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 유시민장관과 또다른 진보논쟁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고립무원에 처해있다면 노대통령의 복심(腹心)이라는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도 요즘 사면초가다.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가시밭뿐이다. 정치적으로도, 정책적으로도 우군이 없다. 곳곳에서 ‘유시민을 쫓아내야 한다’는 목소리만 요란하다. 그가 주도해 만든 열린우리당은 조만간 해체될 예정이고, 그의 정치적 동반자인 노대통령은 당적을 정리하기로 했다. 유시민 본인의 푸념을 빌리면 ‘돌아갈 당도 없고 당에서 불러주지도 않는’ 정치적 고아와 같은 처지가 된 것이다.
유시민은 최근 “한나라당 집권가능성이 99%”라고 말했다가 한나라당은 물론 범여권 의원들로부터도 호된 매를 맞았다. “새 출발에 찬물을 끼얹는 언행”(원혜영), “열린우리당이 혼란스러울 때 늘 중심에 있던 사람”(전병헌)이라는 비난에 이어 “해당(害黨) 발언이므로 윤리위에 회부해 출당(黜黨) 조치해야 한다”(유재건)는 말까지 나왔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지지율 합계가 70%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가능성 99%’라는 발언은 분명 객관적이다. 그런데 이렇게 야단법석인 것은 발언의 당사자가 다름아닌 유시민이기 때문일 것이다. 유시민이 대선 국면에 현실 정치로 나오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 거부감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시민단체의 ‘국민 불신임장’-
사실 ‘유시민’ 하면 얼굴 찡그리고 고개부터 돌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안티 유시민’ 대열에 여·야, 보수·진보의 구분은 없다. ‘똑똑하지만 싸가지 없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환영받기 어려운 법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유시민의 정치적 위기 소식은 내심 짜릿한 기쁨을 안겨줄지 모르겠다. “저 혼자 잘났다고 날뛰더니 그것 참 고소하군” 하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유시민이라는 개인에 대한 감정의 장막에서 한치도 더 들어가지 못하는 셈이 된다. 그런 감정이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무의미해질 수 있다. 유시민이 복지부 장관이 된 지난 1년이 그렇다. 그는 국회의원 때와 180도 달라졌다. ‘싸가지 없는 언사’로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은 이제 거의 없다. 일만 잘 챙긴다고 해 오히려 ‘화려한 변신’이라는 찬사를 듣는 그다. 그가 언제 또 어떻게 변신할지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
현재 유시민이 처한 위기상황을 들춰보면 그보다 의미있는 사회적 담론이 숨겨져 있다. 지난 주말 2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한마음 한뜻으로 유시민에게 전달했다는 ‘국민불신임장’이 그것이다. 유시민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자격과 신뢰를 상실했다며 국민의 이름으로 그를 불신임한다는 내용이다. ‘의료의 공공성과 건강보험보장성 강화를 위한 연대회의’라는 긴 명칭의 이 기구에는 빈곤 종교 장애인 여성 인권 노동 보건의료 등 진보적 성격의 단체가 거의 망라돼 있다. 그러니까 진보사회에서 ‘유시민, 당신 안되겠어’하고 딱지를 붙인 셈이다. 이로써 노대통령이 ‘대한민국에 진보만 사느냐’고 일갈하면서 진보진영과 대립각을 세운 것처럼, 유시민도 진보 사회와 충돌하는 또하나의 전선을 형성하게 됐다.
이 전선의 싸움은 기실 유시민이 먼저 걸었다. 시민단체가 불신임의 사유로 삼은 세가지 복지제도 개혁방안이 유시민의 작품이다.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개혁, 가난한 사람도 병원·약국에 갈 때 본인부담금을 내도록 하는 의료급여제도혁신, 의료산업화를 촉진하는 의료법개정안 등이 그것이다. 모두 기존의 복지혜택을 줄이는 이른바 ‘보수개혁’이다.
-‘보수개혁’ 논쟁이 필요하다-
유시민은 이 개혁안을 낼 때마다 현 제도의 맹점이 무엇이며, 그래서 얼마나 많은 예산 낭비가 이뤄지고 있는지를 실증적 사례와 함께 ‘국민보고서’란 형식으로 발표했다. 그 때 그는 이같은 ‘보수개혁’으로 진보 진영과 충돌할 것임을 예감했다. 의료급여제도 혁신보고서에 “이 혁신 방안들은 철학적 이론적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진보적 지식인들과 시민사회단체는 이것을 차별이라고 반대하고 있다”고 한 것이다.
진보단체들은 세가지 사안에 대해 “가난한 사람의 노후소득보장을 축소하고, 건강권을 위협하며, 의료영리화를 부추긴다”며 ‘개악’으로 규정했다. 여기에 국민연금 개혁이 왜 포함되는지 납득하기 어렵지만, 다른 두가지는 참여정부 복지철학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사안이다. 치열한 논쟁이 필요하다.
〈이종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