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의약품 선별등재 방식 수용뜻 13개항 질의성 요구
[한겨레 2006-08-13 22:24]
[한겨레] 명분 주고 실리 챙기기?
모든 협상은 받는 것이 것이 있으면, 주는 것이 있는 법.
때문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의약품 선별등재방식(포지티브리스트 시스템)을 미국이 수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제 우리나라가 어떤 것을 내어줄까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또 그 내어주는 것이 혹시 포지티브 방식보다 더 큰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미국과 우리나라와의 FTA 의약품 분야에서 미국이 요구해 온 것과 미국과 다른 나라와의 FTA에서 쟁점이 됐던 사항들을 통해 앞으로 협상에서 미국의 요구와 이의 이해관계를 미리 살펴보도록 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1일 한미 FTA협상 중 의약품 분야에서 난항을 겪었던 ‘포지티브 방식’에 대해 미국이 수용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포지티브 방식은 지난 5월 유시민 복지부 장관이 발표한 ‘건강보험 약제비 적정화 방안’에 포함된 내용으로, 약값에 비해 효과가 상대적으로 좋은 약만을 골라 보험약으로 인정한다는 제도다. 미국은 FTA 협상 과정에서 이 제도가 미국 제약회사들의 신약만을 보험약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있어 제약회사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으므로 반대했다. 그러나 이는 이미 미국을 포함 유럽 대다수의 나라에서 채택해 운영하고 있는 것이어서 미국이 이를 반대하는 데에는 다른 뜻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포지티브 방식, 미국도 채택한 제도…미국 반대엔 “다른 목적 있어서?”
아무튼 지난 6월 우리나라에서 열린 한미 FTA 2차 협상에서는 가장 난항을 겪은 분야가 의약품 문제였으며 특히 포지티브 방식이었다. 심지어 의료 분야 협상이 중단되기도 했으며, 이 때문에 2차 협상 전체가 파행으로 가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그러던 미국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이를 수용하고, 이의 구체적인 절차 등의 문제를 미국도 우리나라도 아닌 제3국에서 협상하기로 했다. 때문에 미국의 태도 변화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이 분야 시민단체,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우리 정부가 포지티브 방식을 미국이 합의했다고 좋아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실상 더 중요한 쟁점은 이미 또는 앞으로 다 내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동안 미국은 다국적 제약사들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10여가지 요구를 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련 전문가들은 이를 내어주면 국내에서 다국적 제약사들의 이익은 더 커질 것이며, 환자들은 지금보다 약값 대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미국의 10여가지 요구 가운데 다른 나라에서 요구해 이미 알려진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이런 지적이 기우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호주 등과 FTA를 맺으면서나 미국이 우리나라에 요구한 내용을 보면 의약품 특허와 허가의 연계, 임상 시험 자료독점권의 인정, 특허 기간의 합리적 인정, 독립적인 이의신청 기구 설립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의약품 특허와 허가 연계는 제네릭 의약품 생산 연기 목적
먼저 의약품 특허와 허가의 연계 문제는 국내 제약사들이 만드는 제너릭 의약품의 생산을 최대한 뒤로 늦출 수 있는 제도로 특허를 가진 미국 등의 다국적 제약사에게 매우 유리한 제도다. 이는 특허를 받은 의약품이 특허 기간이 끝나 다른 회사에서 제너릭 약품을 만드는 경우, 특허권을 가진 제약사에서 제너릭 약품이 특허를 침해했는지 검토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제도를 통해 특허를 가진 제약사가 소송을 하는 경우 30개월 정도는 제너릭 판매를 미룰 수 있다고 한다. 약 3년 동안 제너릭 약품이 나오지 않아 환자들은 비싼 돈을 들여 신약만을 먹을 수 밖에 없게 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3년이면 별로 긴 기간이 아닌 것 같지만 기간에 따른 의약품의 판매 경향을 보면 보통 한 신약은 출시된 지 6~7년 동안 가장 많이 팔리고 이후 제너릭이 나오면서 그 판매량이 줄어든다”며 “3년 정도를 연장하는 것은 엄청난 이윤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상 시험 자료독점권의 경우, 이 역시 실현된다면 다국적 제약사가 개량신약과 경쟁하는 데 있어 크게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된다. 개량신약은 원래 신약의 기능이 나타나는 주요 성분은 같고, 부속 성분이 조금 다른 약을 말한다. 이 경우 임상시험 자료독점권이 풀리면, 해당 자료를 활용해 약이 암 등 부작용을 일으키는지 검사하는 동물실험 등을 생략할 수 있다. 그 기간만큼 개량신약이 빨리 나와 원래 신약과 경쟁하므로 약값을 낮출 수 있다. 하지만 이 자료독점권이 연장되거나 강화되면 그만큼 개량신약이 나올 수 있는 시기는 뒤로 미뤄지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다국적 제약사의 신약 독점 기간이 그만큼 길어지는 제도로, 이 역시 미국에 크게 유리한 쟁점 사항이다.
다국적 제약사의 독립적인 이의신청 기구는 현재 약이 허가되고, 약값이 결정되는 여러 절차에 다국적 제약사의 입김을 최대로 할 수 있는 기구의 설립을 뜻한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이 기구가 설립되면 지금보다 더한 다국적 제약사의 횡포에 시달릴 것”이라며 “구체적으로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약의 허가 과정,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약값 결정 과정, 건강보험공단의 약값 협상 등 모든 과정에 딴 지를 걸 수 있는 공식적인 기구가 될 것이다”이라고 지적했다. 우 국장은 또 “제 3국에서 협상을 진행하는 등 정부의 태도를 볼 때 이처럼 미국에게 유리한 요구가 앞으로의 협상에 관철될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가 정말로 국민들의 건강권이나 국내 제약산업을 생각한다면 FTA 협상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포지티브방식 다국적제약사에 불리한 제도 아니야
또 하나 결정적으로 포지티브 방식은 그 자체로 다국적 제약사에 결코 불리한 제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분야 여러 전문가들은 이 방식은 미국 등의 다국적 제약사는 그동안 축적된 경험이 있으며, 우리나라 정부가 처음이므로 오히려 불리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다국적 제약사와의 약값 협상을 준비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한 관계자는 “포지티브 방식에 있어 약값 결정의 잣대가 되는 경제성 평가라는 것은 그 자체로 약값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며 “오히려 이런 경험을 수년 이상 축적해 온 미국 등이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세계 굴지의 제약사인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등은 이미 고지혈증 치료제에 대해 국내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에게 용역을 줘, 이런 경제성 평가에 대한 자료를 만든 적이 있다. 또 최근 다국적 제약사는 이 분야 국내 전문가들을 속속 채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한 관계자는 “약품의 경제성 평가, 즉 비용에 비해 상대적으로 효과가 좋다는 것을 증명하는 분야의 여러 전문가들이 올해 들어 여러 제약사에 채용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창보 건강세상네트워크 사무국장은 “포지티브 방식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으며 매번 신약마다 협상에 따라 유리한 나라가 정해진다면, 미국이 요구하는 특허나 약값 협상 관련 내용은 그 자체로 미국에 유리한 제도”라며 “따라서 싱가포르에서 열릴 한미 FTA 의료 분야 협상부터가 본 게임이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창곤 김양중 기자 g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