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3차 협상 쟁점분석 : 공공서비스. ‘‘공공 서비스가 무너진다.’

3차 협상 쟁점분석 : 공공서비스
‘공공 서비스가 무너진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시작되었을 때 국내 반대 진영에서 나온 가장 큰 우려 가운데 하나다. 협정의 취지나 지금까지 미국과 협정을 맺은 나라들의 사례로 볼 때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우려다. 하지만 김종훈 수석대표를 비롯한 우리 쪽 협상 당국자들은 “미국이 공기업 민영화를 요구한 바 없다”며 “공공 서비스와 관련한 우려는 지나친 측면이 있다”고 거듭 주장해왔다. 어느 쪽 주장이 맞을까?

미국, 공기업에 의무부과 요구=공공 서비스에 영향을 끼칠 협상은 서비스와 투자, 경쟁 분과에서 다뤄진다. 1, 2차 협상에서 양쪽이 합의한 기본 원칙은 상대국 서비스 사업자나 투자자를 차별없이 똑같이 대우(내국민대우)한다는 것이다. 공공부문에서 이런 원칙과 어긋나는 경제활동이 벌어지면 협정 위반이 된다. 공공부문과 관련해, 실제로 미국 쪽은 특정 사업이나 기업의 시장진입 허용 또는 민영화를 요구하진 않았다. 대신 포괄적 의무조항을 만들자고 요구해 쟁점이 되고 있다. 미국은 정부가 일정 지분을 소유하며 경영을 통제하는 모든 공기업에는 ‘정부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할 때 협정의 제반 의무를 이행’하고, ‘상대국 투자자 및 상품·서비스 제공자에게 비차별적 대우를 한다’는 조항을 들고 나왔다. 또 독점이면서 공기업인 경우에는 ‘판매·구매 등 영업활동은 상업적 고려에 따라 수행’, ‘독점적 지위 남용 금지’라는 두가지 의무조항을 추가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이런 독점·공기업에 대한 의무조항이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도입한 표준 문안이다. 양국 간 서비스 및 투자가 개방된다 하더라도 정부가 독점·공기업을 통해 경쟁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 쪽은 지금까지 뚜렷한 자세를 세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공기업의 범위나 의무조항의 정의가 모호하고, 공공정책의 수행을 제한할 우려를 제기한 정도다. 진동수 재정경제부 2차관은 5일 한국방송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대담에서 “미국도 공공 서비스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공기업이) 독점적 지위를 남용하는 부분이 있느냐에 대해서는 더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성 훼손 없다?=미국은 이번 3차 협상에서 독점·공기업의 정의 및 의무범위 확정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이런 요구는 국내 공기업에 공공성을 버리라는 주문이나 다름없다. 공기업은, 말 그대로 정부를 대신해 공익을 목적으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공기업에 대한 독점이 허용되는 것도 ‘공공성’을 위해서다.

특히 전기, 가스, 상하수도, 철도 등 네트워크형 공공서비스는 국민들에게 기본적인 접근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만약 미국 쪽 요구대로 ‘상업적 고려에 따른 영업활동’이 의무화된다면, 저소득 계층이나 오지에 사는 국민들에게는 서비스 접근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3차 협상에서는 공기업 민영화도 거론될 것으로 예상된다. 협상단 관계자는 “공기업을 크게 ‘정부로부터 특혜를 받는 곳’과 ‘시장에서 경쟁을 하는 곳’으로 나눴을 때 특혜를 받고 있는 공기업들의 처리 문제는 어느 분과에서나 논의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특정 공기업의 민영화를 요구하지 않더라도 ‘독점 해소’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사실상 민영화를 재촉할 가능성도 있다. 국내 공기업의 사업을 미국 민간기업이 하고 있다면 ‘내국민 대우의 원칙’에 따라 독점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시장논리가 공공성을 압도하게 된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시애틀/안선희 기자 s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