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상원 서한 뒤엔 타이슨푸드와 카길이 있다”
[기고] 국민 상대로 ‘소드방 놀이’ 하는 건 아닌가?
2006-08-09 오전 9:56:54
작가 현기영은 소설 〈소드방 놀이〉에서 사또의 사주를 받아 사창미를 축낸 기민창 색리 윤관형이 부형(釜刑)을 받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소개했다. 흉년이 들어 굶어죽게 된 백성들에게 나누어 줄 쌀을 횡령한 아전에게 사또는 ‘소드방 놀이’라는 가벼운 벌만 받으면 된다고 약속한다. 소드방은 제주도 사투리로 솥뚜껑이란 말이다. 부형이란 끓는 가마솥에 죄인을 집어넣어 쪄 죽이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궁이에 불을 때는 척 하면 죄인은 죽는 시늉을 해 보이거나, 더 간소하게는 솥뚜껑 하나 달랑 갖다 놓고 거기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으로 끝나기도 했다. 이렇게 가벼운 처벌을 받은 아전들은 가산을 정리해서 다른 지역으로 떠나버리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갑자기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둘러싸고 노무현 대통령과 미국 상원의원들이 소드방 놀이를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국민 기만하는 정부…’안전’ 때문에 쇠고기 수입재개 유보한다고?
지난 4일 색스비 챔블리 공화당 의원(상원 농업위원회 위원장)과 톰 하킨 의원(상원 농업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 대표) 등 미국 상원의원 31명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즉각 재개하지 않을 경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자체가 무산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런 소동이 벌어지기까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지난 5월 한국정부가 미국 현지 쇠고기 수출작업장에 대한 위생점검을 실시한 결과, 7곳의 작업장에서 △미국산 쇠고기와 타국산(특히 광우병과 관련하여 수입이 중단된 캐나다산)의 쇠고기가 구분되지 않은 상태에서 처리되고 있거나 △30개월 이상과 이하의 소를 처리하는 데 동일한 작업도구를 사용하고 있는 점 등의 문제점을 발견했다.
한국정부로서는 당연하게 이러한 문제점의 개선을 미국 측에 요구했다. 그리고 국민들에게는 “최근 개선조치 내역을 통보해 왔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보완을 요청한 후 모든 작업장이 완벽하다고 판단할 때 일괄 승인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작 실제 진행된 일은 정부 발표와 달랐다.
7월 5일 미국의 경제통신사 <다우존스 뉴스와이어>는 “미국 농무부는 한국으로 쇠고기를 수출하는 소의 도축 및 쇠고기 생산 과정에서 절단 톱과 같은 기구들이 (광우병 오염이 있는 다른 소에 대해 사용되는 것과) 따로 사용되길 요구하는 한국 측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현지점검 때 문제점이 드러난 타이슨푸드나 카길과 같은 미국의 대규모 쇠고기 수출업체 관계자들도 “작은 뼈조각조차도 전혀 포함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해, ‘살코기만을 수입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한국정부를 당혹스럽게 했다.
이 통신사는 또 “한국은 6월에 미국 쇠고기 수출작업장들 중 7곳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서만 수입을 재개할 수 있다고 밝혔으나, 미 농무부는 그런 식의 부분적인 수입재개는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이러한 사실을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공개하지 않았다.
정황만 놓고 보면, 메이저 축산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국정부의 압력에 의해 부분적인 수입재개가 연기되었다는 의심을 하기에 충분하다. 한국시장에서 선점효과가 없어질 것을 우려한 타이슨푸드, 카길 등 메이저 축산기업들이 자신들의 쇠고기 수출작업장이 승인될 때까지 미국정부를 통해 한국에 쇠고기 수입재개 연기를 요청한 게 진실인 것 같다.
