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사설 유시민 장관, 정말 파스가 문제인가

유시민 장관, 정말 파스가 문제인가
사설

잘못된 원인 진단에 근거한 정책은 잘못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요즘 빈곤층의 의료급여 정책을 다루는 보건복지부의 행태가 꼭 그런 꼴이다. 복지부는 지난해 의료급여 환자의 진료비 오용·남용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환자들한테 본인 부담금을 물리고 의료기관 이용을 제한하는 한편, 파스 등을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복지부는 ‘의료급여 환자의 진료비가 건강보험 환자보다 3.3배나 많다’는 통계를 근거로 빈곤층의 도덕적 해이를 질타했다.
그러나 이 통계는 진료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나이와 질병의 경중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엉터리로 드러났다. 복지부 스스로 이런 변수를 고려하면 1.48배 수준이라며 열흘 만에 수정 통계를 냈다. 통계의 기본조차 무시한 수치를 정책 방향의 근거로 삼았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낭비와 오남용은 줄이는 게 마땅하다. 급증하는 복지 재원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의료급여 진료비가 늘어난 건 의료수가 인상과 급여 확대가 주된 원인이고, 낭비 요인은 지급 방식과 전달 체계에 있다. 그런데도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가 문제의 본질인 것처럼 오독했으니 진단부터 잘못된 것이다.

더 걱정스러운 건 재정 절감과 효율성만을 좇는 보건당국의 발상이다. 의료급여 환자들한테는 지금도 입원실을 내주지 않아, 이들이 응급실을 전전하거나, 비급여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파스 몇장으로 고통을 참는 일이 허다하다. 복지부가 강조하듯, 한 해에 수억원대 진료비를 쓰고 수천회에 걸쳐 진료나 처방을 받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복지부 통계를 보더라도, 의료급여 대상자는 일반 건강보험 대상과 견주어 노인 환자가 3배 이상 많고, 위암은 3.5배, 뇌출혈은 5.5배, 정신분열증은 무려 40배에 이른다. 보건당국이라면 의료급여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질타하기 전에 이들의 비참한 건강 현실과 환경 개선에 주목하는 게 순서가 아닌가.

유시민 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현란한 ‘반성문’까지 써가며 빈곤층 건강 증진을 강조했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의료 안전망을 걱정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빈곤층을 적대시하는 정책에 앞장서는 건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의료급여 개정안은 당장 거둬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