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다국적 제약사 vs 시민단체 “약값싸고 ‘정면충돌’”

다국적 제약사 vs 시민단체 “약값싸고 ‘정면충돌’”

[동아일보 2006-06-16 04:35]    

신약의 가격 결정 방식을 둘러싸고 다국적 제약사와 국내 보건의료단체의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들의 모임인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는 15일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의약품 포지티브 시스템으로 인해 환자가 가장 피해를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날 건강세상네트워크 등으로 구성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같은 장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윤보다는 생명이 우선이므로 약값을 더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지티브 시스템 도입이 발단=보건복지부는 지난달 3일 ‘건강보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이르면 9월부터 의약품 포지티브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신약의 경제성 등을 평가해 가격 대비 효과가 우수한 약에만 보험 혜택을 주는 것. 지금까지는 치료 목적의 의약품일 경우 시판 허가를 받으면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대부분 건강보험 대상에 포함됐다. 이를 네거티브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이에 따라 1월 기준으로 전체 2만8374개 품목 중 보험 적용을 받는 약품은 2만1740개로 77%에 이른다.

그러나 포지티브 시스템이 도입되면 가격 대비 효과가 떨어진다고 판단되는 약은 더는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신약의 가격 대비 효과를 따지는 경제성 평가를 실시하고 보험 적용 여부와 가격 상한선을 해당 제약사와 협상하게 된다.

▽약제비 비중 지나치게 커=다국적 제약사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포지티브 시스템을 강행하는 이유는 건강보험 재정에서 약제비 비중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에서 약제비로 나간 돈은 2001년 4조1804억 원에서 2005년 7조2289억 원으로 무려 73%나 증가했다.

정부는 약제비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을 신약 등 고가 약 처방이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대부분 약이 보험 혜택을 받기 때문에 효과가 비슷한 복제약(카피약)보다 고가인 오리지널 신약을 많이 처방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복지부는 신약의 가격 결정권은 제약사가 아닌 정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약 공급중단 사태는 없을 듯=제약사는 물론 미국 정부도 한국 정부의 방침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도 미국은 “신약을 수출하는 미국 제약업계에 타격을 주는 방안”이라며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복지부 보험급여기획팀 박인석 팀장은 “다국적 제약사들이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려는 것”이라며 약제비 증가는 건강보험 재정 부담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상승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양쪽이 치열하게 갈등을 빚어도 국내에 신약 공급이 차단되는 최악의 사태는 빚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KRPIA 박선미 홍보부장은 “약을 공급하지 않는다는 것은 제약사의 사명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