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연장협상’ 득보다 실이 컸다
정부, 자동차·섬유분야 더 얻으려 조세주권·유전자조작 농산물 규제 등 양보
애초 시한에서 이틀 연장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한국은 자동차·섬유 분야에서 양보를 얻어내려고 환경보호, 국민 건강권 보호 의무와 각종 공공정책 규제권한은 물론, 일부 사법권과 조세주권까지 허물어뜨릴 수 있는 제안을 미국에 한 것으로 확인됐다.
1일 <한겨레>가 단독 입수한 정부의 ‘한-미 에프티에이 연장 협상 계획’ 등을 보면, 한국 협상단은 미국의 자동차 관세철폐 시기를 앞당기려고 국내 자동차 세제 개편과 배기가스 규제 적용의 예외를 약속한 데 이어 자동차 관련 통상분쟁을 별도 중재기구를 통해 신속하게 해결하는 방안을 들어줄 뜻을 내비쳤다. 아울러 이 중재기구에서 한국에 협정위반을 판정하면 미국이 자동차 관세를 복귀시킬 수 있도록 협정문에 명시해야 한다는, 미국 요구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한국은 이미 지난 3월 초 서울에서 열린 8차 공식협상에서 배기량 기준 2000㏄ 초과 중대형 승용차의 특별소비세를 10%에서 5%로 내릴 수 있다는 안을 내놓은 데 이어, 5단계인 배기량 기준 자동차세도 3단계로 줄이면서 2000㏄ 초과 대형차를 1600㏄ 초과 중형차와 같게 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배기량이 큰 차 위주로 생산되는 미국산 차를 배려한 안이다. 이렇게 하면 당장 세수 감소는 물론, 전반적으로 대형차 선호도가 높아져 대기오염과 에너지 과소비를 부추길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섬유분야 협상에서는, 미국이‘유전자 변형 생물체’(LMO)를 한국에 팔 때 안전검사와 수입승인 절차를 생략하면 자국 섬유시장 개방 수준을 조금 높일 수 있다는 안을 막판에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한국 쪽은 연장 협상에서 긍정적으로 검토의사를 밝혀, 섬유 수출 기회 확대와 국민건강을 위한 규제권한을 놓고 맞바꾸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스위스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 협상 도중에 유전자 조작 생물체의 수입규제 완화안이 나오자 곧바로 국민투표에 부쳐, 국민들의 반대표가 높게 나오자 지난해 2월 협상을 중단한 바 있다.
한국은 또 미국 세관 당국이 국내 섬유수출 기업에 고지도 하지 않고 현장조사를 할 수 있는 ‘현장 동의제’를 수용하기도 했다. 이에 법무부는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다”며 협상결과를 우려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 6일 미국 타임워너의 리처드 파슨스 회장이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시엔엔>(CNN)의 한국어 방송 더빙 허용을 요구한 데 대해 “노 대통령은 아무런 답변을 해주지 않았다”는 애초 청와대 주장도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의 협상 대책 문건에는 “노 대통령이 긍정적으로 회신했다. 시엔엔의 더빙 허용은 미국이 방송분야에서 원하는 우선 순위 1번”이라고 적혀 있다.
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