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문선별등재방식을 무력화시키고 약가를 폭등시킬 한미 FTA 의약품 협상은 중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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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회견문

선별등재방식을 무력화시키고 약가를 폭등시킬
한미 FTA 의약품 협상은 중단되어야 한다

  미 협상대표 웬디 커틀러는 5일 오후 사전브리핑을 통해 의약품 분야 협상에 대해 “양국 협상단이 협상을 계속하기 위한 ‘원칙’에 합의했다는 뜻이며 여기서 원칙이란 기브 앤 테이크의 원칙”이라며 “우리가 한국 측의 포지티브 리스트를 인정해 주고 그 반대급부로 한국 측이 포지티브 리스트의 세부사항에 대해 협상하기로 한 것”이라는 내용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미국측은 그 “세부사항”에 대한 협상내용을 지난 싱가포르 의약품 별도협상에서 통보하였다. 우리는 한미 정부가 말하는 세부협상이라는 것이 사실상 포지티브리스트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며 또한 이번협상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하게 될 특허권 강화문제는 약가를 폭등시킬 것이라는 점을 밝힌다.

  첫째 미국이 포지티브 리스트를 수용하였다는 것 자체가 거짓말이다. 한국정부는 미국이 포지티브 제도를 수용하여서 의약품 분야 협상의 가장 큰 사안을 해결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싱가포르에서 열린 의약품 별도협상에서 미국이 요구한 16개 사안을 살펴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미국이 포지티브리스트를 수용할 생각이 없다는 것은 16개 사안에 과거 네거티브 리스트를 운영하고 있던 시절에도 미국이 요구 하던 사안이 똑같이 포함되어 있으며 포지티브리스트 자체를 정면으로 문제삼은 1, 2차 협상에서의 핵심요구인 “신약차별금지와 신약의 접근성 강화 사안”이 변함없이 포함되어 있는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우리는 한미 정부에게 미국이 포지티브리스트를 수용하였다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묻고 싶다. 미국이 요구한 것으로 밝혀진 사안에는 “기등재 품목보호”라는 선별등재방식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요구를 포함하고 있다. 또한 16개 요구사안은 약가에 물가를 반영하여 재조정하는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요구까지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포지티브리스트 수용은 말 뿐이며 미국이 노리는 바는 이를 명분으로 자국 의약품의 독점적인 지위를 계속 누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주장해왔다. 상황이 이러한대도 한국정부는 남의 나라 제도에 “감놔라 배놔라 할 수 없다”던 주무장관이 말을 바꾸어 “양보는 있을 수 있지만 공개는 하겠다”고 말하며 마치 중요사안은 이미 해결이 된 것처럼 말하고 있다. 미국의 포지티브제도 수용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며 미국의 요구가 몇 개라도 반영된다면 약제비 적정화방안은 무늬만 남게 되고 무력화될 것이다.

  둘째 미국이 요구한 16가지 사안의 수용은 약값을 폭등시킬 것이다. 미국은 가장 우선적으로  ”혁신적 신약 및 복제의약품, 의료기술상품 개발촉진 및 지속적인 접근성 강화 원칙“과 ”혁신적 신약 또는 복제약 여부 및 제약사의 국적에 관계없이, 약가 산정 및 급여 결정과정에서의 비차별”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주장은 미국신약의 혁신적 가치를 인정하여 그 가격을 선진국 7개평균약가(선진 7개국)로 인정해줄 것과 지적재산권 보호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식약청이 2002년 승인한 신약 87개 중 70개의 약제는 과거의 약을 부분적으로 바꾼 이른바 유사약제(“me too” drug)였다. 또 나머지 17개 약제중 과거의 약보다 임상적으로 효과가 있는 약은 단지 7개였다. 다국적 제약회사는 혁신적 신약 운운 이전에 신약이 비용-효과적으로 얼마나 우수한 지를 증명하는 일부터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선진 7개국 평균약가정책도 마찬가지다. 현재 한국의 약가는 상대비교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있고 선진7개국 평균약가제도는 GDP 수준을 완전히 무시하여 의약품점근권의 최대장애가 되고 있다. 미국의 요구를 따른다면 신약의 가격은 당장 2배가 된다. 선진7개 평균약가 제도의 부분도입은 그 자체가 1999년 미국의 압력으로 당시 한덕수 통상산업부 대표가 맺은 굴욕적 비밀협상에 의한 것이다. 또한 포지티브리스트의 도입은 선진7개국 평균약가와 같은 불합리한 기준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더욱이 A7 약가 가격비교는 각 국가에서 발행하는 약가책자를 참조하여 산정되는데 약가책자에 기술되어 있는 가격과 실제 거래되고 있는 가격과 차이가 많다. 예를 들어 미국의 기준 약가집은 레드북이지만 실제 미국 연방정부에서 수행하는 프로그램에서의 의약품 가격은 책자 가격보다 79-41% 정도 저렴하다. 대표적인 의약품인 글리벡의 경우 한국의 약값은 23,045원인 반면에 미국의 FSS 가격은 19,135원, BIG4 가격은 12,490원이다. 사실이 이런데 어떻게 A7가격을 적용할 수 있는가?
  미국은 “필수의약품의 의무급여신청”과 “가격협상 실패시 필수 의약품의 직권등재 사안”도 신약에 대한 차별이라고 문제삼고 있다. 한국정부의 의약품 보험인정 범위나 가격에 대해 불만이 있으면 의약품 철수로 맞서겠다는 주장이다. 더욱이 이 사안은 2001년 도하선언에 명시된 “자국의 공공정책을 위한 수단 강구”에 입각한 것이다. 미국은 도하선언에 찬성하였으며 미국의 국내법에도 이 도하선언에 대한 존중이 명시되어 있다.
  미국의 16개 요구는 완전히 상식에 어긋난 요구도 포함한다. 약가산정시 물가상승률 요구도 공보험을 운영하고 있는 나라에서 전례가 없는 사안이다. 전문의약품 광고 허용요구는 의료에서의 전문적 판단을 무시하는 것을 넘어 의약품을 일반 상품과 동일시하는 미국측 요구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의약품/의료기기 위원회” 또한 제도무력화를 시도하는 대표적인 요구이다.  
  미국측 요구 16개 사안중 지금까지 열거한 몇 가지 사안 중 2-3가지만 수용한다고 해도 약가는 폭등할 수밖에 없으며 포지티브리스트는 무력화된다.

