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메테우스 “포지티브 수용이 아니라 무력화하려는 것”

보건의료시민단체, 한미FTA 의약품 협상 중단 촉구

[프로메테우스 최승덕 기자]
7일 미국 시애틀에서 한미FTA 의약품 협상이 시작된 가운데 국내 보건의료시민단체들이 협상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한국백혈병환우회 등 시민단체는 안국동 달개비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면 선별등재방식을 무력화시키고 약가를 폭등시킬 우려가 있다며 당장 의약품 협상을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웬디 커틀러 미 협상단 수석대표는 5일 사전브리핑을 통해 의약품 분야의 협상 전망을 말하면서 “양국 협상단이 협상을 계속하기 위한 원칙에 합의했다는 뜻이며 이 원칙이란 기브 앤 테이크의 원칙”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가 한국 측의 선별등재방식을 인정해 주고 그 반대급부로 한국 측이 선별등재방식의 세부사항에 대해 협상하기로 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들 보건의료시민단체는 “미국의 선별등재방식 수용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며 미국의 요구가 몇 개라도 반영된다면 약제비 적정화 방안은 무늬만 남게 되고 무력화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별등재방식을 수용 입장을 발표하기 이전부터 요구했던 “신약차별금지와 신약의 접근성 강화 사안을 (싱가포르 협상에서) 변함없이 요구한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들은“2만 2천여 개의 등재 의약품을 단계적으로 5000개까지 줄이는 것이 선별등재방식의 핵심인데 기등재 품목보호를 요구하는 것은 이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들은 “미국측 요구인 16개 사안 중 2~3가지만 수용한다고 해도 약가는 폭등할 수밖에 없으며 선별등재방식은 무력화된다”고 주장했다.

우석균 보건의료연합 정책실장은 싱가포르 협상에서 미국이 제시한 16개 요구안에 대해 “선별등재방식 하나하나가 모두 협상대상이라는 것을 확인했다”며 “수용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이라고 비판했다.

안기종 한국백혈병환우회 대표는 “맥도널드 햄버거도 국가의 소득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데 약가는 선진 7개국의 약가를 유지하려고 한다”며 “환자나 잠재적 환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미국의 요구에 대해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의약품 분야 협상내용의 불균형도 문제로 제기됐다. 한국이 제시한 요구안이 미국의 요구안에 대등한 내용이 아니며 받아들여질지도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신형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정책국장은 한국이 요구한 ‘의약품, 의료기기 표준 및 기준 상호인정’과 ‘의약품 특허만료된 제네릭 품목의 상호 인정’을 미국이 받아들인 전례가 없어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협상단이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을 요구하면서 열심히 하는 척하지 말고 방어논리를 개발해야 하는 데 매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래는 한미FTA 의약품 분야의 주요 쟁점에 대한 보건의료시민단체의 입장이다.

◇혁신적 신약 및 복제의약품, 의료기술상품 개발촉진 및 지속적인 접근성 강화 원칙, 혁신적 신약 또는 복제약 여부 및 제약사의 국적에 관계없이 약가 산정 및 급여 결정과정에서의 비차별

미국 신약의 혁신적 가치를 인정해 그 가격을 선진 7개국 평균약가로 산정하고, 지적재산권 보호를 강화해달라는 요구이다.

그러나 미국식약청이 2002년 승인한 신약 87개 중 70개의 약재는 과거의 약을 부분적으로 바꾼 이른바 유사약재(‘me too’ drug)였다. 나머지 17개 약재 중 과거의 약보다 임상적으로 효과가 있는 약은 단 7개뿐이었다. 다국적 제약회사는 혁신적 신약 운운 이전에 신약이 비용 대비 효과가 얼마나 우수한지 증명하는 일부터 선행해야 한다.

현재 한국이 부분도입하고 있는 선진 7개국 평균약가제도는 1999년 미국의 압력으로 한덕수 통상산업부 대표가 맺은 굴욕적 비밀협상의 결과이다. 미국의 요구대로 하면 신약의 가격은 당장 2배로 상승한다. 선별등재방식의 도입은 선진 7개국 평균약가와 같은 불합리한 기준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필수적의약품의 의무급여신청, 가격협상 실패 시 필수 의약품 직권등재

한국정부의 의약품 보험인정 범위나 가격에 대한 불만이 있으면 의약품 철수로 맞서겠다는 주장. 이 사안들은 2001년 도하선언에 명시된 “자국의 공공정책을 위한 수단 강구”에 입각하는 것이다. 미국은 도하선언에 찬성하였으며 미국의 국내법도 이 도하선언에 대한 존중을 명시했다. 미국도 찬성한 것을 문제 삼아서는 안된다.

◇전문의약품 대중광고허용

의약품 광고를 하면 신약이나 시장을 선점한 약은 훨씬 소비자 선호도가 높아진다. 그 약을 환자가 요구하게 함으로써 약가를 높여 받겠다는 의도다. 이는 의약품에 대한 전문성을 무시하는 것이며 약을 코카콜라 취급하는 것이다. 의약품을 오남용하는 일이 벌어진다. 다국적 제약회사는 매출액의 35%를 광고 및 행정비용으로 쓰고 있다. 광고비를 연구비로 돌려야 한다.

◇기등재 품목 보호

선별등재방식은 2만 2천개나 되는 등재 의약품을 몇 년안에 5천개 정도로 줄이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기등재 품목을 보호하자는 것은 선별등재방식을 포기하라는 것과 다름 아니다.

◇유사 의약품에 대한 자료 독점권 인정

한국의 제약회사는 복제약과 개량신약을 발매함으로써 오리지널 약보다 저렴하게 처방이 되고 있다. 유사 의약품에 대한 자료독점권이 인정되면 의약품 출시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된다. 복제약 생산은 5년이나 지연된다. 이로 인해 국내 약가에 미치는 영향은 10개의 신약만 따져도 5000억 원 가량 된다.

◇특허와 허가 연계 강화

복지부는 한국의 특허청과 식약청이 이미 연계가 돼 있다고 주장하지만 성분에 대한 특허만 해당된다. 미국은 성분에 대한 특허뿐만 아니라 제형ㆍ용법에 대한 특허를 기재할 수 있다. 이 특허 중 하나라도 동일하면 의약품을 출시하지 못한다.

따라서 복제약 회사가 다국적 제약회사에 소송을 걸어야 한다. 복제약 회사가 다국적 제약회사에 승소하는 비율이 73%나 된다. 이 73%가 부실특허란 이야기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복제약을 출시할 수 없다. 소송비용과 출시지연으로 인해 사회적 비용이 늘게 되고 결국 약가 인상으로 이어진다.

◇약가 산정시 물가인상률 반영

공보험을 운영하고 있는 나라에서 전례가 없는 사안이다. 의약품은 시장재이기 전에 공공재다.

◇의약품/의료기기 위원회 설치

선별등재방식을 무력화하려는 대표적인 요구.

◇윤리적 영업관행

의료 공급자들 간의 윤리적 영업행위를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의료제도는 각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유럽에선 의약품 수요자와 제약회사 간 리베이트가 합법화돼 있는 반면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것은 협정 테이블에서 논의될 사항이 아니다.

최승덕 기자(rhyzomer@promethe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