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2차협상 깨버린 건 ‘큰 떡’ 노림수?
“의약품 선별등재 양보하는 척,특허기간 연장 의도”
2004년 오스트레일리아 때 비슷한 전략 쓴 적 있어
지난 14일 끝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2차 협상에서 미국이 의약품 선별 등재(포지티브 리스트) 철회를 요구하며 협상장 중도퇴장이라는 초강수를 동원한 속셈은 무엇일까? 일부에서는 미국-오스트레일리아 간 자유무역협장의 전례를 들어 미국이 결국은 의약품 선별 등재 문제를 양보하는 대신 신약에 대한 특허기간 연장, 제약업체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있는 독립적 이의기구 설치 등 더 큰 실리를 챙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행동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아 주목된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와 건강세상네트워크 등 13개 시민·사회단체는 “미국 정부의 협상장 퇴장은 결국 포지티브 리스트에 대해 양보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약값 정책에 미국 제약사가 개입할 수 있는 절차를 얻고 의약품의 특허기간을 연장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한국이 9월부터 도입하려는 선별 등재는 약값이 효능에 견줘 비싼데도 내리지 않을 경우 그 약을 건강보험 적용에서 뺄 수 있는 제도다. 미국은 이 제도가 자국의 제약회사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우석균 보건의료연합 정책실장은 “다국적 제약사들은 협상력이 있어 제도가 바뀌어도 제네릭(복사약) 업체보다 피해가 크지 않다”면서 “선별 등재를 받아들여 값이 좀 떨어진다 해도 특허권을 몇년 연장 받으면 추가 독점의 혜택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또 독립적 이의제기 기구와 신약의 범위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줄곧 “보험 등재 등과 관련해 독립적인 이의제기 기구를 설립해야 하며, 다국적 제약사도 참여해서 그런 기구를 설립하고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미국은 이미 2004년 오스트레일리아와 협정을 맺을 때 비슷한 전략을 쓴 바 있다. 선별 등재를 용인했지만 약값 결정 위원회에 미국 제약업체를 포함시키는 등 여러 양보를 얻어냈다. 한국협상단도 포지티브 리스트를 고수하는 댓가로 다른 것을 양보할 수 있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해 눈길을 끌고 있다. 김종훈 수석대표는 14일 2차협상 결산브리핑에서 “선별 등재는 확고하지만 약값과 효능을 평가하는 방법은 미국과 협상으로 풀 수 있다”고 밝혔다. 그 전날에는 “신약의 연구개발 비용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선별등재를 판단할 때 미국 제약사의 참가를 허용하고, 미국 제약업체의 특허권 보호장치를 강화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정부가 포지티브 리스트 고수에 성공하더라도 제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다. ‘투자자-정부간 제소절차’가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특허권을 비롯한 지적재산권도 투자로 간주하고 있다. 남희섭 변리사(정보공유연대 대표)는 “미국 정부가 한국의 선별 등재를 허용한다 해도 이 점을 협정문에 명시하지 않는 한 미국 투자자의 제소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포지티브 리스트 허용을 협정문에 명시한다고 해도 미국이 요구하는 ‘비위반 제소’가 또 다른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이 조항은 우리정부의 조처가 협정 위반이 아니어도 미국 투자자의 이익이 침해되면 제소할 수 있는 제도이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부)는 “3차 협상 즈음에 양국간 정상회담이 있는데 미국은 그 자리에서 북한과 관련한 한국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선별 등재 취소를 요구하거나 다른 요구사항들을 챙길 수 있다”면서 “미국으로서는 의약품 선별 등재 문제를 물구늘어지는 것은 손해나지 않는 ‘꽃놀이패’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