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② 흔들리는 농업 —분노의 옥수수 | 자료(NAFTA이후)
옥수수로 만든 ‘국민식품’ 700%나 올라
유통·가공 국영화 폐지뒤 다국적사 장악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쪽의 가장 강력한 논리는 ‘소비자 후생의 극대화’다. 소비자들에게 가장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제공한다는 이야기다. 멕시코의 농업부문 개방 논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프타 이후 멕시코에서 나타난 현실은 정반대다.
옥수수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곡물이다. 생산비중이나 소비량이 가장 많다. ‘옥수수를 빚어서 사람을 만들었다’는 신화가 존재할 정도다. 옥수수를 으깨고 갈아서 만든 식품인 ‘토르티아’는 멕시코 사람들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먹는 음식이다.
그런데 토르티아의 값이 지난 11년 사이에 무려 698.4%나 올랐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기간 옥수수 도매가격 상승률은 197.5%로, 물가상승률(348.9%)보다 훨씬 낮다는 점이다. 옥수수 생산농가의 실질소득은 줄어든 셈이다. 나프타 이후 미국산 옥수수의 수입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수입 증가로 옥수수 원료값은 별로 오르지 않았는데도, 소비자들이 사먹는 토르티아 값은 왜 7배나 올랐을까? 원인은 옥수수 유통 및 가공단계의 변화에 있다. 나프타 이전에는 옥수수 유통·가공 산업은 ‘코나수포’라는 국영기업이 도맡아 했다. 생산자로부터 옥수수를 수매하는 가격(도매가격)은 정부 고시가격으로 고정돼 있었고, 코나수포는 기본적인 운영수입만을 유통마진으로 보장받았다. 이 때문에 토르티아와 같은 최종 가공식품의 소비자가격도 도매가격 변동폭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프타 이후 유통·가공단계의 국영체제가 해체되면서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운 민간기업들이 밀고 들어왔다. 카길이나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ADM), 노바티스, 아벤티스 등 다국적 곡물메이저나 대형 식품회사들, 민사와 빔보 등 멕시코 재벌 계열 식품회사들이 옥수수 유통시장을 장악해 과점체제를 구축했다. 옥수수 재배 농민들의 소득은 감소하고 소비자의 부담은 늘어나는 반면 이들 과점기업의 수익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멕시코시티/글·사진 박순빈 기자
농민사업체 토레스 조합장
“불공정 철폐없인 자구노력도 한계”
멕시코 농민들도 나프타 이후 시장개방의 파고를 극복하기 위해 나름대로 치열한 노력을 하고 있다. 멕시코의 대표적인 농민 영농사업체로 꼽히는 ‘시아코멕스’도 이런 노력의 하나로 태어났다. 이 영농조합은 1998년 농민 50여명이 돈을 모아 문을 연 뒤 현재는 전국 160여곳에 곡물저장·가공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이스마엘 플로레스 토레스 조합장은 “전국 농민회원 2만9천여명으로부터 옥수수, 콩, 수수, 밀 등을 수매해 가공·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사업내용을 소개했다. 그는 “주요 곡물 생산량의 90% 정도는 10여개 외국회사와 멕시코 재벌 계열사들이 수매하고 시아코멕스와 같은 농민조직의 수매 비중은 나머지 10%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대기업들은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수확 전에 입도선매를 해버린다. 빚에 찌든 농민들은 이들 대기업의 현금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헐값에 넘겨버린다.”
이스마엘 조합장은 멕시코 농업의 위기를 최근 5년 사이 옥수수 농사의 수지계산으로 설명했다. “비료와 방충농약, 씨앗값 등은 두 배 이상 올라 전체적으로 옥수수 생산원가는 45%나 뛰었는데도 수매가격은 19% 증가하는 데 그쳤다. 2003년부터 미국산 옥수수가 허용된 관세할당량보다 두 배나 많게 수입되고 있기 때문에 수급균형도 완전히 무너졌다. 수확기가 되면 옥수수 재배농가에서는 비료값도 건지지 못한다고 아우성이다.”
그는 “미국 정부의 통계치로도 미국 옥수수의 멕시코 수출가격은 10% 정도의 덤핑이 있다”며 “이런 것이 어떻게 자유무역이고 공정한 시장경제냐”고 반문했다. 이스마엘 조합장은 “농민단체들은 생산자와 소비자 직거래 활성화, 유통시설 확충, 품질 개량 등으로 최대한 자구노력을 해보겠지만 근본적으로 수입농산물에 대한 규제 없이는 멕시코 농업의 미래는 암울하다”고 말했다.
멕시코시티/글·사진 박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