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에 ‘붕어’ 있어? 최혜국대우에 ‘최혜’ 없어!
[기자의 눈] FTA 서비스·투자 분야 ‘최혜국 대우’ 논란
2006-10-25 오전 10:21:37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4차 협상에서 ‘서비스·투자 분야에서의 최혜국 대우’ 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됐다. ‘최혜국 대우(MFN, most-favored-nation-treatment)’는 협정 당사국들이 상호 간 최고의 혜택(favor)을 준다는 뜻으로 오해되기 쉽지만, 국제통상에서 이 용어는 협정 당사국들이 제3국에 해주는 대우보다 ‘더 나쁜 대우를 해서는 안 된다(no less favored)’는 보수적인 뜻을 지닌다.
국제 통상협정에서 ‘최혜국 대우’ 조항이 등장한 것은 150년도 더 전의 일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주로 상품 분야의 관세장벽에 관해서만 최혜국 대우가 적용됐기 때문에 협정 체결국은 상대국에게 가장 낮은 관세를 보장해주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최근 FTA가 서비스·투자 분야까지 포괄하는 높은 수준의 통상협정으로 확장되면서 이 분야에서의 최혜국 대우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새롭게 부각됐다. ‘수치’로 확실히 규정될 수 있는 상품 분야에서의 최혜국 대우와 달리, 추상적인 조치가 다수 포함된 서비스·투자 분야에서의 최혜국 대우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개입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미 FTA 4차 협상 둘째 날인 24일 우리 측 협상단 관계자는 한 언론사 기자에게 “FTA에서는 국가 간 최혜국 대우가 보장돼야 하는데도 미국은 과거에 자국이 맺은 FTA 협정을 제외하고 앞으로 협정을 맺을 국가와 비교해 (제한적으로) 한국에 최혜국 대우를 보장하겠다는 완고한 입장”이라면서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놓고 국내 언론을 통해 논란이 빚어지자 외교통상부는 “(서비스·투자 분야에서 MFN에 대한) 미국 측 제안은 협정상의 의무로 MFN을 규정하되, ‘양국 공히’ 이 의무를 과거 FTA 체결국에 적용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공식으로 해명했다. ‘양국 공히’적용되는 것이니 우리에게만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미국, 원래는 “조건 없는 MFN 부여” 요구했었다?
그런데 지난달 말 외교통상부가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원과 김용갑 한나라 의원 등 복수의 의원들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는 ‘최혜국 대우 부여범위(투자, 서비스, 금융서비스 공통)’에 대해 미국 측은 “조건 없는 MFN 부여”를 요구하고 있는 반면 우리 측은 “미래 MFN은 제외하되 협의기회 부여”를 주장한 것으로 적시돼 있다. 여기서 ‘협의기회 부여’란 한-칠레 FTA에서처럼 협정 당사국이 다른 통상협정을 통해 제3국에 더 높은 수준으로 시장을 개방할 경우 그에 따른 추가 협의의 기회를 협정 상대국에 준다는 뜻으로 읽힌다.
언뜻 보면 모순되는 상황인 것 같지만, 이 자료에 나온 외통부의 입장은 어떤 이유에서 “조건 없는 MFN 부여”라는 미국 측 요구에 대해 ‘미래’에 관한 규정을 더한 것으로 정리가 된다.
요컨대, 미국 측은 자국이 이미 FTA를 체결한 15개 국가들의 투자 및 투자자나 서비스·금융서비스 제공자에 대해 부여한 것과 똑같은 대우를 우리나라에는 해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미 FTA가 체결된 후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미국에 해준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개방을 약속할 경우 미국에 대한 개방수준도 자동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미국 측은 우리나라에 최혜국 대우를 해 줄 생각은 없지만, ‘무조건적인 최혜국 대우’라는 조항을 협정문에 삽입해 우리나라가 앞으로 자발적인 시장개방 조치나 다른 FTA를 통해 제3국에 대한 개방수준을 높일 경우 미국에 대한 개방수준도 동시에 높아지는 ‘옵션’을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최혜국 대우가 ‘없는’ FTA를 자유무역협정이라 부를 수 있나
물론 우리 측 정부의 지적대로 이는 미국의 주장이긴 하나 합의될 경우 한미 양국 모두에 해당하는 사안이다. 그런데 양국에 ‘공히’ 적용된다고 해서 이런 미국 측의 주장을 우리가 받아들여도 될까?
