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美 ‘건보 의약품 선별등재제도’ 전격 수용

美 ‘건보 의약품 선별등재제도’ 전격 수용

[경향신문 2006-08-11 18:42]    

  

우리 정부가 약값 절감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의약품 선별등재제도(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에 대해 미국이 기존 입장을 바꿔 전격 수용키로 했다.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은 가격 대비 효능이 우수한 의약품만 선별적으로 건강보험 적용을 한다는 제도로, 우리 정부의 약값 절감 방안의 핵심 과제다. 미국측은 ‘미국 제약사에 불리하다’며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2차 협상에서 중도에 협상을 결렬시키면서까지 이 제도 도입에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11일 “미국측이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의 도입을 수용하고 연내에 실시하는 것에 대해 동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9월 예정인 한·미 FTA 3차 협상 전에 이달 21~22일 싱가포르에서 양측이 만나 의약품과 의료기기 부분을 먼저 논의키로 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지난달 26일 미국측에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에 대한 이해와 동의를 구하는 공문을 보냈으며 최근 미국측으로부터 이같은 내용의 회신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측은 회신에서 3차 협상 전에 별도의 만남을 갖자는 의견을 내비쳤고, 이후 양측은 시기와 장소를 두고 조율해 왔다.

미국측이 돌연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을 수용하고 본협상 전에 별도로 만남까지 갖자고 먼저 제의한 배경에 대해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가 일관되게 제도 도입을 강하게 주장해 왔을 뿐 아니라 미국측이 제도 도입 자체를 반대하기보다는 세부시행 방안 논의에 참여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제도 도입에 미국측이 강하게 반대했다가 갑자기 수용한 점으로 미뤄 우리 정부가 미국측이 요구했던 ‘의약품 특허권 강화’나 ‘독립적인 약값 결정 이의기구 설치’ 등에 대해 상당 부분 양보를 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정부 내에서도 “미국이 포지티브 리스트 제도 도입에 반대한 것은 협상카드일 것”이란 지적도 많았다. 하지만 복지부 관계자는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을 전제로 미국측에 양보한 사안은 전혀 없다”고 부인했다.

첨예한 이견을 보이던 의약품 분야만 따로 사전협상을 갖게 됨에 따라 한·미 FTA 협상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복지부 관계자는 “전체 본협상을 무난하게 이끌기 위한 사전 협상으로 보면 된다”며 “양측의 관심사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은 “사실상 9월 한·미 FTA 3차 회의에서 협상을 끝내겠다는 의지를 양국이 보여준 것”이라면서 “사전 작업을 통해 가장 민감한 사안을 추려낸 뒤 9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빅딜(Big Deal)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황인찬기자 hic@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