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한미FTA 거짓말 좀 그만 하시오
미국 측 협상문 비공개 주장, 또 거짓말로 밝혀져
라은영 기자 hallola@jinbo.net / 2006년08월11일 11시50분
노무현 대통령은 ‘선진국 수준의 정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맞불로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는 미국이 한미FTA 협상을 앞두고 이해단체까지 협정문 초안을 공개한 사례와 자료를 제시했다.
이날 범국본이 제시한 자료에 근거하면, 그간 정부가 주장한 ‘미국 역시 협상문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주장 또한 거짓임이 드러났다. 한미FTA를 두고 정부의 거짓말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두고 볼 따름이다.
엄격한 통상법 조항, 3개 층위로 구성된 민간자문위원회
11일 범국본은 한미FTA 1차 본 협상을 앞두고 미국 통상정책과 민간 자문위원회에 제출된 의견서를 들고 나왔다.
한미FTA 본 협상을 앞두고 한미 양국은 5월 20일 협정문 초안을 교환했다. 11일 공개된 문서는 미국 내 수 백개 기업들의 연합체로 구성된 모 협회가 협정문 초안 교환 11일 전인 5월 9일에 ITAC 3에 제출한 의견서이다.
통상법이 구체적이고 엄격한 미국의 경우 헌법에서 대외통상에 관한 권한과 관세,조세를 부과할 권한을 의회에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 의회가 자신의 권한 행사를 위해 행정부에 배치한 조직이 바로 미무역대표부(USTR)이다.
이 USTR이 통상정책을 수립할 때 반드시 민간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내용 뿐만 아니라 미국 의회의 관심사항과 입장이 통상협상 과정에서 효과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민간 자문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통상법에 명문화 하고 있다.
2002년 통상법에 따르면, 민간자문위원회는 3개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 최상층은 대통령 직속의 통상정책 및 협상자문위원회(ACTPN; President’s Advisory Committee for Trade Policy and Negotiations)로, ACPTN 아래에는 IGPAC (Intergovernmental Policy Advisory Committee), APAC (Agricultural Policy Advisory Committee), LAC (Labor Advisory Committee), TEPAC (Trade and Environment Policy Advisory Committee) 등 4개의 정책자문위원회(PAC: Policy Advisory Committee)가 있다.
마지막 3번째 층위에는 22개의 기술별/부문별 자문위원회가 있다. 기술별/부문별 자문위원회는 산업과 농업 2개의 분야로 나누어 구성(ATAC: Agricultural Technical Advisory Committee, ITAC(Industry Trade Advisory Committee))되어 있고, 이 가운데, 지적재산권 문제에 관해 세부적이고 전문적인 조언을 하는 곳은 ITAC 15이며, 의약품 분야는 ITAC 3이 담당하고 있다.
문서내용을 밝히고 있는 남희섭 위원장의 모습
범국본이 제시한 문서는 3번째 층위에 존재하는 의약품 분야 ITAC3가 취합한 문서로 미국내 모 협회가 제출한 의견서 이다.
구체 문구, 수정 항목 까지 나열한 의견서
이 문서는 의견서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주요내용은 “의약품 허가를 위해 제출한 자료의 독점권(5-year Market Exclusivity, 3-year Market Exclusivity), 특허기간 연장, 의약품 허가 과정의 특허 연계 등”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이 문서가 막연하게 한미FTA에 어떤 사항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수준을 넘어 구체적으로 미국 측이 만든 한미FTA 협정문 초안에 특정 조항의 문구 수정까지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범국본은 “의견서에는 미국-한국 FTA 협정문에 대한 몇 가지 수정을 제안한다 (recommends several modifications to the text of the U.S.-Korea FTA)”고 하면서, 지적재산권 장 제9조의 “동일 또는 유사 품목(same or similar products)”에서 “유사 품목”이란 표현은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제8조의 (7)(a)-(b)항은 특허기간 연장을 최대 5년으로 제한해야 한다(“Article 8, subsection (7)(a)-(b) limit patent extensions to no more than 5 years)고 제안하고 있다“며 구체적으로 예를 들었다.
범국본이 예를 든 문서 조항.
남희섭 한미FTA저지 지적재산권분야 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이는 본 공개 문서를 작성한 협회가 미국 측이 준비한 한미FTA 협정문 초안 전체를 보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나아가 “이 문서를 제출한 협회는 ITAC 3 위원회의 정식 회원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미국의 3개 층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에 포함된 위원만도 약 7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들 위원 중에는 회원사가 수천 개에 달하는 협회 소속 위원들이 포함되어 있고, 학계와 공익단체 역시 포함되어 있다. 이와 같은 문서가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많은 사람들이 협상문 초안을 공유했고, 논의 협의 했으며, 미국 정부의 ‘협상문 공개’가 있었던 것이다.
범국본은 “이 문서가 한국 정부와 협상단이 그 동안 협상문 공개를 기피하면서, 그 근거로 제시했던 해외 사례 및 미국의 상황 등에 대한 주장이 명백한 거짓이었음을 확인시켜주는 구체적인 증거”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또한 “한미FTA와 관련하여 한국 정부와 협상단이 국민, 국회, 언론 등을 우롱하며 거짓말과 정치적 선전만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공개적으로 확인된 셈”이라며 정부에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