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의약품 협상’ 미 파상공세 얼마나 막아낼까
[한겨레 2006-08-20 19:24]
[한겨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의약품 분야의 별도 협상이 21~22일 이틀간 싱가포르에서 치러진다. 한국과 미국은 이번 협상에서 그동안 첨예하게 맞섰던 쟁점 사항을 놓고 치열한 공방과 함께 절충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협상에서 미국은 어느 때보다 강력한 공세를 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특히 우리 쪽에 가격 대비 우수한 약만 보험약으로 등재하는‘선별등재방식’을 수용한 대가를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선별등재방식은 지난 7월 서울의 2차 협상이 파행으로 끝나게 된 주 요인으로, 미국은 우리 쪽에 이를 시행하는 것을 무기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가 최근 전격 철회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미국은 ‘혁신적 신약’의 값어치를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요구를 거세게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미국은 신약의 특허기간 연장을 내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보통 특허권 보호기간은 20년이지만 의약품은 특허출원 뒤 시판허가를 받을 때까지 3∼5년의 기간이 더 걸린다. 미국 쪽은 이번 협상에서 이 기간을 감안해 특허 존속기간을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할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은 또 자국의 제약사들이 한국에서 신약 허가를 신청할 때 당국에 제출한 임상자료에 대해 한국의 제약사들이 일정기간 이를 이용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배타적 자료독점권’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자료독점권이 강화되면 그만큼 국내 제약사들이 복제약을 개발할 수 있는 시기가 늦춰져 다국적 제약사의 신약 독점 기간이 늘어나게 된다. 미국은 또한 보험약값을 결정하는 모든 정책·입법과정에 의견서를 제출할 기회나 이를 위한 독립적인 이의신청 기구를 설치해 달라고 요구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맞서 우리 쪽은 1~2차 협상 때처럼 각 쟁점에 대해 일단 ‘수용곤란’이란 입장을 견지할 것으로 보이나 미국이 선별등재방식을 수용한 데다 정부 일각에서의 양보 압력도 만만찮아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보건의료 및 시민단체들은 이런 미국의 요구가 이뤄진다면 비록 우리 정부가 선별등재방식 등 약값 인하 방안을 시행한다고 해도 빈 껍데기가 될 뿐 되려 약값상승으로 환자들의 부담을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들 단체들은 나아가 싱가포르 협상 자체에 대해 깊은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감시의 눈초리가 덜한 제3국에서 미국 쪽에 어떤 ‘양보’를 할 가능성에 깊은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싱가포르 협상이 9월초에 있을 3차 협상을 앞두고 의약품만 놓고 별도로 열리는 데다, 선별등재방식 수용이란 미국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와 거의 동시에 일정이 잡혔기 때문이다.
참여연대는 성명을 내어 “미국이 아무런 조건 없이 선별등재방식을 받아들였다는 정부 발표를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며 “이면 합의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한약사회도 성명에서 “국민의 생명에 직결되는 의약품의 한-미 자유무역협정 별도 협상을 경계한다”며 “의약품은 단순한 교역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건강권을 고려한 협상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복지부 한-미 자유무역협정팀은 “국민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여 의약정책과 건강보험제도의 절차적 사항에 대해서는 가장 합리적인 선에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창곤 기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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