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의약품 시장 ‘ 미 시나리오’ 대로 가면…한해 최소 2조원 피해

의약품 시장 ‘미 시나리오’대로 가면…한해 최소 2조원 피해

약제비 적정화 무용지물
건강보험 재정마저 흔들

  김양중 기자  

» 한-미 FTA에 따른 의약품분야 피해추계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서 미국이 원하는 특허기간 연장, 독립적 이의신청기구 설립, 신약 가격 일정수준 이상 보장 등을 받아들이면 한 해 최소 2조원의 피해가 발생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경우 현재 한 해 약값으로 7조2천억원을 지출하고 있는 건강보험 재정이 크게 위협을 받는 한편,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는 보건복지부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이 무용지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 보건의료대책위 등이 9일 발표한 ‘협상 타결로 인한 의약품 피해 추계 조사’ 자료를 보면, 우선 신약 특허심사 및 허가관련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신약의 특허인정 기간이 지금보다 18개월 늘어나, 한 해 4천억원 가량의 약값이 추가로 든다.

또 임상 실험 등의 과정에서 자료독점권이 인정되면, 국내 제약사가 내놓을 개량신약의 출품 시기가 30개월 늦춰진다. 이에 따른 추가부담은 한 해 6천억원 정도로 추계된다. 실제 효능은 거의 같지만 구조가 약간 다른 개량신약 등이 나오면 신약은 판매가 크게 준다.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의 자료를 보면, 고혈압 조절약인 ‘암모디핀’에 대한 개량신약이 나오면서 5년 만에 개량신약의 시장점유율은 50% 정도 될 것으로 예측됐다.

아울러 신약의 보험 약값 결정 과정에서 미국 제약사들의 압력이 가능해지는 독립적 이의신청기구가 설립되고 신약 값의 하한선이 정해지면, 복지부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은 거의 아무런 효력을 갖지 못하게 된다. 이에 따른 추가 비용이 한해 6천억원 정도로 추계됐다. 또 전문의약품의 대중광고가 허용될 경우 업체들의 판매관리비 증가가 약값에 반영돼, 약품 소비자 부담이 한 해 3천억원 가량 더 늘어날 전망이다.

신형근 건강세상을위한약사회 정책국장은 “피해 규모는 2001~2005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청구자료와 복지부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 등의 자료를 활용해 추계했다”고 말했다. 신 국장은 “지난해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한-미 에프티에이에 따른 의약품 피해액 규모를 5년간 최대 1조원이라고 발표할 때에는 구체적인 추계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고 신약의 하한값 결정, 전문약의 대중광고 허용 등을 계산하지 않았다”며 “복지부는 이 자료를 공개해 다시 한번 검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최근 복지부는 2000억~2800억원을 아끼기 위해 의료급여 및 저소득층 환자에게 본인부담금을 내게 하거나 인상했다”며 “한 해 2조원으로 추정되는 에프티에이 피해액을 아끼면 암 등 중증질환의 무상치료를 하고도 남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배경택 복지부 에프티에이협상팀장은 “시민단체의 자료는 추후 검토 뒤 입장을 내겠다”며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최저 가격 인정 등은 협상에서 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의신청 기구 설립 등은 국내 제약사도 요구한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워 정부가 이미 양보한 상태이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