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한미FTA 협상서 빅딜전략 구사’ 시인
”자동차와 의약품으로 무역구제 압박한 것은 사실”
2006-12-19 오후 3:06:54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우리 측 협상단이 무역구제 분과의 우리 측 요구사항과 자동차 작업반 및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의 미국 측 요구사항을 맞바꾸는 ‘빅딜’ 전략을 구사하고 있음을 사실상 시인했다.
김종훈 한미 FTA 우리 측 수석대표는 19일 오전 문화방송(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미 양측의 요구사항을 맞교환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협상이라는 게 주고받는 식으로 물꼬를 터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무역구제 협상에서 미국 측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면 이것을(즉 자동차와 의약품 협상에서 우리 측도 미국 측이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빅딜의 가능성을) 압박수단으로 쓴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발언은 미국 측이 무역구제 분과의 우리 측 요구사항을 전부 혹은 일부 수용하면, 우리 측도 배기량을 기준으로 한 우리나라의 자동차 세제를 변경하라는 미국 측 요구나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에서 미국 제약회사의 약값을 올리는 데 기여할 정책을 여럿 수용해 달라는 미국 측 요구를 들어줄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 측은 지난 5차 빅스카이 협상에서 무역구제 분야에서 그동안 요구해 왔던 15개 사항들 가운데 6개를 간추려 미국 측에 제시했고, 이를 미국 측이 거부하자 무역구제 분과는 물론 자동차 작업반과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의 협상을 중단시킨 바 있다.
김종훈 대표는 이날 방송에서 자동차 작업반의 협상과 관련해 “자동차는 내부적인 검토가 필요하지만 세제 개편의 경우 우리 업계에서도 (받아들이기) 아주 어렵다는 입장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훈 대표는 의약품 작업반의 협상과 관련해서도 “약값 문제가 쉽지는 않지만 외국의 신약이 그 동안에도 들어온 만큼 (이에 대한) 개선 조치를 취하는 것이 불가능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무역구제는 특정기업 이익 위한 것…자동차·의약품은 전국민에게 손해 끼칠 것”
통상협상에서 협상단이 ‘빅딜’ 전략을 협상전략의 하나로 구사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무역구제 분과에서 우리 측이 얻어낼 수 있는 이익의 크기와 자동차 작업반과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에서 우리 측이 양보함으로써 우리가 감수해야 할 피해의 크기 사이에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이날 김종훈 대표가 방송을 통해 한 발언에 대해 즉각 성명을 발표해 “무역구제 협상은 주로 국내 자동차 기업들의 이익을 위한 조치”라면서 “특정 기업의 이익을 위해 전국민이 유독가스를 마셔야 하고 약가 폭등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한국 정부가 그 추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이러한 ‘빅딜’은 한미 FTA가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대가로, 그리고 우리 사회의 보건정책, 환경정책, 조세정책의 포기를 대가로 특정 기업의 이익을 추구하는 협상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무역구제 요구사항 중 제일 중요한 건 ‘산업피해 비누적 평가’”
한편 김종훈 대표는 이날 방송에서 지난 5차 무역구제 분과 협상에서 우리 측이 제시한 6가지 요구사항 가운데 우리 업계에 가장 큰 이익을 가져다 줄 사안으로 ‘산업피해의 비(非)누적(Non-cumulation) 평가’를 들고 “미국이 어렵게 생각하는 게 우리에게는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피해의 비누적 평가’란 덤핑에 의한 산업피해 평가 시 중국, 동남아시아 국가 등 다른 국가들로부터 수입된 동일물품도 조사대상으로 해 그 수입으로부터의 피해를 누적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금지하고 개별 수입국별로 산업피해액을 조사하는 것으로, 미국 측이 이 제도를 시행하려면 자국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
한편 김종훈 대표는 최근 국내에 반입된 미국산 쇠고기가 연거푸 반송·폐기된 것과 관련해 “양측의 합의문에 따른 조치”라면서도 “그러나 (쇠고기 뼛조각의 안전성 시비는) 과학적인 논쟁을 내포한 문제인 만큼 미국이 협의를 원하면 피할 필요가 없으며, 양국 당국 간에 기술협의 일정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김종훈 대표는 미국 측이 쌀 시장 개방을 요구하면 FTA 협상 전체를 깨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배종하 농업분과장(농림부 국제농업국장)의 최근 발언과 관련해서는 “적절하게 표현한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정부는 쌀은 예외로 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다시금 강조했다.
김종훈 대표는 지난 5차 협상 때 미국 측이 한의사 자격의 상호인정 문제를 거론한 데 대해서는 “(미국 측이 한의사) 시장 개방을 강하게 압박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서로 자격을 인정하려면 교육의 질 등 동등성이 인정돼야 하는데 (한국의 한의사와 미국의 침술사 사이의) 동등성에 많은 하자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한미 FTA에서 양국이 전문직 자격 상호인정 목록에 한의사를 넣게 될 가능성을 낮게 본 발언으로 풀이된다.
노주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