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의 식탁을 위협하는가?
[먼슬리 리뷰] 초국적 농기업의 위협(1)
2006-11-24 오전 10:03:45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타결로 농산물 시장 개방이 전면화한 이래 그렇지 않아도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국내 농업 및 농민들의 삶이 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으로 인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로 인해 광우병의 국내전염 우려가 증폭되고 있는 데서 보듯, 한미 FTA는 한국을 미국식 식품생산 체제에 편입시켜 우리도 먹을거리의 안전성 문제에 본격적으로 노출되도록 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평론잡지인 <먼슬리 리뷰>가 11월호에 초국적 농기업들을 중심으로 농식품 체제의 세계화가 진전되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농업 및 농민 문제와 먹을거리의 안전성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지를 다룬 글 ‘누가 우리의 식탁을 위협하는가? -초국적 농기업의 위협’을 게재해 눈길을 끈다. 특히 이 글은 <먼슬리 리뷰>에 게재된 글로서는 이례적으로 한국인 학자가 쓴 것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필자인 윤병선 건국대학교 충주캠퍼스 사회과학대학 교수는 이 글에서 “한국 농민들과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은 미국을 비롯한 농산물 수출국의 농업경영자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전 세계 농민을 압박하고 있는 국제독점자본의 일환으로서의 초국적 농식품복합체(TNAC)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농산물 수출국이냐 수입국이냐 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전 세계 농민들이 TNAC의 농업지배에 대항하는 국제적 연대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먼슬리 리뷰>에 영어로 실린 이 글의 한글 원문을 윤 교수로부터 받아 2회에 걸쳐 나눠 싣는다. 원문의 각주는 생략했다. <편집자>
2005년 12월 제6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열렸던 홍콩에 세계 각국의 반세계화/반WTO 투쟁단이 집결했다. 홍콩에 모인 각국의 농민단체들은 농산물 무역규범이 모든 WTO 회원국에게 공정하고 공평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면서, 소수의 농산물 수출국들이 도하개발아젠다(DDA) 농업협상을 주도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연대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 왜 각국의 농민들이 이국 땅에 모여서 전 세계 농민들의 연대활동이 필요함을 강조하면서 식량주권과 농민의 권리 확대를 한 목소리로 외치게 되었을까?
세계화와 농식품 체제의 재구조화
농자재에서부터 가공농산물까지 포함하는 현대의 통합된 농식품 체제에서는 대다수의 농민들조차 농식품의 구매자로 되어 세계 어디에서 어떻게 농식품의 원료가 만들어진 후 가공되었는지를 거의 알지 못한다. 특히 1980년대 이후 농식품 부문에서도 지구적 규모의 자유화가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농식품 체제가 재구조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농민으로부터 소비자에 이르는 사회의 모든 농식품 시장 참여자들이 국경을 초월하여 서로 통합되기에 이르렀고, 이 통합의 중심에는 초국적 자본이 자리를 잡고 있다. ‘국경을 초월한 자본’의 축적이 지구적 차원에서 확대되고 있으며, 그 결과 경제력은 지역 또는 국민경제로부터 초국적 기업이나 다국간기구로 이동하게 되었다.
현대 농식품 체제의 세계화는 공간과 부문이라는 두 수준에서 전개되고 있다. 공간적으로 볼 때 지역 및 생산단위에서 농업의 특화라는 형태로 집약화가 나타나고 있고, 부문 수준에서 보면 직접적으로 소비되는 농식품(예를 들면, 지역시장에서 직접 거래되는 과일이나 채소)의 생산이 대규모 식품가공 시스템에서 원료로 사용되는 농산물(예를 들면, 가공업체에 판매하기 위해 생산되는 과일이나 채소) 생산으로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의 농식품 체제는 농자재 생산업자로부터 유통업자, 농민, 소비자에 이르는 모든 이들을 포함하는 고도로 통합된 시스템이다.
윌리엄 프리드랜드(William Friedland)는 지구적 규모의 현대 농식품 체제에서는 농식품복합체가 농민과 소비자를 묶는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았다. 실제로 현대 농식품 체제의 통합을 주도하는 역할은 ‘초국적 농식품복합체들(transnational agrifood complexes: TNACs)’이 담당하고 있으며 WTO와 세계은행(IBRD),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초국적 기구들이 이를 보강하고 있다. 대표적인 TNAC인 카길(Cargill), 콘아그라(ConAgra) 등은 국경을 초월하여 곡물가공과 배합사료는 물론이고 육류, 낙농제품, 과일통조림, 시리얼, 음료농축액 등 음식료 분야의 거의 전 부분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종자, 비료, 농약과 같은 농업생산자재 산업에도 진출하여 농업생산과 관련된 사업 전반에 진출해 있다.