이와 관련해 미국은 캐나다, 호주, 이스라엘 등 15개 국가들과 FTA를 체결한 반면 우리나라는 칠레, 싱가포르 등 6개밖에 안 되는 나라들과 FTA를 체결했으니 숫자상 불공평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한미 FTA에서 ‘최혜국 대우’의 구체적인 내용이 문제시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 조항이 ‘내국민 대우(national treatment)’와 더불어 자유무역협정(FTA)의 요체를 이루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미국처럼 이미 높은 수준의 교역관계에 있는 두 나라가 굳이 FTA를 맺는 핵심이유 가운데 하나는 상대국으로부터 다른 나라들에 주어진 교역조건들 중 가장 좋은 조건, 즉 최혜국 대우를 받아내기 위한 것이다. 우리 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하며 내세운 명분들 가운데 하나도 ‘미국시장에 대한 진출 기회를 늘린다’는 것이다.
물론 ‘최혜국 대우’에도 예외조항이 따라붙는다. 가령 지난해 1월 발효된 미-호주 FTA에서는 국경 간 서비스 무역 분과 10.3조, 투자 분과 11.4조, 금융서비스 분과 13.3조에 각각 ‘최혜국 대우’ 조항이 들어가 있는데, 여기에는 이 조항이 정부조달 등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예외조항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미-호주 FTA 협정문 어디에서도 최혜국 대우의 기본개념을 훼손하는 미국 측 요구가 반영된 문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국제통상법계의 새로운 논란 ‘최혜국 대우의 예외는 어디까지 인정?’
최근 국제통상법계에서는 서비스·투자 분야의 최혜국 대우에 대한 예외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최혜국 대우 조항이 최혜국 대우 본래의 기능을 할 수 있는지가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했다.
가령 A국과 B국 사이의 FTA에서는 투자자에게 ‘국가 소송권’을 부여하고, B국과 C국 사이의 FTA에서는 투자자에게 이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자. 별도의 예외조항이 없는 최혜국 대우 조항이 이 2개의 FTA에 포함돼 있다고 하면 C국 정부는 자국 투자자를 대신해 이 최혜국 대우 조항을 이용해 B국에 투자자의 국가 소송권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누가 득을 보고 누가 실을 볼지는 모르지만 중요한 점은 B-C 간 FTA 협상 과정에서 어떤 이유로든 빠졌던 ‘국가-투자자 소송제’가 부활하는 효과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하나의 극단적인 가정일 뿐이지만 최혜국 대우를 잘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나아가 보다 긴 안목에서 봤을 때 미래에 FTA를 체결할 국가들을 기준으로 최혜국 대우 기준을 설정하자는 미국 측 요구는 ‘여러 나라들과의 동시다발적인 FTA’를 추진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외교통상 전략에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이 외교통상 전략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우리나라가 앞으로 유럽연합(EU), 중국, 일본 등과 FTA에 대해 논의할 때마다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인 미국 쪽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문희상 의원 측 “국감에서 묻겠다”
’서비스·투자 분야의 최혜국 대우’에 대한 우리 측의 공식적인 입장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한미 FTA ‘이전’을 기준으로 최혜국 대우 기준을 설정하고, 향후 새로이 체결되는 FTA에서 제3국의 투자 및 투자자나 (금융)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대우 기준이 더 높아지면 한미 간에 추가 협의를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측은 24일 “MFN 관련 미국의 방침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미국이 체결한 모든 FTA에서 채택하고 있는 것이고, 정부는 이런 미국의 방침을 협상 전부터 인지해 이에 대한 효과적인 규정 방안을 신중히 논의하고 있다”고 말해, 사실상 ‘양보’의 낌새를 보였다.
문희상 의원 측은 24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국정감사에서 ‘최혜국 대우’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 (외교통상부에) 질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혜국 대우 개념에 대한 정부의 애매모호하고 다소 엇갈리는 태도는 ‘붕어빵에도 붕어가 없지 않느냐’는 식으로 사실상 ‘자유’가 빠진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의구심이 더 확산되기 전에 정부는 최혜국 대우 문제에 대한 입장을 보다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서귀포=노주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