2006년05월15일 ⓒ민중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