이들은 어느 특정 지역에서 육계나 돈육과 같은 농축산물을 생산하는 것에 있어서도 가공시설을 집중하는 것이 보다 많은 이윤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지구적 규모로 지역별 특화를 가속화시켜 왔다. 예를 들면 카길의 짐 프로코팽코(Jim Prokopanco)가 말한 것처럼 “카길은 플로리다의 탬파에서 인산비료를 생산한다. 우리는 그 비료를 사용하여 미국과 아르헨티나에서 콩을 재배한다. 그 콩은 사료와 기름으로 가공된다. 사료는 태국으로 보내져서 닭의 사료로 사용되고, 그 닭은 가공·포장되어 일본이나 유럽의 슈퍼마켓으로 보내진다.”
눈에 보이는 거인
이들 TNAC는 인수·합병을 주요한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다각화를 꾀해 왔다. 미국 내 농식품 관련 지배적 복합기업의 순위를 보면, 콘아그라는 칠면조와 양고기 가공 부문 및 소맥분 생산 부문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여타 식육가공 부문에서도 수위를 기록하고 있다. 카길은 곡물의 운송 및 판매와 관계되는 다국적 곡물창고업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고 대두 및 옥수수 가공 부문에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 식육가공 부분의 ’4대 기업 시장집중률(CR4)’을 살펴보면 쇠고기의 경우 1980년 36%에서 2000년에는 81%로 상승했고, 같은 기간에 돼지고기는 34%에서 59%로, 닭도 30%에서 50%로 각각 상승했다. 곡물가공 부문의 경우도 소맥분은 1982년 40%에서 2000년 61%로, 옥수수는 1977년 63%에서 1997년 74%로, 대두는 1977년 54%에서 1997년 83%로 CR4가 각각 상승했다. 품목별 편차는 있지만, 예외 없이 4대 기업의 시장집중률이 급증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농식품 가공산업 부문에서 중요 품목들의 시장집중률은 꾸준히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식음료 시장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최근 높아지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대 기업의 시장집중률은 1992년 46.5%에서 1997년에는 52%로 크게 상승했다. 이 시장의 점유율 1위 기업인 필립 모리스(Phillip Morris)는 연간 매출액이 309억 달러를 넘고 있는데, 이는 미국 식음료산업 전체 판매액 중 6.6.%에 해당한다. 그 뒤를 콘아그라와 카길이 잇고 있다. 콘아그라는 32개국에서 영업하는,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식료회사인 동시에 농업용 화학제품과 비료 제조업체로서는 북미대륙에서 가장 큰 기업이며 1990년에는 종자산업에도 진출했다. 즉 콘아그라는 농업생산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료에서부터 소매 단계에 이르는 농식품 체제의 중요한 부분들을 소유지배하고 있다.
이처럼 한 기업이 서로 다른 여러 시장에 진출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렇게 해야 한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시장에서 얻은 이윤을 투입하는 교차보조(cross-subsidy)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은 한 상품시장에서 큰 손실을 보더라도 다른 시장에서 이윤을 얻고 있다면 오랜 기간에 걸쳐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다각화를 꾀하는 유인은 효율에 있다기보다는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데 있다고 할 수 있고, 현대의 농식품 체제에서 기업의 생존 여부를 가르는 것은 무엇보다 시장지배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1990년대 이후 농화학기업, 종자기업, 그리고 제약기업 간의 무차별적인 인수합병으로 사실상 농업투입재 부문은 하나의 거대한 기업군을 형성해가고 있다. TNAC들인 카길, 콘아그라, 아처대니얼미들랜드(ADM)는 농화학, 종자 및 의약품 기업과의 연계를 강화하여 업종을 다각화하고 있는 농업생명공학 기업들과의 결합을 꾀하고 있다.
카길의 경우 그동안 생명공학 분야에 접근하지 못했으나, 국제 종자사업 부문을 몬샌토(Monsanto)에 매각하면서 몬샌토와의 제휴를 강화했다. 그런가 하면 몬샌토는 미국 내외의 종자기업과 유전공학기업들을 인수함으로써 이들이 보유하고 있던 유전자원을 확보하는가 하면 델타 앤드 파인랜드(Delta & Pineland) 등 종자기업들을 인수함으로써 콩과 면화의 종자 판매에서 미국 제1위의 기업이 되었다.
