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쇠고기 수출업체들, 한국 요구조건 거부”
’광우병 위험물질’ 포함될 가능성 상존…그래도 수입?
2006-07-10 오전 11:42:57
미국이 우리 정부가 제시한 쇠고기 수출 작업장의 위생 기준을 준수하지 않기로 사실상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예상된다. 이런 상태에서 쇠고기가 수입될 경우 광우병 위험이 높은 뼈 조각이 포함돼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미국 쇠고기 수출업체, 한국 측 주장 수용 안 해”
미국의 주요한 경제 통신인 <다우존스 뉴스와이어>는 지난 5일 “한국이 미국과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쇠고기에 뼈가 포함됐을 때의 해결 방안과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고 보도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이 통신은 미국 농무성의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은 쇠고기 수출 작업장에서 소를 도축하고 생산하는 과정에서 (광우병 감염 위험이 높은 소와 특정 위험 물질에 닿은) 절단 톱과 같은 기구들이 한국으로 수출되는 쇠고기에는 사용되지 않기를 요구하는 한국 측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통신은 이어 “미국의 (타이슨푸드, 카길 등) 쇠고기 수출업체 관계자들은 쇠고기에 작은 뼈 조각조차 전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이것은 광우병 감염 위험이 높은 등뼈 등 ‘특정 위험 물질(SRM)’이 살코기에 섞여 수입될 가능성이 있음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이와 관련 이들 쇠고기 수출업체들이 “한국으로부터 쇠고기 수출이 언제든지 중단될 수 있기 때문에 뼈 조각 포함 수준이 미리 결정되지 않는 한 한국과의 쇠고기 무역 재개는 용납할 수 없다”며 우리 정부에 대한 강한 압박을 미국 정부에 주문한 사실도 이 통신은 보도했다.
살코기에 광우병 위험물질 섞여 들어올 가능성 높아
그 동안 우리 정부는 “미국에서 쇠고기가 수입될 때 광우병 감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30개월 이하 소의 살코기만 수입되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미국 쇠고기 수출업체의 입장은 이런 우리 정부의 주장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만약 절단 톱과 같은 기구들이 소 도축, 쇠고기 생산 과정에서 분리돼 사용되지 않는다면 살코기에 광우병 감염 가능성이 높은 등뼈를 포함한 뼈 조각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정부 주장대로 살코기만 수입하더라도 국내 소비자들은 광우병이 초래할 ‘인간광우병(vCJD,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 위험에 그대로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광우병은 아주 미량이라도 감염될 수 있어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실제로 광우병에 걸린 소의 뇌 조직 1㎎을 먹인 소 열다섯 마리 중 한 마리에서 광우병이 발병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지난 1월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자마자 미국산 쇠고기에 등뼈가 포함된 사실이 확인돼 다시 쇠고기 수입이 전면적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농림부 30곳 합격? 진짜 ‘합격’한 것 맞아?
사정이 이런 데도 불구하고 농림부를 비롯한 우리 정부는 쇠고기 수입 재개를 밀어붙이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 4일 이명수 농림부 차관은 KBS1라디오 <안녕하십니까 이몽룡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5월에 현지 점검을 실시한 결과 대체적으로 괜찮은 것 같고 다만 작업장 몇 곳에서만 문제점이 발견돼 개선을 요구했다”며 “최근 개선 조치 내역을 통보해 왔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보완을 요청한 후 모든 작업장이 완벽하다고 판단할 때 일괄 승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농림부의 입장은 <다우존스 뉴스와이어>가 전한 미국의 거대 쇠고기 수출업체의 입장을 염두에 두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간 농림부는 지난 5월 불과 2주에 걸쳐 8명이 37곳의 쇠고기 수출 작업장에 대한 현지 조사를 실시해 “30곳은 합격”이라는 판정을 내렸었다.
그러나 ‘합격’ 판정을 받은 30곳조차 절단 톱과 같은 기구들을 제대로 분리해서 썼는지 확인할 도리가 없는 게 현실이다. 이와 관련해 농림부는 2주간의 현지 점검 결과에 대해 “협상이 진행 중인 데에다 기술적인 내용이라서 공개해도 (일반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농림부 관료-현장 전문가 사이의 대립
한편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농림부 내 행정직 고위 관료들과 농림부 산하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기술·연구직 공무원들 사이에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과 수입 재개를 둘러싸고 이견이 존재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9월에도 국립수의과학검역원장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여부를 논의하는 농림부 가축방역협의회 석상에서 “1%의 병원체 유입 가능성이 있다 해도 심각한 문제이므로 광우병 발생국에 대해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반대했으나 농림부 차관, 축산국장, 가축방역과장 등 농림부 관계자들은 이런 전문가 의견을 묵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는 서울대 수의대 박봉균 교수도 농림부 관료들의 입장을 거들며 “비행기를 타면 한 번은 떨어질 수도 있지만 그 작은 위험을 감수하고 타고 다닌다”며 “작은 위험이 있다 해서 전체 이익을 버릴 수 없다”고 쇠고기 수입 재개의 중요성을 강변하기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수의축산신문> 2005년 9월 30일자 보도 참고).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편집장은 “그간의 정황을 염두에 두면 미국 정부와 쇠고기 수출업체의 압력 때문에 농림부 고위 관료들이 광우병의 위험을 경고하는 현장 전문가의 의견이 묵살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문제에 대한 감시의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했다.
강양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