미 상원 경고서한의 배후엔 타이슨푸드, 카길이 있다
타이슨푸드, 카길 등 메이저 축산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다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식량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이들 기업은 거액의 정치자금으로 의원들을 매수하고 있으며, 전직관료 등을 로비스트로 고용해 미국정부의 정책까지 결정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들 메이저 축산기업은 제3세계 독재정권과 결탁해 검은 정치자금을 반대급부로 제공하면서 부당한 폭리를 취했다는 구체적 의혹도 제기된 바 있다. 1976년 박정희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히고 미국 정가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박동선 스캔들’의 배후에도 카길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 3일 일본의 <후지산케이 비즈니스아이>는 “조류 인플루엔자와 광우병(BSE)의 영향으로 미국 최대 쇠고기 수출업체 타이슨푸드의 2006년도(05년10월∼06년 9월) 실적이 12년 만에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됐다”고 보도했다. 타이슨푸드의 4~6월 매출은 전년도의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4.8%나 감소한 63억8000만 달러(약 6조 원)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푸어스는 타이슨푸드의 등급을 최저 투자등급인 BBB-로 하향조정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이번에 미국 상원의원 31명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강요하는 서한을 보낸 배후에도 타이슨푸드, 카길 등 미국의 메이저 축산기업들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이미 미국 상원의원 32명은 지난 5월 24일에도 “뼈 없는 쇠고기뿐 아니라 뼈 있는 쇠고기와 내장 부위까지 수입하지 않으면 한미 FTA의 의회 통과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서한을 이태식 주미 한국대사에게 보낸 전력이 있다.
최근 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 결과도 이러한 의혹을 뒷받침해준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수입 쇠고기에 부과되는 40%의 관세가 철폐되면 쇠고기 수입가격은 28.6% 하락하고, 한우 값도 평균 8.7% 떨어진다. 이에 따라 연간 한우 생산은 1960억∼5300억 원 가량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리가 입게 되는 손해는 고스란히 타이슨푸드, 카길의 이익이 될 것이 자명하다.
국민생명 팔아 얻는 경제적 이익?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와 관련하여 이러한 경제적인 영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전혀 안전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미국의 사료 관련 정책, 광우병 위험 부위(특정위험물질ㆍSRM) 제거 수준, 광우병 검사 등 검역조치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
그런데도 마이크 요한스 미국 농무부 장관은 오는 8월 말부터 광우병 검사를 현재보다 10분의 1 수준으로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미국정부의 방침은 미국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미국 소비자연맹과 퍼블릭 시티즌(Public Citizen) 등 미국 내 시민단체들은 그동안 “미국에서 광우병 검사는 미국 내 연간 도축 소 3500만 마리 중 단 1%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며, 쇠고기 수출업체에서 광우병에 대한 검사는 오직 육안으로만 이루어지는데 그것도 87%의 소가 이미 죽은 상태로 들어오기 때문에 미국의 광우병 검역조치는 거의 무용지물”이라고 비판해 왔다.
이러한 비판은 미국정부의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해 8월 18일자로 나온 미국 농무부 감사관 (USDA OIG) 보고서는 “(광우병 양성 가능성이 높은) 중추신경계의 이상을 보이는 소 680마리 중에서 162마리만 광우병 검사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올해 2월 1일자 미국 농무부 감사관(USDA OIG) 보고서는 “도축장에서 광우병 감염 위험이 있는 부위의 제거 관리가 부적절하고, 광우병 검사방법이 육안으로만 이루어지고 있다”며 “육안 검사도 불과 5~10%의 추출검사만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노무현 정부는 확실하지도 않은 경제적 이익을 내세우며 한미 FTA를 위해서 광우병 위험이 높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강행하려고 한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팔아 얻는 경제적 이익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미국 상원의원 31명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이 사또와 아전의 소드방 놀이와 같은 이상한 약속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가벼운 벌만 받으면 된다는 사또의 말을 철석 같이 믿고 사또의 죄를 모두 뒤집어 쓴 아전 윤관형의 운명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귀띔해 드린다. 윤관형은 결국 성난 백성들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노 대통령이나 농림부의 관료들은 꼭 새겨 들어야 할 대목이다.
박상표/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