  셋째 미국의 의약품 특허권 강화요구의 수용 또한 한국의 약가를 폭등시킬 것이다.
  미국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설립될 때 이미 의약품의 독점권을 전세계적으로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것은 주로 특허권을 통한 것이었다. 즉, 무역관련 지적재산권협정(TRIPS 협정)을 통해 의약품을 제조하는 방법에 대한 특허 이외에도 의약품을 구성하는 물질 자체에 대한 특허를 WTO 회원국이 인정하도록 함으로써, 다국적제약사가 개발한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의약품을 생산하는 것도 금지할 수 있게 하여 의약품 독점권을 강화했다.  그리고 TRIPS 협정은 특허보호기간 자체를 20년으로 연장함으로써 의약품의 독점 기간도 늘렸다.
  의약품 독점권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시도 중 TRIPS 협정에서 관철하지 못했던 것은 FTA를 통해 확산시키고 있는데, 한미FTA 3차 협상에서도 미국의 이러한 시도는 더욱 강화된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특허청의 심사지연으로 인한 특허권 기간 연장이나, 의약품 허가 과정의 특허 정보 연계, 특허의 강제실시를 발동할 수 있는 범위의 축소, 특허권을 얻기 위한 문턱을 낮추는 것 등은 특허제도의 수정을 통한 의약품 독점권을 더 강화하려는 미국의 대표적인 요구 사항들이다. 한편, 2001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WTO 각료회의에서는 자국민의 공중보건을 위한 조치는 TRIPS 협정에 우선한다는 특별선언을 하였는데, 이러한 선언으로 인해 의약품 특허권을 약화하는 개도국 정부의 조치를 무역보복 등을 통해 방해하는 것이 더 이상 힘들어지자 미국은 자료독점권 제도를 통해 의약품 독점을 강화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가 유사 의약품에 대한 자료 독점권 인정이다. 미국이 체결한 FTA 중 도하 선언문 이후에 체결된 FTA에는 그 전의 FTA와는 달리 자료 독점권의 범위를 유사 의약품으로 확대하였다. 이러한 유사의약품에 대한 자료독점권 요구만 인정하더라도 한국에서의 복제약 생산은 5년이 늦어지게 된다. 이것이 국내 약가에 미치는 영향은 단지 10개의 신약만 살펴보더라도 5000억 가량이 된다는 내용은 이미 밝힌 바 있다.
  미국이 한국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을 지재권을 통해 무력화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요구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비위반제소’이다. 비위반제소 문제는 TRIPS 협정을 논의할 때에도 미국이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가 실패한 사안인데, 당시 미국이 이러한 주장을 했던 가장 큰 이유는 TRIPS 협정 제8조에 따라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려는 타국 정부의 조치를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회공공제도인 약가제도, 그리고 건강보험제도가 협상대상이 되는 한미 FTA 협상은 중단되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약값의 산정과 등재에 제약회사가 이해가 걸려있으므로 협상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건강보험제도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항은 국내법에 나와 있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통한 정비를 통해 충분히 해결가능하다. 약가제도와 건강보험제도가 한미 FTA에서 다루어지는 순간 웬디 커틀러의 말대로 주고받기가 진행될 수밖에 없으며 여기서 주고받는 것은 국민건강권이다. 예를 들어 유사의약품에 대한 자료독점권은 최근 미국이 맺은 모든 자유무역협정에서 미국이 관철한 사안이다. 한국만 예외가 될 수 있는 길을 우리는 한국정부의 태도에서 전혀 찾을 수 없다. 한미 FTA는 필연적으로 약가폭등을 불러일으키고 국민건강권의 심각한 침해를 초래할 것이다. 약가폭등과 건강보험제도의 퇴보를 가져오는 한미 FTA 협상은 중단되어야 한다.

200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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