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단독입수 “미국기업에 한국정부 제소권 보장”

[단독입수] “미국기업에 한국정부 제소권 보장”  
  [한미FTA 뜯어보기 35] 대국회 보고서 ‘목표 및 주요내용’

  2006-05-19 오전 10:22:16    

  

  
  <프레시안>은 정부가 지난 12일 국회에 ‘대외 비공개’ 표시를 달아 제출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목표 및 우리측 협정문 초안 주요 내용’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대국회 보고서)를 입수했다.
  
  <프레시안>은 그 내용을 검토한 결과 정부가 미국과 본협상을 개시하기 전에 국민들에게 알려야 할 사항들이 일부 들어 있는 반면, 보고서 전문을 공개한다 해도 협상전략 노출에 따른 국익 손실의 우려가 전혀 없다고 판단해 전문을 공개하기로 했다.
  
  이 보고서는 총 28쪽으로 △협정문 초안 작성 경과 △협상 목표 △협정문 초안 개요 △장(Chapter)별 주요 내용 등 총 4장으로 구성돼 있다. 정부가 15일 언론 등을 통해 일반에 공개한 ‘우리 측 협정문 초안 구성 및 요지’라는 제목의 보고서(대국민 보고서)는 바로 이 대국회 보고서 중에서 대체로 ‘협상 목표’만을 발췌, 요약한 것이다.
  
  수준 낮은 대국회 보고서…국회의원들은 열도 안 받나?
  
  <프레시안>이 정부에서 ‘대외 비공개’로 지정한 이 보고서를 그대로 공개하기로 한 것은 우선 그 안에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는’ 내용이나 ‘다른 나라에 우리나라의 협상전략을 노출할 만한’ 내용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국민 보고서에는 포함되지 않고 국회에만 공개된 내용이라고 해봐야 ‘협상문 초안 작성 경과’와 ‘장별 주요 내용 중 우리 측 초안 개요’뿐인데 초안 작성과 관련된 일정이 비밀이 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측 초안의 개요로 제시된 내용도 대부분의 다른 FTA 협정문에 흔히 삽입되는 통상적인 문구들이나 이미 정부가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우리 측 협상전략이라고 밝혀 왔던 내용들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2월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의회에 보낸 서신과 견줘보면 우리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이 보고서의 수준은 더욱 실망스럽다. 미국 정부의 한미 FTA 협상 목표 및 전략을 담고 있는 서신은 “농산물에 대한 수출보조금을 모두 제거하기 위한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서 미국이 추구하는 목표가 달성되도록 뒷받침할 한국과의 메커니즘을 마련한다’, ‘지적재산권이 침해될 경우 한국 법률에 형벌 규정을 두도록 한다’, ‘WTO의 정부조달협정(GPA)에서 한국이 약속한 내용보다 더 확대된 약속을 하도록 한다’는 등 구체적인 내용들도 담고 있다. (☞’미 무역대표가 의회에 보낸 서신’ 보기)
  
  미국 정부는 이 서신을 의회에 보낸 후 이 서신의 전문(全文)을 무역대표부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했다. 한국 정부가 ‘비밀을 지키라’며 국회의원들에게만 공개한 내용보다 더 구체적인 내용을 미국 정부는 의회에는 물론 일반에도 공개했다는 얘기다.
  
  그동안 정부는 한미 FTA와 관련된 문서들을 공개하라는 시민사회단체들의 요구에 대해 ‘협상과 관련된 문서는 원칙적으로 공개할 수 없으며, 필요할 경우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 관련 문서들을 공개해 검토받을 것’이라는 말로 대응해 왔다. 이번에도 정부는 “재정경제부, 농림부, 산업자원부 등 개별 부처별로 국회의 해당 상임위원회에 우리측 협정문 초안(의 관련 사안들)에 대해 보고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국회 보고서의 수준으로 보건대, 정부가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나온 문서들을 얼마나 ‘충실히’ 국회에 보고할지 의심스럽다. 또한 이렇게 낮은 수준의 보고서를 받아들고도 공식으로 이의를 제기하거나 초안의 전문(150여 쪽)을 국회에 제출하라고 요구한 국회의원은 아직까지 단 한 명도 없다.
  
  대국회 보고서에만 있는 내용들…공공정책과 법률의 독립성 사실상 포기
  
  다만, 대국회 보고서는 대국민 보고서에는 들어 있지 않은 내용을 몇 가지 포함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이들 내용도 공개해서 국익이 손상될 일은 전혀 없으며, 오히려 국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민들에게 미리 알리고 여론을 수렴해야 할 사안들인 것으로 판단된다.
  
  대국민 보고서에는 없고 대국회 보고서에만 들어 있는 내용 중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nvestor-state claims)’다. 대국회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측 협정문 초안의 ‘제8장 투자(Chapter 8 Investment)’에는 “투자국과 투자유치국 정부 사이에 투자 관련 분쟁이 발생할 경우 국내 사법절차 또는 국제중재를 이용한 적법 분쟁해결 절차를 보장”한다는 내용의 조항이 삽입돼 있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란 미국이 1994년 캐나다, 멕시코와 체결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처음으로 도입한 제도로, 미국 기업들이 FTA를 체결한 상대방 국가의 공공정책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동안 우리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제도가 캐나다, 멕시코의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환경, 보건, 노동 등의 분야에서 채택한 공공정책들을 어떻게 무력화시켜 왔는지를 지적하며, 한미 FTA 협정문에는 이 제도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 정부는 바로 이렇게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제도를 협정문 초안에 삽입하고도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다.
  
  또 정부는 ‘제12장 통신(Chapter12 Communication)’에 “통신규제기관의 행정조치 또는 중재 결정과 관련해 통신사업자에게 이의제기 등의 재심청구 기회를 보장”한다는 조항을 삽입했다. 이 역시 국가 기간산업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정책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조치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들 앞에 ‘기간통신사업자에 대한 외국인 지분제한 비율을 현행대로 유지해 나가겠다’고만 강조해 왔다.
  
  게다가 정부는 ‘제19장 투명성(Chapter 19 Transparency)’에서 “협정에 적용되는 사안에 관련된 국내 법률·규정·절차 등을 신속하게 공표하고 상대국 및 이해관계인에게 의견을 제시할 기회를 보장”한다는 내용의 조항을 삽입했다. 이는 미국 정부와 미국 기업들이 우리나라의 국내법에 간섭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이쯤 되면 정부가 한미 FTA의 우리 측 협정문 ‘초안’에서부터 국내 공공정책과 법률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는 여러가지 독소조항들을 삽입해 놓고도 국민들에게 이와 관련된 의견조차 구하지 않는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아래는 <프레시안>이 단독 입수한 ‘대국회 보고서’의 전문이다. 정부가 협정문 초안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정부의 주장대로 ‘FTA 협상을 우리나라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인지, 아니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국민들을 속이고 협상을 담당한 공무원들의 안위를 지키려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