이처럼 농식품 체제의 각 단계에서 최고의 입지를 각각 갖고 있던 카길과 몬샌토는 농식품 체제 지배를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는 파트너로서 쉽게 결합할 수 있었다. 더욱이 카길은 미국의 식품소매 부문에서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은 업체 중 하나인 크로거(Kroger Co.)와 쇠고기 납품 장기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농식품복합체들은 ‘종자에서 슈퍼마켓까지’ 농식품 체제 전체를 지배하기 위한 시도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농업노동자로 전락하는 농민들
농식품복합체들은 계약생산 및 수직적 통합의 확대를 통해서도 농업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뿐만 아니라 후진국에서도 점차 중요시되고 있는 계약생산(contract farming)은 기본적으로는 농민과 기업 사이의 위험분산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계약생산 하의 농민은 땅과 건물을 제공하고, 건물에 계약회사의 설계서에 맞추어 시설을 갖추어 놓고, 생산과정에서 농민이 노동력을 공급한다. 이런 점에서 계약생산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원료 농산물의 생산을 아웃소싱하는 산업적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수직적 통합은 농산물 생산과정에서 상류단계(upstream stage)와 하류단계(downstream stage)를 통합해 하나의 기업조직 내에서 생산과정 전체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농산물가공 업체가 원료 농산물의 생산에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하거나 농산물유통 업체가 농산물가공 부문에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한다는 면에서 수직적 통합은 계약생산과는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양자 모두 농업생산 및 농업생산자에 대한 농업 관련 기업의 영향력 확대라는 공통된 특징을 갖고 있다.
미국의 경우 사탕수수나 사탕무는 일찍부터 100% 계약생산이나 수직통합에 의해 생산이 이루어졌다. 채종작물의 경우는 90%가 이러한 방식으로 생산되고 있고, 신선채소의 경우도 이런 방식의 생산 비중이 1960년 45%에서 1994년 65%로 확대됐다. 양계는 계약생산 및 수직적 통합에 의한 생산이 100%에 이르고 있고, 칠면조의 경우도 88%가 이러한 방식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 신선과일이나 채소와 같은 부문도 소수의 대규모 농식품복합체에 의해 지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농민들은 생산과정에 대한 지배력을 거의 다 잃고 결국은 단순한 재배노동자 또는 사육노동자의 위치로 전락하여 농식품복합체와의 역관계에서 교섭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농식품복합체들의 검은 전략과 회전문
이들 TNAC는 독자의 방법으로 입수한 정보로 각국의 농업 및 농정을 좌우할 힘을 갖고 있으며,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해외에 다양한 원료 공급원을 확보하고 있다. 이들 TNAC는 지구상에서 가장 싸게 원료 농산물을 구매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구매해고, 가공 후에는 이를 가장 비싼 값으로 판매할 곳을 지구 전체에서 찾는다.
이들은 또한 대외 직접투자뿐만 아니라 각 생산공정을 각국의 여건에 맞추어 분담시키는 전략을 통하여 이윤획득을 꾀한다. 예를 들면 노동집약적인 부분은 임금이 낮은 나라로, 환경부하가 큰 부문은 환경규제가 느슨한 나라로, 기술집약적인 부분은 본국에 배치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나아가서 이전가격(transfer price) 설정을 통한 이윤의 극대화, 조세회피 등 국경을 활용한 여러 가지 비용절감 방법이나 이윤형성 방법을 도입함으로써 초과이윤의 획득을 꾀한다.
또한 농식품의 경우 공산품과 달리 지역을 초월해 생산공정을 일괄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여전히 어렵고 가공식품의 소비에는 해당 지역의 특성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사정 등으로 인해 초국적 농식품복합체들은 세계 각지의 특징을 두루 반영한 ‘지역 생산-지역 소비’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초국적 농식품복합체들은 오래 전부터 세계의 농업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는데, 그 모습은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협상을 계기로 대중의 눈앞에 드러나게 되었다. 당시 미국 측이 UR 협정안으로 제시한 내용의 대부분은 대표적인 TNAC인 카길의 전 부사장인 대니얼 암스튜츠(Daniel Amstutz)에 의해 작성되었고, 이 제안서는 다른 TNAC들에 의해 검토됐다. 이 제안서는 곡물무역 회사와 농화학 회사의 요구에 맞추어 만들어졌기 때문에 농가에 대한 보조를 줄이고 생산조절을 없애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농식품복합체와 정부의 밀착은 ‘회전문(revolving door)’으로 표현되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는 미국 환경보호국의 부국장이었던 피셔(Linda J. Fisher)가 몬샌토로 자리를 옮겨 정부와 대중을 상대로 하는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에 임명된 것과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를 지낸 마이클 캔터(Micheal Kantor)가 몬샌토의 세계홍보 책임자에 임명된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카길의 CEO 미섹크(Ernest Micek)는 클린턴 정부 때 미국의 수출 확대를 꾀하고 수출정책에 관해 대통령에게 자문해주는 대통령수출자문단의 멤버에 임명되기도 했다.
한편 카길, 몬샌토, 나비스코(Nabisco) 등은 농식품복합체를 위한 로비활동을 맡기기 위해 농업정책실무그룹(APWG, Agricultural Policy Working Group)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 단체는 소농은 세계가 필요로 하는 식량을 생산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생산적이지도 않고 효율적이지도 않다는 선전을 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광고에 쏟아 붓고 있다.
윤병선/건국대 경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